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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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과는 또 다른 '용팔이'의 갑질 폭로

D.H.Jung 2015. 8. 1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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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팔이>의 갑질 폭로 그 어떤 것보다 센 까닭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별, 병원이라고 다를까. <용팔이>의 김태현(주원)이 돈만 주면 어디든 달려가는 속물의사가 된 건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휴머니즘? 사람을 살리는 건 의사의 의지이지 돈이 아니다? 그런 선배의사의 말이 그저 순진한 이야기일 뿐이라는 걸 <용팔이>는 보여준다.

 


'용팔이(사진출처:SBS)'

김태현이 일하게 된 한신병원 12층은 이런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 한신그룹의 회장 아내인 이채영(채정안)의 동선을 따라가 보자. 아무 데나 차를 세워두자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주차요원을 발로 차고, 곧바로 12VIP 병동으로 와서는 자신의 전용 방에 다른 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버럭 화를 낸다. 백화점에서 벌어지곤 하는 VIP의 갑질 논란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지 않은가.

 

그 곳의 코디네이터 신씨아(스테파니 리)VIP병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CS(customer satisfaction) 즉 고객만족이라고 한다. 그들은 병원 가면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환자가 아니라 언제나 준비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기만 하면 되는 고객님들이다.

 

의사가 환자를 고치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는 건 당연하지만 그것이 이 세계에서는 돈으로 좌우된다는 것이 차이다. 고객님들이 부르는 곳으로 왕진을 간 김태현이 재벌가 자제가 휘두른 깨진 병에 찔려 쓰러진 연예인을 고쳐주는 일은 의료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범죄 사실을 덮는 또 다른 범죄행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재벌가 자제의 폭력을 덮어주고 돌아온 김태현에게 병원장은 또 다른 의료상품이 생겼다며 칭찬해준다.

 

영화 <베테랑>이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재벌 3세의 갑질 폭력을 폭로함으로써 폭발적인 흥행을 거두고 있다면, <용팔이>의 갑질 폭로 역시 결코 약하지 않다. <베테랑>이 그리는 건 조폭과 그리 다르지 않는 재벌가의 갑질이지만, <용팔이>는 그것조차 돈만 주면 다 덮어주기도 하는 VIP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갑질 세계의 또 다른 실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곳은 병원이 아닌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의료행위조차 돈에 의해 좌우되는 거래행위로 구현되는 현실을 바라본다는 건 실로 씁쓸한 일이다.

 

<용팔이>의 김태현은 서민의 눈으로 그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 곳은 멋진 옷에 잘 빠진 자동차, 게다가 야외 경관이 뛰어난 창을 가진 개인 진료실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돈에 의해 덮여진 포장지일 뿐이다. 그 포장지를 떼어내면 추악한 욕망들이 꿈틀댄다. 무려 3년이 넘게 그 12VIP 층의 제한구역에 누워 있는 한여진(김태희)이 그 욕망의 실체다.

 

그녀는 그녀를 대신해 한신그룹 회장의 일을 하고 있는 배다른 오빠 한도준(조현재)에 의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한신그룹의 상속녀이지만 그녀를 병원에 묶어두고 대신 그룹을 장악하려는 한도준의 욕망이 만들어낸 범죄다. 그녀에게 병원은 생명이 아니라 감옥이다.

 

하지만 어둠의 세계에서 용팔이(용한 돌팔이)로 불리는 김태현은 이들과는 다른 존재다. 그 역시 멋진 옷에 멋진 차 그리고 화려한 진료실을 포장지로 갖게 되고 무엇보다 돈이면 다 하는 속물 의사의 겉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포장지 이면에는 가난하든 부자든 모두 똑같은 생명이라는 진정한 휴머니즘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그가 이 VIP 층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흥미로워질 수밖에 없다. VIP 층은 용팔이가 대결하고 있는 돈으로 갑질 하는 세상의 축소판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은 한여진에게 왜 용팔이가 구원의 존재로 다가오는가를 설명해준다. 모든 것이 자본이라는 철창으로 둘러싸고 있는 한여진에게 그것을 거두고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어줄 인물은 용팔이 같은 자본의 갑질을 극복하려는 인물 밖에 없기 때문이다.

 

VIP 병동에 들어간 서민 의사(겉으론 속물의사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라는 설정은 지금껏 우리가 의학드라마에서 좀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면들을 가능하게 한다. 마치 폐쇄공포증을 일으킬 정도로 병원과 병실 그리고 환자와 의사의 관계 속에서만 뱅뱅 돌던 의학드라마는 VIP 병동 의사라는 설정을 통해 병원 밖으로 나와 웬만한 범죄 영화를 연상시킬 정도의 이야기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팔이>가 괜찮다고 여겨지는 건 물론 극화된 면이 있지만 이 드라마가 지금 현재 병원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빈익빈 부익부를 고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의료민영화가 본격화된다면 이 빈익빈 부익부는 가속되어 생명, 나아가 범죄까지 돈 앞에서 거래되는 현장을 당연하듯 바라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용팔이>가 그려내고 있는 씁쓸한 세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