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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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 시대 여는 블록버스터 드라마들

D.H.Jung 2007. 10. 12.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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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사신기’와 ‘로비스트’, 두 블록버스터의 의미

수목은 이제 말 그대로 안방극장의 밤이 되어 가고 있다. 430억을 들인 MBC의 ‘태왕사신기’와 120억을 들인 SBS의 ‘로비스트’, 두 블록버스터가 맞대결을 벌이며 제각각 갖고 있는 색깔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학을 얘기할 수 있는 영상은 물론이고 완성도 높은 스토리라인, 연기자들의 혼이 실린 연기가 어우러진 이 두 작품은 의미 있는 기획은 물론이고 완성도 면에서도 우리 드라마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 것이 분명하다.

‘태왕사신기’, 전혀 다른 사극의 가능성
‘태왕사신기’는 지금까지 우리가 접해왔던 사극과는 전혀 다른 사극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 극적 허구의 만남으로서 존재했던 사극은 역사라는 틀 속에서 좀체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혹자는 사극이 역사를 벗어버리면 왜곡이 된다 하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사극은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최근 사극의 경향이 상상력을 더 요구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변용은 이제 사극의 존재 이유가 되고 있다.

다만 필요해진 것은 사극이 과거처럼 역사교육의 한 도구로서도 사용될 수 있다는 믿음은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짜 역사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은 교육계다. 사극이 교육계가 못하던 일들을 해왔다가 이제 안 한다고 해서 그게 비난받을 일일까. 사극은 태생부터 교육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역사보다 드라마에 더 충실해진 ‘태왕사신기’는 지금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앞으로 등장할 사극들의 향방을 가름하는 드라마가 될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이 특별한 사극이 앞으로 바꾸어놓을 첫 번째 것은 사극이 여타의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그저 즐기면서 보는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드라마가 될 거라는 점이다. CG 활용이 주는 상상력의 자유는 더 다양한 층위의 퓨전사극 혹은 환타지사극들의 출현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한 가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사극들이 도래할 것이고 그것은 어쩌면 진정한 역사교육(역사적 사실 외우기가 아닌 사관을 기르는)에 더 가까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로비스트’, 전혀 다른 드라마의 가능성
이제 단지 4회만 방영된 상황이지만 ‘로비스트’가 보여주는 상상력의 폭은 과거 드라마들보다 훨씬 넓어졌다. 드라마는 동해 북한 잠수함 침투 및 로버트 김 사건 같은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끌어온다. 이른바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이 엮어진 팩션이라는 말인데, 그렇다고 해서 실제 사건이 이야기 전개에 족쇄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실제 사건은 허구에 좀더 현실감을 부여할 뿐이다.

동해의 작은 동네에서부터 벌어진 사건은 이역만리 미국에서의 엇갈린 남녀의 운명적인 만남까지 이어지며 자유로운 공간이동을 한다. 드라마 전개에 있어서 공간이동이 자유로워지자 사건 전개 역시 틀에 박힌 스토리구조에서 벗어나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마리아(장진영) 가족이 동해안 작은 시골구석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겪게되는 일련의 과정은 하나의 가족 모험드라마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로비스트’라는 제목에 걸맞게 무기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두 캐릭터의 설정 역시 흥미롭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 총을 든 해리(송일국)와 어느 날 아버지가 총에 맞는 장면을 본 마리아는 무기에 대한 입장 때문에 후에 사건 속에서 부딪칠 것이 자명하다. ‘로비스트’는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가진 볼거리에 나름의 의미와 재미요소를 두루 갖춘 드라마라 생각된다.

사극이든 현대극이든 이런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등장하는 이유는 더 많은 볼거리와 다른 이야기, 좀더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능하게 해줄 틀을 요구하는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처럼 블록버스터화 되어가는 드라마의 변화는 안방과 극장 양쪽의 변화를 촉발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HD 화질을 갖춘 블록버스터가 홈 시어터와 함께 안방을 극장으로 만든다면, 극장은 결과적으로 테마파크화가 가속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