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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사나이 울리는 최장수, 아줌마 웃기는 순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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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최장수> vs <돌아와요 순애씨>

수목 드라마가 아줌마, 아저씨들의 장이 됐다. 기혼자들의 시각을 제대로 담아낸 드라마 두 편이 호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투명인간 최장수’와 ‘돌아와요 순애씨’다.

‘투명인간 최장수’는 이 시대에 가족에게 있어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가장의 이야기다. 드라마는 시작부터 조폭들과의 일전을 보여준다. 각목이 난무하고 피가 튀는 그 현장에 최장수는 깨지면서도 유쾌한 웃음을 짓는다. 상황은 극적이고 과장된 면이 있지만 이 장면은 우리네 가장들에게는 익숙하다. 가정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들의 사회생활은 최장수가 벌이는 사투와 다르지 않다. 그것이 아무리 전쟁 같을 지라도 그것을 가족에게 일일이 늘어놓지 못하는 처지 역시 최장수가 우리 시대의 가장들과 같은 점이다. 그래봤자 이해는커녕, 괜한 불안감만 더 만들 테니까.

가정을 위해 노력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지만 최장수가 가족에게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아내는 온갖 부업을 전전하면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는 도저히 꿈꿀 수 없는 전원주택까지 마련한다. 아이 역시 아내의 몫인데다, 그 아이 중 하나는 성장장애를 겪고 있다. 이것이 최장수의 가족을 위한 알리바이가 도저히 인정 안 되는 사유이자 오소영의 이혼요구가 정당한 이유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한 남자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이 옳았냐 틀렸냐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 남자가 그래서 이혼을 당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드라마는 오히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 당신은 당신 가족들에게 기억될만한 아버지로 남아 있느냐는 것이다. 돈 벌어오는 아버지가 아닌, 추억으로 남을 그런 일들을 공유한 아버지냐는 것이다. 최장수가 겪을 알츠하이머라는 병은, 인생을 길게만 이어질, 그래서 추억은 나중에 돈 벌은 다음에 해도 될 어떤 것으로 치부해왔던 이 시대의 가장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앞으로가 아닌 지금 당장, 현재가 중요하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최장수는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지만 그게 영 서툴다. 반면, 오소영의 옛 남자친구인 하준호는 그런 일에 능수능란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절망적 상황에 있지만 최장수는 활달하고 쾌활하며, 늘 웃는 모습이다. 어찌 보면 바보 같다. 그래서 더 슬프다. 무언가를 가족을 위해 열심히 하지만 그게 항상 서툴고 그러면서도 바보처럼 웃기만 하는 우리네 아버지들을 닮았다. 웃으면서 우는 연기가 물에 오른 유오성은 그런 아버지의 초상을 제대로 그려낸다. 이것이 사나이 울리는 최장수가 주목받는 이유다.

반면 한편에서는 아줌마 웃기는 ‘돌아와요 순애씨’가 상종가다. 40대 아줌마와 20대 처녀의 영혼이 바뀐다는 이 황당한 설정의 드라마는 그러나 그 전하려는 메시지에 있어서 아줌마들의 감성을 매료시킨다.

10여 년이 넘게 가정을 지키며 남편 뒷바라지를 해온 아줌마들은 어느 날 매력이 사라진 자신과 그런 자신을 등한시하며 다른 여자를 찾는 남편을 발견한다. 남편과 가족을 위해 온갖 일들을 해왔지만 정작 남편은 다른 여자를 찾는 이 아이러니 속에서 아줌마들은 분노한다. 아끼려고 쓰는 싸구려 화장품에, 뒷바라지하느라 정작 자신은 챙기지 못해 늘어만 가는 살과 주름에, 이제 후회해봐야 이미 늦어버린 아줌마들은 뒤늦게 자신의 삶을 한탄한다. 그런데 만일 상황이 역전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40대의 몸이 20대로 변하고, 부엌데기가 젊은 재벌이 쫓아다니는 미모의 여인이 된다면.

설정이 아무리 황당해도 그것은 모름지기 대부분 아줌마들의 환타지 속에 있던 것이기에 드라마는 설득력을 얻는다. 이 드라마가 장르적으로 코미디를 지향한 것은 그 웃음 속에 환타지를 녹이고, 그 웃음 끝에 진한 페이소스를 달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여자들의 연대(허순애와 한초은이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남자들은 똑같다는 식의 어떤 공감을 갖는 것)에서부터, 생활력에서부터 만들어진 아줌마 속성에 대한 웃지 못할 풍자, 젊은 여자에 대해 갖는 남자들의 속물근성 등등 남녀 관계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다룬다. 그 많은 시각들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40대 아줌마에서 20대 처녀로 탈바꿈한 순애씨(모습은 한초은이지만)이다. 그녀의 거침없는 비판과, 욕망의 분출은 TV 앞에 앉은 수많은 우리 시대의 아줌마들에게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드라마에서 유독 한초은 역을 소화해내는 박진희가 주목받는 이유는 지금 드라마의 초점이 변신한 순애씨(한초은)에게 있기 때문이다. 대책 없이 씩씩한 그녀는 남편이 바람 핀 여자의 속으로 들어와 남편의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알게 되었다. 평상시 같으면 웬만한 것에 눈 하나 까닥하지 않을 아줌마는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쉰다. 그런데 그 눈물과 한숨이 웃음을 만든다. 박진희는 아줌마들의 때로는 뻔뻔하고, 때로는 감상적이며, 때로는 현실적인 속성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20대 몸에 40대의 행동이 주는 웃음은 그러나 그 뒤끝이 찡하다. 우리네 아줌마들의 가족을 위해 상실한 혹은 상실되고 있는 자존감을 고스란히 보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수목 드라마에서 맞닥뜨린 ‘사나이 울리는 최장수’와 ‘아줌마 웃기는 순애씨’는 이 시대의 아저씨 아줌마들에 대한 헌사다. 한쪽에서는 울고 한쪽에서는 웃지만 그 하려는 얘기는 똑같다. ‘가족과 현실’에 대한 우리시대 부모들의 자화상인 것이다. 그래서 한참 울고, 한참 웃다가 문득 서로를 보게 되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현실의 각박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