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완벽한 이웃...’이 잡은 두 마리 토끼, 멜로와 현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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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이웃...’이 잡은 두 마리 토끼, 멜로와 현실

D.H.Jung 2007. 9. 2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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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난 건 완벽한 이웃? 완벽한 사랑?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겉으로 보면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이다. 거기에는 백수찬(김승우), 정윤희(배두나), 유준석(박시후), 고혜미(민지혜)가 엮어 가는 전형적인 사각 멜로 라인이 주축을 이룬다. 유준석이란 재벌2세와 정윤희란 별 볼 일 없는 비서의 러브라인이 그렇고 욕망과 질투심에 눈이 멀어 그들의 사랑을 훼방하는 고혜미란 캐릭터가 그렇다. 드라마 속에는 심지어 멜로에서 익숙한 불륜 코드와 출생의 비밀도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전형적인 틀을 갖고 있는 멜로 드라마가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같은 재료를 갖고서도 버무리기에 따라서 전혀 다른 맛을 내는 음식처럼, 정지우 작가의 손맛이 색다른 멜로의 맛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소재로만 보이는 겉과 달리 이 멜로 드라마는 그저 멜로에 그치지 않고 좀더 휴먼드라마에 가깝게 확장되어 나간다.

멜로드라마를 통해 그 한계 넘어서기
사각 멜로 라인이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틀 속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백수찬이란 캐릭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전형적인 멜로 라인 속에서 백수찬은 우정이라는 색다른 이름의 멜로를 구축해낸다. 그가 사랑을 쿨하게 우정으로 덮어두자 멜로 라인의 경쟁구도는 사라진다. 백수찬이 진정으로 정윤희를 친구로서 아끼는 모습은 유준석마저 감동시킨다. 유준석은 “나 형이라고 부를 뻔했어요. 그런 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한다.

재벌2세인 유준석과 비서인 정윤희의 사랑이 전형적인 구석을 갖고 있지만 이 또한 드라마는 ‘세컨드 제안’이라는 파격적인 선택으로 벗어난다. 이 제안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돌발적인 것이 아니다. 살해당한 연수연(장혜숙)이 유회장의 세컨드였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세컨드 제안’은 세컨드에 의해 밀려날 뻔했던 본처의 아들, 유준석이 또다시 세컨드를 제안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드라마 구성 초기부터 이미 설정되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불륜 코드는 전면에 자극적으로 드러나기 보다 단지 이런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다. 따라서 여타의 멜로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전개양상에서 벗어난다. 고니(신동우)가 사실은 유회장과 세컨드였던 연수연의 아들이었다는 출생의 비밀 역시 여타의 드라마와는 다른 전개이다. 출생의 비밀을 통해 고니가 무언가를 얻게되는(하다 못해 부나 지위라도) 상황은 고사하고 고니 당사자는 그 비밀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멜로에 미스테리가 필요했던 이유
이렇게 멜로 드라마의 익숙한 소재들을 활용하면서도 이 드라마가 그 식상함의 늪에 빠지지 않은 것은 같은 소재라도 사용의 목적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이러한 소재들을 통해 모래알 같은 인간관계를 되묻는다. 드라마가 다채로운 이웃들의 사이드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동시에 미스테리라는 새로운 요소를 집어넣은 건 그 때문이다.

드라마는 인간관계의 끝장으로 살인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드러내놓고, 그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들을 통해 관계들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즉 당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비밀들을 끄집어내면서 ‘당신은 진정으로 그 사람들을 알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 미스테리를 집어넣을 때부터 이 멜로 드라마로 포장된 드라마는 긴장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신이 알고 있던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거나 다른 반응을 보일 때,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 배반에 놀라면서 드라마가 얘기하려는 관조적 시각을 얻게 된다. 문제는 멜로라인이 너무 공고하게 됐을 때이다. 유준석이 눈물을 쏟으면서 정윤희에게 세컨드 제안을 할 때 시청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던 것은, 멜로와 현실 사이에서 시청자들이 멜로에 더 강하게 끌렸기 때문이다.

당신은 완벽한 이웃을 만났나
유준석과 정윤희의 멜로라인이 좋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할만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부분만을 본다면 이 드라마는 반쪽밖에 보지 못한다. 작가가 종방연에서 밝혔듯이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백수찬이 바로 ‘완벽한 이웃’이기 때문이다. 유준석과 정윤희의 멜로라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백수찬이란 인물이 보여주는 ‘사람냄새’이다. 초반부에는 제비로 시작했지만 제비가 가진 장점(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만 취한 백수찬은 후반부로 오면서 이웃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이해하는 완벽한 이웃으로 돌변한다. 이웃들의 숨겨진 진면목까지 끌어안는 그는 겉모습만 보고 속을 이해 못하는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비교된다.

그것은 정윤희라는 여자를 만나면서 얻게된 결과이다. 백수찬은 한 여자를 얻느냐 마느냐의 사랑을 쿨하게 포기하면서 좀더 인간적인 선택을 한다. 여자에게는 친구가 되고 옆집 사람들에게는 이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백수찬 같은 선택은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그걸 시청자들이 함께 공감하는 순간, 이 드라마는 멜로를 넘어서게 된다. 마지막회에서 각 캐릭터들이 보여준 소유가 아닌 존재로서의 사랑(백수찬은 물론이고 유준석까지)은 그 공감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당신은 이 드라마를 통해 완벽한 이웃을 만났는가. 이 드라마는‘완벽한 남자 혹은 여자를 만나는 법’이 아니라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이다. 사랑이 아닌 이웃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드라마는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 좀더 넓은 인간의 사랑을 담는다. 즉 멜로와 현실을 동시에 잡아냈다는 뜻이다. 이 멜로드라마가 사회극의 냄새를 풍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멜로의 실험이 성공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성패를 떠나 그 시도 자체가 의미 있었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