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타지와 현실이 공존하는 ‘브라보 마이라이프’
그들도 한 때는 요란한 록 기타 반주에 맞춰 머리를 흔들어댔던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장성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그들은 대신 노래방에서 주점에서 구슬픈 뽕짝을 부른다. 그들도 한 때는 자유, 열정, 꿈 같은 단어를 붙들고 술로 밤을 지샌 적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명예퇴직, 실업, 노후생활에 한숨짓는다. 그 때만 해도 그들은 제각각의 얼굴과 표정들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사회라는 틀이 재단해 놓은 똑같은 얼굴들이 되어있다. 가장이란 현실, 그 무게 때문에 ‘내 삶(마이라이프)’에 한번도 ‘브라보’ 해본 적 없는 그들. ‘브라보 마이라이프’는 현실이란 이름으로 거세된 가장들의 꿈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조민혁 부장(백윤식)의 로망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드러머를 꿈꾼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난 자리, 그가 앉아야 할 곳은 저 밥벌이의 전장으로 나가기 전, 꾸역꾸역 밥알을 밀어 넣어야 하는 아침 식사 자리다. 그 자리에서 아내는 곧 정년 퇴직할 조부장의 퇴직금으로 아들을 유학 보내자고 말한다. 즉 이 두 장면은 지금 현재 조부장이 처한 상황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그것은 그가 20대부터 버려 두었던 꿈과 지금 현재 정년 퇴직을 앞둔 50대가 되어 있는 자신의 현실만큼 먼 거리에 있다.
그가 그간 꿈을 버리고 어떻게 살아왔을 지는 박승재 과장(박준규)의 입을 빌려 말하는 조부장의 충고 속에 드러나 있다. ‘30대에는 눈치코치 보며 생활하고, 40대에는 들어도 못들은 척 50대에는 알아도 모르는 척’ 그렇게 버텨왔던 것. 하지만 그렇게 멀리 있다고 느껴왔던 드러머의 꿈이 늘 자신의 손아귀가 닿을 지점에 있었다는 걸 알아차린 조부장은 갈등하기 시작한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은데 한번쯤은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한번쯤은... 그러면 사치일까...”
작년부터 불고 있는 이른바 ‘아버지 영화’들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이 영화가 그들과 다른 점은 희생하는 아버지들의 환타지를 끄집어냈다는 점이다. 코미디를 지향하고 있는 이 영화가 시종일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이유는 샐러리맨이라는 현실과 이 환타지가 한 무대에서 공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부장의 손에 들린 드럼스틱에서 우리는 그 손에 들려 있던 서류가방을 떠올리고, 직장상사 앞에서 거래처 앞에서 손금이 없어져라 비벼대던 손바닥을, 그 처지를 잊고자 연실 술잔을 들어올리던 손을 떠올린다. 무엇보다 양복을 입고 드럼을 두드리는 조부장의 모습은 멀게만 느껴지던 꿈과 현실의 간극을 없애버린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은 단지 샐러리맨들이 꿈꾸지만 이룰 수는 없는 환타지만이 아니다. 누구를 위한 삶에서 나 자신의 삶으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지금 아버지들이 접하고 있는 현실을 영화는 조부장의 자기 다짐으로서 말하고 있다. 조부장이 아들에게 말하는 “더 좋은 꿈을 찾지 못했다면 포기하지 마라”라든가, 선술집에서 만난 젊은 시절의 자신을 통해 하는 “다른 거 다 필요 없습니다. (아들이)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말들은 지나온 후, 삶의 행복이 거창할 것 없는 자기 꿈에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아쉽게도 영화는 조부장 이외에 다른 인물들이 가진 다양한 꿈들을 조망해내지 못하면서, 풍부한 울림을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단 한 장면, 예를 들면 조부장의 손에 들려진 드럼 스틱이 허공을 가르면서 굉음을 쏟아내는 그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한 제 몫을 하고 있다 여겨진다. 적어도 그것은 지금의 가장들, 혹은 샐러리맨들의 좀처럼 뛰지 않을 가슴을 쿵쾅거리게 했을 테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영화가 그저 환타지가 아니라 실제 ‘갑근세 밴드’라는 직장인 밴드의 이야기를 다룬 현실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꿈을 거세한 건 사회라는 틀이 만들어낸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 역시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점을 영화는 환타지와 현실을 공존시켜 말하고 있다. 지금도 꿈꾸기에 당신은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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