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인 말장난? 대화방식의 실종!
TV가 호통을 치고 면박을 준다. 물론 저들끼리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결국 시청자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기에 그 호통과 면박은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던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때론 욕보다 더한 비아냥을 한다. “이거 뭐야?” 여기서 이거라고 물건 대하듯 지칭한 대상은 물론 사람이다. 그것도 쇼프로그램이 게스트랍시고 출연시킨 출연자다.
젊은 여성연예인을 출연시켜놓고는 장기라고 보여주는 게 ‘혀 놀림’이다. TV를 보는 시청자에게 직접 하는 건 아니지만 그걸 보는 상황에서 이상하게 성희롱을 당한 기분을 갖게 되는 건 그의 혀 놀림이 결국 이편의 TV 앞에 앉아있는 시청자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쇼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들 사이에 대화가 오가던 것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그들은 대신 삿대질을 하고 멱살을 잡는다.
사회는 다문화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TV는 공공연히 시대를 역행한다. 타국의 이색음식을 체험하는 자리에서 그들에게는 고급음식인 것이 우리에게는 혐오음식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거기에 노골적으로 호통을 치고 삿대질을 해댄다. 상대국에 대한 문화를 내놓고 비하하는 꼴이다. 이 정도 되면 TV는 차라리 과거 ‘바보상자’일 때가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된다. 만일 TV를 하나의 캐릭터로 비유할 수 있다면 요즘 TV는 건달도 못되는 ‘넘버3’ 정도로 보인다.
대표적인 막방(막 나가는 방송)은 ‘라디오 스타’다. 동명의 영화가 가진 아련한 향수의 이미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이 방송은 게스트를 왕따 놓는 재미에 빠져있다. 게스트들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고 저들끼리 노는 꼴을 쳐다봐야 한다. 가끔 게스트에게 던지는 질문은 인신공격성이거나 루머 확대재생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로를 헐뜯고 깔아뭉개고 비난하고 무시하고 멱살을 잡는 게 이 방송의 컨셉트다. 어떻게 방송이 이런 수준에까지 오게 되었을까.
박명수로부터 시작된 호통개그는 사실 이경규 같은 개그맨이 이미 했던 개그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떤 선이 있었다. 호통을 친 연후에는 그것이 개그였다는 것을 알려주듯 자신이 무너지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이 적절한 균형감각이 없을 때 호통개그는 개그가 아닌 자극만 남은 호통에 머물 수밖에 없다. 박명수 역시 이경규와 비슷한 형태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그 양상이 달라졌다. 호통은 이제 박명수를 넘어서 하나의 개그 아이콘이 되었다.
게스트를 출연시키는 쇼 프로그램에서 호통은, 쇼가 갖는 홍보성이나 연예인의 신비주의를 깨는 쾌감을 제공한다. 시청자들이 “저건 또 홍보네” 하고 짐작해 프로그램이 식상해질 때, 호통은 그 호통 받는 연예인의 감추어진 속내를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통쾌할 수 있다. 쇼 프로그램들이 연출된 화면과 영화나 드라마 홍보에 치중하면서 떨어진 재미를 다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쓰고 있는 건 리얼리티쇼다. 즉 호통과 면박은 리얼리티쇼의 한 방식으로 등장한 것으로 봐야 한다.
‘무릎팍도사’가 화제가 된 것은 게스트를 위한 홍보 프로그램의 이미지를 벗어냈다는 데 있다. 배틀 형식을 가지고 게스트가 고수하려는 신비주의를 벗겨내는 노골적이고 공격적인 인터뷰가 시대적 요청에 맞아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탈신비주의 전략은 특정 연예인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통과의례가 되기도 한다.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이 더 크게 욕을 먹는 것은 신비주의화되어 인플레이션되어 있는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런 탈신비주의 프로그램 속에서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살기 위한 필수가 된다.
지금의 ‘무릎팍도사’는 어떤가. 결과는 처음부터 나와있던 것이지만 또 다른 홍보전략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형식은 거칠지만 내용은 홍보다. 문제는 이렇게 인터뷰가 가진 본래의 목적이 왜곡되면서 나타나는 거친 말투와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는 언변이 자극적으로만 흐르는데 있다. 이렇게 되면 인터뷰가 목적하던 게스트의 진면목이 밝혀지는 재미는 사라지고 점점 욕에 가까운 말 잔치의 재미만 남게 된다는 점이다.
같은 리얼리티쇼를 추구하지만 ‘무한도전’이 ‘황금어장’의 두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와 ‘무릎팍도사’와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적어도 ‘무한도전’은 프로그램 목적에 부응하는 노동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막노동에 가까운 상황 속에서 나오는 리얼한 말들은 그 자체로 어떤 건전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황금어장’은 무성한 말 잔치로 시작해 말 잔치로 끝난다. 그 말이 어떤 기능을 할 때는 노동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저들끼리의 농담과 신변잡기(그것도 자극적인)에 머물 때 자칫 언어폭력으로만 끝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방송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될 대화의 방식에 끼치는 폐해다. 대화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이해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즉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방송이 보여주는 대화의 화법은 사라진지 오래다. 말 대신에 호통과 면박과 욕에 가까운 비아냥, 그것도 모자라 멱살을 쥐고 삿대질을 하는 TV 앞에서 우리네 아이들은 도대체 무얼 배우게 될까. 시청자를 희롱하는 TV,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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