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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재밌어진 '슈가맨', 파일럿과 무엇이 달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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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맨>, 파일럿 프로그램의 진화란 이런 것

 

사실 JTBC <슈가맨>이 파일럿으로 방영됐을 때만 해도 실망감이 컸었다. 무엇보다 유재석이 처음 비지상파에서 선보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파일럿에서 <슈가맨>은 저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의 또 다른 버전처럼 여겨졌고, 너무 많은 의욕으로 슈가맨을 찾아가는 VCR<TV는 사랑을 싣고>의 한 대목 같다는 평가마저 받았다.

 


'슈가맨(사진출처:JTBC)'

하지만 정규로 돌아온 <슈가맨>은 이런 VCR 도입 부분을 과감히 없앴고 온전히 스튜디오 버라이어티에 집중시킴으로써 웃음과 공감의 폭을 넓혔다. 가장 눈에 띄고 효과적으로 보이는 변화는 방청객과 방청석이다. 방청객을 20대부터 50대까지 나누어 방청객에게 각각 이른바 공감의 등을 세워 놓은 건 노래는 물론이고 이야기의 공감을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장치가 되었다.

 

슈가맨이 누구인가를 맞춰가는 초반 도입부도 이렇게 세대별로 구분된 방청석과 불빛이 세워지자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시각적으로 어느 세대가 더 많이 그 노래를 기억하는가가 드러났고, 이런 방청객들과의 공감대를 유재석과 유희열은 번갈아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슈가맨>의 가장 큰 맹점으로 지적됐던 몰라도 너무 모르는 노래가 가진 한계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직시함으로써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유재석이 선선히 많은 분들이 모를 수 있다는 걸 전제한 후 작은 공감을 큰 공감으로 만들어가는 게 목표라고 한 건 그래서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몰랐다가 차츰 노래를 들으며 기억이 소환되고 그것을 지금에 맞게 리메이크해 요즘 세대에도 어필하게 하는 과정은 유재석의 이 말을 실행해가는 과정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역시 방청객이다. 파일럿에서는 이러한 방청객들과의 교감 자체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소소한 마니아들만 아는 노래와 가수를 소환해 저들끼리 웃고 떠들고 좋아하는 느낌이 짙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방청객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음악을 통한 소통의 노력을 한 결과 심지어 몰랐던 노래에 대해서조차 관심을 갖게 되는 좋은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던 것.

 

이제 새로운 프로그램의 런칭 이전에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관행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1,2회의 파일럿 프로그램만으로 정규가 되느냐 마느냐에 대한 결정을 내리다 보니 어떤 아이템은 아쉽게도 버려지기도 한다.

 

사실 좋은 프로그램은 기획 아이템 자체보다 메이킹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제 아무리 기획이 좋아도 잘 만들어낸 것이 아니면 그 기획이 빛을 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슈가맨>은 이러한 파일럿에 지적되었던 문제들을 적절하게 해결하면서 진화시킨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프로그램 제작 결정권자들도 당장 반응이 영 시원찮다고 그저 버릴 것이 아니라, 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또 메이킹을 제대로 해서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200% 만들어낼 수는 없는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규로 돌아온 <슈가맨>은 그 지적들을 겸허히 수용하고 한 땀 한 땀 재미의 포인트들을 찾아나가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