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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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시청자 울리는 유오성의 힘

D.H.Jung 2006. 7. 2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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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오성의 복합연기

유오성의 연기를 보면 참 복합적(?)이란 생각이 든다. 연기라는 것이 행복하면 웃고, 슬프면 울고, 화가 나면 화를 내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오성은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수많은 감정과 심리에 따라 표정과 손짓, 행동이 어찌 다 똑같을 수 있을까. 유오성의 섬세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복합감정의 표현은 자칫 단순할 수 있는 드라마에 미묘한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투명인간 최장수’는 유오성이 가진 이런 힘이 백분 발휘되고 있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편의적인 것이지만 ‘투명인간 최장수’를 장르적으로 구분해보면 어떨까. 드라마 첫 회의 장면들은 이 드라마가 마치 조폭이 등장하는 형사액션물이라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를 든 일단의 조폭들과 대결을 벌이는 최장수의 모습은 과거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를 연상케 했다. 그런데 그 액션에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었다. 심각하다기 보다는 우스꽝스런 코믹이 있었다는 것이다. 늘 얻어터지고 깨지면서도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바가지를 긁히는 최장수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좀더 드라마가 진행되자 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와 아버지로서의 사랑이 등장하며 휴먼드라마를 포함시키더니, 아내 오소영의 옛 남자친구 하준호가 등장하면서 멜로드라마로 연장된다. 물론 이 드라마의 기조는 휴먼드라마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속에는 액션과 코믹, 멜로가 복합적으로 녹아있는 게 사실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건 아무래도 유오성이 가진 연기의 힘이 아닐까.

오소영을 앞에 둔 최장수의 얼굴은 웃고 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앞에 두고 있기에 웃는 것이다. 그런데 오소영 옆에는 하준호가 있다. 그리고 오소영은 선언한다. “난 지금껏 단 한번도 당신과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고. 그러자 최장수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찡그려지면서 폭발한다. 그는 애꿎은 하준호의 차를 부순다. 그리고는 다시 애원하는 얼굴로 바뀐다. “나 정신차리게 해주려고 그러는 거지? 거짓말이지?” 그렇게 다시 달래듯 대사를 건넨 유오성의 웃는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단 몇 분도 되지 않는 이 장면 속에서 유오성이 한 연기는 행복과 슬픔, 분노, 회유 같은 단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심리의 표현이었다.

최장수가 여관방 욕조에 장미꽃잎을 뿌리는 장면은 섬뜩한 슬픔을 안겨주었다. 바보 같은 얼굴로 손에 피가 나는 지도 모르고 꽃잎을 따서 뿌리는 장면은 알츠하이머라는 막연한 병에 대한 실감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장면에서도 유오성은 멍한 표정으로 바보처럼 웃다가 깨어나서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슬픔에 빠지는 연기를 선보였다.

이것은 최장수가 오소영에게 위자료라며 돈을 건네주는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식사를 하자”는 최장수에게 오소영이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고 하자, 실망스럽지만 그걸 숨기는 얼굴의 최장수가 봉투를 건넨다. 오소영은 “받지 않겠다”하고 최장수는 “단지 내가 미안해서”라고 말하며 봉투를 건네준다. 헤어지는 장면에서 횡단보도 건너편 오소영에게 최장수가 소리치는 장면은 아마도 다른 연기자가 했다면 실소가 나왔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찌 보면 간지러운 대사, “정말 나랑 결혼하면서부터 행복한 적이 없었어?”라는 그 외침 속에 그간 최장수가 속으로 웅크려 놓았던 수많은 감정들이 녹아들어 있었다. 고개를 가로젓는 오소영의 그 부정을 보기 위해 뛰고 또 뛰어야 하는 최장수의 모습에서 아마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웃으면서 울거나, 울면서 웃거나 하는 연기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것은 그것이 실제 인간관계에서의 진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드러내놓고 그렇게 감정을 표현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일을 겪었을 때 우리가 마음 속에 갖는 건 이러한 복합적인 것이지 단순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연기는 몸과 동작으로 그 감정들을 표현해내야 하는 것이기에, 실제로 웃으면서 울어야하는 것이다. 물론 그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유사한 상황에 공감하게 된다.

상황과 감정을 단선적으로 이끌어 가는 트렌디 드라마들은 이제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대신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분노하면서도 굴종하고, 군림하면서도 고뇌하는 복합적인 감정으로 진정성에 호소하는 드라마들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돌아와요 순애씨’에서 섹시하면서도 푼수 같고, 털털해 보이면서도 섬세한 연기를 펼치고 있는 박진희에 대한 극찬 역시 그 리얼함 이면에 ‘그 상황이라면 충분히 그랬을만한’ 진정성에 있었던 건 아닐까. ‘투명인간 최장수’라는 제목에서 풍기듯이 유오성이 가진 힘은 비극을 희극으로도 끌어안는, 그럼으로 해서 비극을 더 강력한 비극으로 만드는 데 있을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