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이산’, 궁에서 살아남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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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궁에서 살아남기

D.H.Jung 2007. 10. 1.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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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만이 가진 재미, 생존의 드라마

“저는 절대 왕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갓 11살인 세손(박지빈)이 어미인 혜경궁 홍씨(견미리)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까지의 사극에서라면 모두들 들어가고 싶어하는 궁이며, 되고 싶어하는 왕이지만 세손은 왕이 되지 않겠단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혜경궁 홍씨의 답변은 더 충격적이다. “왕이 되어 권세를 누리라는 게 아닙니다. 세손께서는 살아남기 위해 왕이 되셔야 합니다.” ‘이산’은 궁이라는 세상의 감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왕이 되어야 하는 한 남자, 이산의 이야기다.

세손이 성송연(이한나)을 만나 “이름을 불러다오”라고 말하고, 성송연이 거기에 맞춰 어색하게 “산아!”라고 부르며, 장차 왕이 될 세손이 천한 성송연과 박대수(권오민)에게 동무라 부르는 것처럼, 이 사극은 정조라는 왕을 그리기보다는 이산이라는 한 사내의 고달픈 삶을 그려낸다. 따라서 이 사극을 부르는데 있어서 흔히 ‘이산 정조’라 칭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굳이 사극의 제목을 ‘이산’이라 한 뜻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세손이라는 상징적인 위치로서 겪는 일로 치부하기엔 11살짜리 아이가 겪는 온갖 시험들은 너무나 가혹해 보인다. 성송연, 박대수 같은 동무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 의젓함이 어엿한 왕의 씨임을 증명하지만, 혜경궁 홍씨 앞에서 “어마마마 궁이 무섭습니다. 할바마마도 무섭습니다.”라고 흐느끼는 세손은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이 아이를 이런 시련 속으로 빠뜨렸을까.

그것은 바로 아버지인 사도세자(이창훈)의 죽음 때문이다. 드라마는 영조(이순재)가 왜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 자세한 언급이 없다. 그저 영조가 꿈을 꾼 장면이 등장할 뿐이고 누군가의 모함(아마도 노론의)을 받은 것으로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사도세자가 왜 죽었느냐가 아니라, 그가 죽음으로 해서 남겨진 불씨, 즉 세손 이산마저도 제거될 위기에 몰렸다는 것이다.

사도세자를 죽게 하고 권세를 얻은 이들이 장악한 궁은 이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이들만이 거처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 아니고, 언제 어디서 죽음의 칼날이 날아올지 모르는 전장이 된다. 이산은 그들 앞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발휘해 살아남아야 한다. 이렇게 보면 이 드라마는 위기상황에 몰린 한 주인공이 그 단계를 헤쳐나가는 롤 플레잉 게임을 닮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단지 이산 단독의 게임이 아닌, 성송연과 박대수 같은 지체 낮은 자들이 함께 하는 게임이란 점이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구하기 위해 궁 밖에서 저자거리로 도망쳤다가 왈자패들에게 잡혀 죽을 위기에 몰렸을 때나, 세손이 거처하는 궁 앞마당에서 조총이 발견되어 위기상황에 몰렸을 때도 결정적인 힘을 주는 이는 성송연이다. 그것은 먼 거리에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상관없이 사건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그러니 이들 간에 피어하는 사랑은 애틋함 이상의 애절함을 담는다. 함께 서로를 생존하게 하면서 생겨난 애정이기 때문이다.

‘이산’은 궁에 갇혀 저자거리 보통사람들보다도 불행한 삶을 살아야했던 이산이란 이름의 정조를 다룬다. 무소불위의 왕이 중심에 되어 흘러가던 과거의 사극들과 비교한다면 ‘이산’이 그리는 왕은 이다지도 다르다. 왕이 싫고 궁이 싫은, 하지만 생존을 위해 왕이 되어야만 하는 한 사내가 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사투의 시간들. 그리고 기서 피어나는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 이것이 ‘이산’이란 사극만이 가진 독특한 재미의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