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며느리 전성시대’의 재미와 공감, 그 이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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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전성시대’의 재미와 공감, 그 이유

D.H.Jung 2007. 11. 23.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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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과 생활을 아우르는 고부갈등을 포착하다

‘며느리 전성시대’의 스토리 라인은 양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족발집과 청담동집 양가 사이에 벌어지는 유쾌하고 발랄한 며느리, 조미진(이수경)과 시어머니의 부딪침이다. 물론 그 갈등 속에서 며느리의 고충은 당연하지만, 겹사돈을 향해 달려가는 스토리로 볼 때, 역지사지의 위치에서 양가는 며느리의 손을 들어줄 것이 명백하다. 제목 그대로 ‘며느리 전성시대’인 셈이다.

이 이야기는 코믹터치로 그려지면서 갈등 자체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가볍고 경쾌한 진행은 고부갈등이라는 해묵은 드라마 소재를 새롭게 만든다. 며느리는 눈물 짜고 시어머니는 구박하는 공식에 익숙했던 분들이라면 이 상큼 발랄한 며느리의 좌충우돌 이야기에서 신선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고부갈등이라는 소재는 그 자체가 가볍게만 다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자칫 무거운 소재를 희화화시킨다는 비난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또 하나의 스토리 라인을 병렬적으로 다룬다. 그것은 차수현(송선미)이 며느리로 있는 성북동집 이야기다. 족발집 고부간의 이야기와는 상반되게 이 이야기는 무겁고 심각하다. 시어머니인 이명희(김혜옥)는 이미 며느리를 쫓아낸 전적(?)까지 있는 인물. 며느리를 못 잡아먹어 안달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게다가 남편이라는 사람은 전처를 잊지 못해 방황하니, 며느리인 차수현은 마음 둘 곳이 없다. 제목과 정반대의 ‘며느리 수난시대’를 보여준다.

극단적인 시집살이 속에서 차수현은 자꾸만 눈을 바깥으로 돌린다. 김기하(이종원)는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다. 그것은 불륜이다. 불륜을 다루는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욕을 먹는 이유는 그 원인으로 욕망이라는 천편일률적인 공식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 욕망은 성공이 될 수도 있고, 육체적 욕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제시하는 불륜의 이유는 시집살이다. 욕망이라기보다는 도피에 가깝다. 따라서 끝없는 핍박과 무관심 속에서 누군가의 관심을 간절히 바라는데서 비롯되는 그녀의 불륜은 비난보다는 동정을 끌어낸다.

반면 시어머니인 이명희가 보이는 일련의 행동들은 거의 폭력에 가깝다. 며느리에게는 늘 명령을 하고, 잘 했다는 칭찬보다는 못한 부분을 끄집어내기 바쁘다. 며느리는 그 안에서 시어머니의 말 잘 듣는 기계처럼 무표정해진다. 점점 기대감이 없어지자 차수현은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는 대신 자신의 불륜에도 그만큼 당당해진다. 차수현은 이 관계의 끝을 이미 목도했기 때문이다. 남편의 전처가 갔던 그 길을 말이다. 차수현의 도피로서의 불륜은 이쯤 되면 거의 생존에 가깝다. 생존을 위한 선택은 그것이 어떤 것이라도 비난하기가 어렵다.

이 성북동집 이야기는 ‘구박하는 시어머니 - 당하는 며느리’의 전통적인 고부갈등 드라마의 전통을 따르고 있지만 여기에도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며느리가 과거처럼 그저 당하기만 하고 누군가에 의한 구원을 기다리기만 하는 존재로 그려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답답하기만 했던 차수현이란 캐릭터가 적극적으로 불륜을 선택하는 지점에서 드라마는 전통적인 고부갈등의 틀을 넘어선다. 시집살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불륜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는 고부갈등에 있어서 도발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두 스토리가 가진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대결구도는 그 무게감이 다르다. 조미진이 며느리로서 겪는 어려움은 불편함의 차원을 넘지 않는다. 그것은 퇴근 후 족발집에서 일을 해야 하거나, 주말에 회사에 나가려고 눈치를 봐야 하는 정도에서 멈춘다. 그러니 그 대결은 새로운 사람이 다른 환경의 생활 속으로 들어와서 서로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으로 파국을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차수현의 어려움은 불편함을 넘어서 불쾌함에 다다르고 급기야는 인간적인 모멸감에 이른다. 이것은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족발집의 대결구도가 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성북동집의 대결구도는 생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생활과 생존이라는 서로 다른 무게감의 고부갈등을 병렬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에서 ‘며느리 전성시대’는 재미와 공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된다. 생활을 다루는 족발집의 이야기가 시집살이의 디테일들을 통한 웃음을 유발한다면, 생존을 다루는 성북동집 이야기는 시집살이가 주는 감정의 편린들을 모아 공감과 눈물을 유발한다. 불륜이라는 소재가 가진 논란의 소지는 시집살이라는 새로운 틀 속에서 공감으로 바뀌고, 또 한 편의 발랄한 이야기를 세움으로 해서 그 무게에 함몰되지 않는다. 또한 고부갈등을 희화화시키는 가벼움은 다른 한 편의 심각한 이야기를 통해 현실에 발을 디디게 만든다. ‘며느리 전성시대’의 재미와 공감은 바로 이 긴장과 이완을 반복시키는 두 스토리의 변주에서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