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달인’, 그들이 아름다운 이유
정경미씨는 양파를 깐다. 1Kg을 까면 100원이란다. 그녀는 좀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양파 까기의 달인’이 되었다. 김송이씨는 부업으로 마스크 팩을 접는 일을 했다. 한 장을 접으면 5원이 남는단다. 점점 속도를 늘린 그녀는 하루에 6천 개 이상을 접는다고 한다. 그녀는 두 달 치 일당으로 냉장고를 새로 구입했다. SBS TV, ‘생활의 달인’을 보면 안다. 달인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달인(達人)’이란 ‘학문이나 기예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 혹은 ‘널리 사물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을 뜻한다(네이버 사전 인용). 하지만 ‘생활의 달인’에는 학문이나 기예에 통달한 그런 달인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적이고 유달리 정이 많으며 특히 직업의 귀천을 떠나 땀흘리는 일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달인들만 등장한다. 그들을 달인으로 만든 것은 생활과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달인의 종류도 가지가지다. 신문배달, 마트 계산, 정류소 청소, 설거지, DVD 봉투에 넣기, 부채 주름에 댓살 넣기, 누룽지 만들기, 밥상 나르기, 수건 접기, 수건 배달하기, 봉투 접기, 은행 까기 등등.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이 발굴한 달인은 거의 대부분의 일상사에 걸쳐 있다. 어떤 이는 가사 일을 하다가 달인이 됐고 어떤 이는 순대 썰기를 퍼포먼스 수준으로 해내면서 달인이 됐으며, 어떤 이는 3천 평 물류 센터의 옷을 분류하면서 옷을 척척 던져 딱 맞게 상자에 넣는 달인이 됐다.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이 달인들이 하는 일은 이른바 정보화 사회에서는 이제 뒤안길이 된 육체노동이 대부분이다. 덜 배웠고 남들보다 가난하지만 그로 인해 몸으로 하는 한 가지 일에 있어서 묘기에 가름하는 기술을 터득했다. 그래서일까. 모성애로 무장한 천하장사 수준의 힘을 가진 아줌마들이 하는 힘겨운 묘기를 방불케 하는 퍼포먼스(?)를 볼 때면 그 아름다움에 눈물마저 핑 돌게 된다. 덕분에 여기저기 굵어진 근육과 알통, 그리고 물집과 굳은살로 다 갈라져버린 손바닥을 지닌 그녀들이 카메라 앞에서 수줍은 표정을 지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 중 한 아줌마가 했던 말이 정답이다. “생활에서 나오는 알통은 아름다운 것”이다.
열심히 일을 하다 달인이 되어버린 이 ‘생계형 달인들’의 주변에는 가족들이 있다. 좀더 좋은 옷에 좋은 음식을 먹이기 위해 시작한 이 달인들의 삶은 그래서 늘 보상받는다. 비누를 곽에 넣는 엄마 옆에서 조막 만한 손으로 어느새 달인 수준(?)으로 곽을 만들어내는 어린 아이의 말이 그것을 대변한다. “이거 만드는데 손 아프지 않아요?”하는 질문에 아이는 “조금 아파요. 하지만 엄만 더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도와드리는 거예요.”하고 말한다. 이런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못할 일이 뭐가 있을까.
‘생활의 달인’은 생활 속에서 어느새 고단함을 웃음으로, 어려움을 달인으로 극복한 사람들을 위한 헌사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달인에게 과제로 내주는 미션을 통해 노동은 하나의 도전해야할 ‘기예’의 차원으로 격상된다. 그저 낮은 곳에서 궂은 일로 생각하며 살던 사람들 속에서, 달인을 발굴함으로써 그 일이 하찮은 것이 아님을 동료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에게까지 전해준다.
그러니 ‘생활의 달인’이 재미의 차원을 넘어서 어떤 숭고한 느낌마저 주는 이유는 바로 육체노동에 대해 프로그램이 견지하고 있는 따뜻한 시선 때문이다. 신기에 가깝게 은행을 까는 달인의 딸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20년 동안 은행을 깠는데, 냄새난다고 가족들 모두 창피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안 그래요. 지금은 자랑스러워요. 우리 엄마가.” 생활은 달인을 만들고, 달인은 행복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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