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MBC ‘가요대제전’, 손바닥으로 네티즌 눈가리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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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가요대제전’, 손바닥으로 네티즌 눈가리기

D.H.Jung 2008. 1. 3.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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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와 표절의 차이

MBC ‘가요대제전’의 오프닝 무대에 대한 표절 논란이 거세다. 아기로 등장한 무한도전 여섯 멤버들이 밀림에 떨어진 후 동물에 쫓겨 도망 다니다가 어른으로 변한 후 공연장을 뛰어들어오는 오프닝 컨셉트 자체가, 일본의 인기그룹 스마프의 ‘018 팝-업 스마프’투어의 오프닝과 유사하다는 것. 논란이 거세지자 MBC측은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표절이 아니라 패러디라는 것이다.

사실 연예계에서 표절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하는 카드가 패러디다. ‘무한도전’이 한 네티즌의 인터넷 글을 통해 일본 후지TV의 ‘스마스마’, TBS의 ‘링컨’, 일본TV의 ‘가끼노츠까이’ 등에 등장한 장면과 일치하거나 흡사하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도 MBC 최영근 예능국장은 표절 논란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네티즌이 지적한 유사한 장면은 “여느 오락프로그램에서나 유행에 따른 패러디 정도의 수준으로 허용되는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또한 가수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뮤직비디오가 일본 게임 ‘파이널 판타지7’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일었을 때 소속사가 꺼낸 카드도 패러디였다. 하지만 정작 ‘파이널 판타지’의 저작권자 측에서는 이 뮤직비디오에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걸었고 결국은 법원이 아이비 뮤직비디오를 표절로 판정하기도 했다. 도대체 표절과 패러디는 어떤 차이가 있길래 같은 사안에 대해 한쪽은 표절이다 다른 한쪽은 패러디라 주장하는 것일까.

패러디는 본래 문학작품의 한 형식으로서 사용되던 용어였으나 최근에는 음악, 광고, 영화, 코미디, 드라마, 뮤직비디오 등등 거의 대부분의 대중문화매체에서 활용되는 문화 코드가 되었다. 표절이 사전동의 없이 무단으로 몰래 베끼는 것이라면, 패러디는 기존에 나와 있는 유명한 컨텐츠를 풍자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똑같은 내용이 들어간다 해도 전체 맥락 속에서 다른 의미를 내포할 때 그것은 패러디라 불릴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표절과는 다르다.

이렇게 정의로만 두고 보면 사실상 표절과 패러디를 구분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하지만 구분할 수 있는 좀더 쉬운 방법은 존재한다. 먼저 그 패러디한 대상에 풍자와 웃음이 있느냐는 점이다. 이 점을 두고 보면 ‘가요대제전’의 오프닝은 확실히 패러디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할 수 있다. 스마프 멤버들의 진지한 영상을 ‘가요대제전’의 무한도전 멤버들은 비틀어 가벼운 웃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패러디로서 원본의 내용을 짐작 가능한 형태로 표현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스마프의 팬들이나 그쪽 관계자라면 ‘가요대제전’의 오프닝 동영상을 보면서 누구나 스마프의 오프닝을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도 그랬을까. 국내의 공중파 같은 유력한 매체를 통해서 보여진 적이 없는 스마프의 오프닝을 일반인들이 잘 알고 있었을까. 사실상 논란이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면 ‘가요대제전’의 오프닝은 패러디가 아닌 순수 창작으로 오인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패러디가 패러디로서 기능하려면 사전에 패러디의 원전이 되는 내용을 시청자들이 알고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가요대제전’의 오프닝 패러디는 대단히 이상한 패러디가 아닐 수 없다. 원전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원전을 풍자하는 것을 노린 패러디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예능 프로그램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상황들을 보면 ‘가요대제전’의 표절논란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과거에는 주로 해외의 프로그램들을 베끼는 수준의 오락 프로그램들이 양산되다가, 최근 들어 인터넷 등을 통해 그 표절 논란이 가속되자 아예 판권을 사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고 방송사가 굳이 그 포맷이 해외 프로그램의 것임을 공지하지 않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해외 프로그램과 같다는 표절 논란이 나왔을 때야 비로소 슬그머니 그 포맷을 샀다고 공식 표명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점점 다양화되고 글로벌화 되는 사회 속에서 원전이 가진 가치는 크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나라와 나라를 넘어서 소개되지 않은 새로운 포맷을 자유롭게 사오거나 그것을 패러디해 자국민에게 재미를 제공한다는 것 역시 가치 있는 일이다. 다만 이제는 좀더 당당해지는게 좋지 않을까. 남이 알았을 때서야 비로소 슬그머니 사실을 밝히거나 혹은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이 시대의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 어렵듯 손바닥으로 네티즌들의 눈을 가리기는 더더욱 어려운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