주간 정덕현

'상류사회', 이 드라마 도대체 정체가 뭐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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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사회', 이 드라마 도대체 정체가 뭐야

D.H.Jung 2015. 7. 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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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우정 그리고 욕망, <상류사회>의 세 바퀴

 

정체를 알 수가 없는 드라마다. 처음 구도만을 보면 그저 그런 재벌가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안을 살짝 들여다보면 흔한 신데렐라도 없고 흔한 재벌도 없다. 재벌가 딸이지만 천덕꾸러기 신세로 어린 시절부터 엄마에게 학대당해온 윤하(유이). 그녀는 살기 위해서 재벌가 딸임을 숨긴 채 마트 아르바이트를 한다. 부유하지 못해도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그녀의 숨통을 겨우 틔워주기 때문이다.

 


'상류사회(사진출처:SBS)'

윤하의 절친인 지이(임지연)는 마트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지만 누구보다 자기 주관이 뚜렷한 여성. 그녀 앞에 나타난 재벌가 자제 창수(박형식) 앞에서도 그 조건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녀가 전형적인 신데렐라로 그려지지 않는 건 오히려 창수가 그 앞에서 당당하고 자격지심 같은 것이 전혀 없는 지이에게 끌리기 때문이다.

 

창수는 재벌가 자제지만 우리가 늘상 드라마에서 봐왔던 그런 갑질의 대명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성까지 완벽하게 갖춘 완벽한 인물도 아니다. 그는 친구이자 부하직원인 준기(성준)에게 때론 친구처럼 다정다감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직장 상사와 부하의 관계를 확인시키기도 한다. 어찌 보면 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재벌가 자제지만 지이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은 그에게서 어떤 순수함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걸 느껴지게 한다.

 

준기는 친구지만 상사인 창수를 보좌하면서 억눌린 을의 정서를 보여주는 인물이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상류사회에 진입하려는 욕망의 화신이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윤하가 재벌가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접근하고는 그걸 질책하는 창수에게 혼테크가 나쁜 거냐고 되묻는다. 어렵게 살아온 부모의 삶을 보며 살아온 탓에 상류사회에 대한 비뚤어진 욕망을 갖게 된 인물이다.

 

이처럼 주요 인물들이 전형적인 듯 보여도 그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이야기 또한 어디로 흘러갈지 전혀 예측하기 어렵다. 드라마는 준기의 비뚤어진 성공에 대한 욕망을 다루는 듯 흘러가다가도, 그와 윤하와의 사랑이 그저 가식만은 아닌 듯 보여지고, 지이가 창수를 만나 벌어지는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보이다가도 그런 빈부 차이를 훌쩍 뛰어넘는 그녀와 윤하의 우정을 다룬다. 준기와 창수는 우정처럼 보이면서도 상사와 부하 사이의 긴장감이 엿보이기도 하고, 윤하는 전혀 기업 승계에 대한 욕심이 없는 듯 보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철두철미하게 그걸 준비하는 사람처럼도 보인다.

 

한 길 사람 속을 알기 어렵다고 했던가. <상류사회>는 우리가 그 흔한 재벌가 드라마들을 통해 갖고 있던 전형적인 인물의 틀을 깨버린다. 대신 이들은 저마다 양가적인 모습을 동시에 가진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빈부와 무관할 것처럼 당당하지만 막상 신데렐라 놀이에 즐거워하는 지이, 불행한 재벌가의 삶에서 벗어나 지이 같은 보통의 삶을 추구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회사의 일에도 능력을 숨기고 있는 윤하, 그저 방탕한 재벌가 자제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순수한 사랑에 대한 갈증을 갖고 있는 창수, 그리고 비뚤어진 욕망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그 따뜻한 심성이 살짝 드러나는 준기.

 

인물들이 입체적이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멜로드라마가 되려다가도 우정을 다루는 드라마가 되고 그러다가 갑자기 성공과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드라마가 되기도 한다. 오빠의 갑작스런 사고에 의심을 품는 윤하의 이야기는 또 어떤 파국을 향해 갈지 예측하기가 어렵고, 준기의 숨겨진 욕망이 드러났을 때 그것은 또 윤하와 지이에게 어떤 충격으로 다가올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상류사회>는 뻔한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다. 도무지 그 갈피를 잡기가 어려운 관계와 이야기 전개는 이 드라마가 왜 점점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하는가를 잘 말해준다. <상류사회>는 그래서 첫 회만 보면 결말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드라마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역시 소재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상류사회>라는 정체 모호한 드라마는 그걸 말해주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