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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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사신기’의 CG 선택, 효과적이었나

D.H.Jung 2007. 9. 1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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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이 신화를 끌어들이는 방법

역사를 다루는 사극이 사료가 거의 없고 신화만 존재하는 시대를 끌어들인다는 것은 과거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없는 사료를 상상력으로 메워나가는 이른바 퓨전 사극이 등장하면서 신화는 공공연히 사극의 소재가 되고 있다.

하지만 신화를 사극이란 틀의 드라마로 보여준다는 것은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신화를 날 것 그대로 그려낸다면 자칫 무협지나 환타지가 될 소지가 있다. 물론 사극의 스타일이 무협지 같거나 환타지 같은 것은 이해될 수 있는 일이지만 신화를 소화해내서 보여주는 사극 자체가 무협지나 환타지가 되는 건 문제가 있다.

신화는 역사는 아니지만 사극으로 들어왔을 때 적어도 그 상징적인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어져야 한다. 퓨전사극 ‘주몽’은 주몽신화를 드라마로 끌어오면서 신화적 의미보다는 영웅적인 인간의 건국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신화를 통해 그려졌던 주몽은 물론이고 해모수나 금와 같은 인물들은 신의 옷을 벗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주몽은 알에서 태어난 게 아니고 해모수와 유화부인 사이의 사랑으로 태어난다.

물론 거기에는 삼족오에 대한 이야기나, 다물활 같은 신물에 대한 신화적 이야기들이 환타지적인 스타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것은 주몽이란 인물의 신탁을 의미할 뿐, 그 자체로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는 물리적인 힘을 주지는 못한다. 드라마가 그려내는 고구려 건국은 신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 영웅적 인간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반면 ‘태왕사신기’가 신화를 끌어들이는 방식은 이것과는 다르다. 광개토대왕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단군신화를 본격적으로 화면에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이 사극은 단군신화에서 환웅과 웅녀 그리고 호족의 이야기를 영웅 탄생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즉 환웅이 말한 신탁에 기대 그 예언으로서 태왕과 그를 보필할 사신이 탄생한다는 얘기다.

신화 속 곰과 호랑이의 이야기를 웅족과 호족의 싸움으로 해석하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지만 ‘태왕사신기’가 택한 것은 환타지다. 환웅(배용준)은 전지전능한 인물로 등장하고 웅족의 대표인 새오(이지아)와 호족의 대표인 가진(문소리) 역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다. 청룡, 백호, 현무, 주작이란 상상의 동물 또한 실제로 등장한다. 사극으로서는 대단한 모험을 감행한 셈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두 가지다. 그 첫 번째는 CG의 힘이다. ‘태왕사신기’는 신화를 끌어오는 방식으로 CG를 통한 환타지를 선택했다. 애초에 단군신화를 끄집어내면서 두루뭉실 인간의 이야기로 신화를 훼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좀 낯선 면이 없잖아 있지만 ‘태왕사신기’가 CG를 활용해 신화 자체를 그려 내려한 점은 적절한 선택이었음에 분명하다.

여기에 ‘태왕사신기’는 안전장치를 하나 더 집어넣었다. 그것은 이 신화를 극중 인물의 이야기 속으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현고(오광록)의 내레이션을 통한 접근은 사극 속에서 자칫 붕 뜰 수 있는 환타지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갖는다. 즉 ‘태왕사신기’가 신화를 끌어들이는 방식은 나름대로의 효과를 거두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첫 회에서 이미 다 알고 있는 단군신화를 굳이 CG로 다 그려낼 필요가 있었나 싶은 것이다. 신화의 내용을 화려한 그래픽으로 보여준 것이 의미를 가지려면 이제 앞으로 진행될 담덕(배용준)과 사신의 이야기들이 단군신화의 틀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있을 때이다. 사극이 신화를 끌어들이는 방식에 있어서 ‘주몽’이 했던 선택, 즉 신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로 환원한 사극이 아닌 지금의 과감한 CG를 동원한 신화를 바탕으로 깔고 가는 선택의 적절함은 전적으로 앞으로 진행될 전개에 달려있다. 기왕에 꺼낸 CG라는 카드가 그저 볼거리에 머무르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