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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비평가는 평가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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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따뚜이’의 음식평론가와 ‘디워’의 평가

‘라따뚜이’를 보면서 ‘디워’를 떠올린다면 그것은 바로 예술가(혹은 창작자)에 대해 비평가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가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똑같이 출신(혹은 태생)의 문제가 등장하고 편견이 있으며 그 편견을 넘어서는 예술가가 있고, 무엇보다 혹독한 비평가가 등장한다.

‘라따뚜이’에서 절대미각으로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는 레미는 아이러니하게도 주방과는 상극 중에 상극인 생쥐다. 태생부터 요리사는 불가능하게 태어난 레미는 그러나 편견을 버린 견습생 랭귀니를 만나 함께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 그들이 일하게 되는 곳은 한때 별 다섯 개 짜리 최고급 레스토랑이었으나 혹독한 비평가, 안톤 이고의 혹평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 구스토 레스토랑.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 레스토랑의 창시자인 구스토가 모토로 했던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요리철학이다. 그 말에 코웃음을 쳤던 음식비평가 안톤 이고는 ‘요리는 절대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고, 구스토가 죽고 레스토랑을 인계 받은 스키너 역시 그 편견을 갖고 있었다.

랭귀니 대신 레미가 만든 음식은 구스토식의 요리법이 아닌 전혀 다른 레미만의 방식이다. 요리사들은 모두들 그 방식이 먹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 그 독창적인 맛은 프랑스 전체를 뒤흔들고 결국 음식비평가마저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디즈니 스타일의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지만 그 울림은 성인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될 만큼 깊고 크다.

최근 인터넷은 연일 ‘디워’에 대한 기사와 그 기사에 대한 댓글들로 뜨겁다. 처음에는 ‘디워’ 작품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더니 그 논의들은 점점 커져서 심형래 감독에 대한 편견으로 넓어지고 그것은 충무로와 기자, 평론가들이 합세해 ‘심형래 죽이기’를 하고 있다는 음모론으로까지 발전했다. 이제 ‘디워’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저만치 소외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억울한 심형래 감독만큼,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매도되는 억울한 기자들도 있을 법하다.

이것은 ‘디워’에 대한 논의라기보다는 기존 영화인으로 대변되는 충무로 그리고 그들과 한 통속으로 취급되는 기자들이나 평론가들과, 심형래로 대변되는 비주류 그리고 충무로 영화들에 신물이 난 관객들의 공방이 되고 있다. 그 공방은 마치 저 ‘라따뚜이’의 구스토와 안톤 이고의 논쟁이 된 ‘요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처럼 들린다. 영화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훈련받은 자들만 할 수 있는가. 또 만들어진 영화는 영화적인 문법 속에서 평가받아야 되는가, 아니면 그런 것과 상관없이 재미있으면 되는 것인가.

‘디워’에 대한 기사들의 내용을 보면, 물론 몇몇 선정적인 표현들로 심하게 작품 자체를 몰아붙인 것들도 있었지만, 여타의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비판할 것은 하고 칭찬할 것은 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영화인들이 만든 영화에 대한, 또 다른 영화인인 기자나 비평가들의 비판이 ‘저들만의 리그’로 여겨졌다면, 심형래 감독이라는 충무로 밖의 인물과 그 작품에 쏟아지는 비판은 관객들이 ‘자신들의 리그’에 투하된 충무로라는 기득권의 융단폭격으로 비쳤을 수 있다. ‘디워’는 작품 자체에 대한 논의를 떠나서 대중들이 평단을 보는 시각이 어떠한가를 보여준 작품이 되었다.

세상은 권력의 평준화를 향해 굴러간다. 한때 전문가 집단이 휘두르는 칼날에 대중들이 좌지우지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누구든 평이라는 칼을 들 수 있는 시대다. 즉 이제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요리가 맛이 있든 없든 그것은 전적으로 맛보는 자의 몫이다. 따라서 비평의 패러다임도 달라지고 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누군가를 가르치듯이 하는 비평은 더 이상 대중들의 마음에 다가가지 않는다. 대중들의 옆에 서서 충실한 가이드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비평이 해야할 일이 되었다.

‘라따뚜이’의 혹독했던 음식비평가 안톤 이고가 라따뚜이란 음식을 먹고 쓴 참회 섞인 비평의 글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레스토랑을 평점 할 때 누구나 그렇게 하듯이 혹평을 하는 게 쉬웠고 그것은 또한 잘 먹혔다’로 시작하는 참회의 글은 그만큼 장점을 찾아낸다는 것이 단점을 찾는 것보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끄집어내 작품을, 작품 그 이상으로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냈던 문학비평가 고 김 현 선생의 비평이 떠오르는 시점이다. 비평가는 더 이상 점수를 매기는 평가자가 아니다. 아니 평가자가 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