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나’가 보여주는 정치세계
‘왕과 나’가 본격적인 정치색(?)을 띄면서 캐릭터의 되살이(뿌리를 잘랐으나 다시 살아나는 것)를 시도하고 있다. ‘왕과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왕인 성종(고주원)과 나인 김처선(오만석)의 캐릭터가 조치겸(전광렬)이란 권력형 내시의 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그러자 드라마는 궁중여인들의 암투극으로 흐르면서 본래 하고자 했던 방향성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왕과 나’는 예종독살설이 불거져 나오면서 판내시부사인 조치겸의 탄핵설이 등장하고, 이러한 원로내시들의 전횡에 맞서는 김처선의 내시부 개혁과 쇄신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잘만 하면 이 정치적 사건들을 통해 그간 살아나지 않았던 왕(성종)과 나(김처선)의 캐릭터가 되살이될 수도 있게 되었다.
그 이유는 성종이 정희왕후(양미경)의 수렴청정을 벗어나 본격적인 정치의 첫발을 디디면서 우선적으로 뇌물청탁이 오가는 내시와 조정대신들의 고리를 끊는 것을 첫 과제로 삼았기 때문이며, 그 핵심에 김처선이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왕과 나’는 두 캐릭터를 되살리고 본격적인 정치세계의 이야기로 전환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개혁, 쇄신, 탄핵, 퇴진, 뇌물청탁, 부정비리...’ 같은, 우리가 최근 몇 년 동안 뉴스를 통해 들었던 수많은 단어들을 쏟아내면서 이제 ‘왕과 나’의 이야기는 정치로 접어들고 있다. 단어들의 뉘앙스로서 알 수 있듯이 ‘왕과 나’가 보여주는 정치세계는 우리가 지난 5년 전 숱하게 들으며 염원했던 개혁이다. 김처선과 성종은 본분을 잊고 사리사욕에 빠져 전횡을 일삼는 내시부 수장들과 한명회(김종결)를 위시한 조정대신들에 대한 개혁의 칼을 들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재미있는 것은 ‘왕과 나’가 보여주는 정치인의 모습이다. ‘왕과 나’의 인물들은 청렴과 부패로 명확히 나눠지지 않는 캐릭터를 갖고 있다. 조치겸은 현재 부패한 원로 내시들의 탄핵을 받는 인물이지만 그 자신 또한 청렴결백하다 할 수 있는 입장이 못된다. 드라마 상이지만 그 자신도 권력을 위해 예종을 독살하고 김처선의 아버지까지 죽인 부패한 정치인 중의 한 명이다. 조치겸은 비판에 직면할 때마다 그것이 주상전하를 위한 충정이었다는 변명만을 거듭한다. 즉 ‘왕과 나’의 조치겸이란 인물로 그려진 정치세계란 대의명분을 위해 저질러지는 악행이 받아들여지는 세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치겸은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거둬 지금의 위치까지 세워준 노내시(신구)와 정면으로 맞서면서 김처선의 개혁에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 개혁의 중심에 자신이 서지 못하는 것은 저 스스로 떳떳한 위치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조치겸이 노내시와 척을 지고, 주상전하가 하사한 칼자루를 김처선에게 건네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저 스스로 노내시라는 뿌리를 자르고, 김처선의 뿌리로서의 자신 역시 잘라내야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암시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결국 이 국면의 전환도 조치겸이란 캐릭터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치겸은 노내시 앞에 김처선을 세우고 그에게 자신까지 제거할 칼까지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왕과 나’가 지금 다루고 있는 정치개혁의 이야기는 이 사극이 보여주는 뿌리를 자르고 된 내시들의 이야기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뿌리를 자르면서 욕망(사리사욕)을 버려야 했던 내시들이 오히려 부귀영화라는 잿밥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족벌이라는 또 다른 뿌리를 만들어내는 상황. 이것을 개혁하고자 조치겸은 노내시라는 뿌리를 자르고, 김처선은 조치겸이란 뿌리를 잘라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뿌리를 자른다는 행위는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가지지만 분명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패의 고리로서의 뿌리를 뽑아내는 개혁의 이야기가 어찌 내시가 등장하는 사극 속의 허구라고만 할 수 있을까. 약해 보이기만 했던 김처선이란 인물이 강한 면모를 보이면서 단행하고 있는 개혁 속에서 좀더 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작금의 정치현실과 내통한 심사가 편치만은 않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본래 대중들이 희구하는 환타지를 기본적으로 담고 있다면 ‘왕과 나’의 그것은 이제 몇 일 남지도 않은 투표일을 앞두고 최선책보다는 차선책을 찾아야 하는 절망감에서 비롯된다 할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라도 김처선이란 캐릭터가 되살이되어 개혁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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