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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성군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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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세종’과 ‘이산’, 닮았다

KBS ‘대왕 세종’과 MBC ‘이산’은 서로 닮았다. 먼저 사극에서 주로 다루었던 전쟁이 없다는 점이다. 대신 그 자리는 정치가 차지했다. 이것은 이제 전쟁과 같은 거대담론보다는 현실정치가 피부에 더 와 닿기 때문이다. 어디서 어떤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인 세상에서, 그것도 살얼음판 같은 사회 생활에 지쳐 돌아와 이제 TV 앞에 앉은 시청자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 같은 전쟁 영웅의 환타지보다 성군에 대한 희구가 더 간절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대왕 세종’과 ‘이산’이 그리고 있는 성군은 도대체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태평성대? 피 바람 부는 난세!
우리는 흔히 태평성대의 전형처럼 일컫는 세종 시대와 영ㆍ정조 시대를 생각하며 그 시대를 연 왕들 또한 평탄한 삶을 살았으리라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두 드라마를 통해 포착하는 것은 그들의 삶이 한 발 잘못 내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생존의 삶이었음을 알게 된다. 물론 드라마로서 극화된 부분이겠지만, 이산(이서진)은 노론벽파의 끝없는 암살의 위협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훗날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 역시 어린 시절 양녕대군 추종세력의 자신을 제거하려는 위협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산 정조가 그 상황에 몰리게 되는 것은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노론벽파들의 무고로 인해 죽게 되기 때문이다. 정조는 실로 비극적인 가족관계를 갖게 되는데 그것은 할아버지인 영조(이순재)가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게 했고, 그것의 배후세력이었던 고모인 화완옹주(성현아)와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김여진)가 자신까지 제거하려 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대왕 세종’에서도 유사하다. 왕자의 난으로 형제의 피를 묻히고 등극한 태종 이방원은 왕이란 대의를 위해 자기 아들이나 형제까지도 죽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게다가 양녕대군의 추종세력들은 충녕대군을 호시탐탐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하며, 거기에는 충녕대군의 외척인 민씨 형제도 포함되어 있다.

난세 속에서 만난 백성들
그러니 이산과 충녕대군은 태생에서부터 가시밭길을 걸을 운명을 타고 난 인물들. 하지만 그 난세 속에서 친인척마저 믿을 수 없는 이들의 눈이 당도한 곳은 다름 아닌 백성들이다. ‘이산’의 성송연(한지민)과 박대수(이종수)는 바로 그 백성이란 이름의 상징적인 인물들인 셈이다. 그 운명적인 혹은 어찌 보면 당연한 만남 속에서 이산은 그들과 동무의 관계를 가진다. 즉 만 백성의 어버이인 왕이 되기 이전까지, 이산은 백성들의 동무처럼 한껏 시선을 낮추고 있었다는 말이다.

‘대왕 세종’에서 백성의 상징처럼 대변되는 인물은 장원(조재완)이라는 충녕대군의 내관이다. “나는 너의 왕자야. 너는 나의 백성이고. 왕자가 백성을 지키는 거다.”라는 대사가 그걸 말해준다. 하지만 1,2회를 통해 보여준 충녕대군과 장원의 관계는 주종의 관계이면서도 형제 같은 끈끈함을 보인다. 장원의 아버지가 해수병으로 고생한다 하자 약을 손수 지어 주고, 자신 때문에 매맞아 죽게 된 장원 앞에서 피눈물을 흘린다. 충녕대군은 단 한 명의 백성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훗날의 세종대왕의 면모를 그 때부터 갖게된 셈이다.

순수한 정치를 실현시키다
그 때 만났던 백성들 앞에서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이산과 충녕대군이 훗날 성군이 된 것은 바로 그 초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상에서 그려지는 정치 대결은 극명하게 두 축으로 나뉘어진다. 한 축은 이상적인 정치, 즉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펼치는 정치의 세계이고, 반대 축은 권력과 세도를 잡기 위한 현실 정치의 세계이다. 이상적인 정치는 궁극적으로 가야할 정치의 길이지만, 현실 정치의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되고 만다. 어린 시절, 순수한 뜻만 갖고 펼치던 이산의 금난전권 철폐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는 이유가 그 때문이고, 충녕대군의 의기에만 기댄 태종 앞에서의 충언이 거꾸로 억울한 자들을 물고 나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니 이 순수하기만 한 두 학구파가 자신의 순수정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철두철미한 준비를 통한 다양한 인물등용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이 난세 속에서 가장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게 된 것은 권력을 위해 자신을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은 조정의 썩은 물보다, 저 바깥 세상 가장 낮은 백성들이 사는 곳에서조차 반짝반짝 빛나는 옥석을 찾아내는 왕들의 초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발탁된 인물들은 가장 많은 업적들을 남겼고 그것은 훗날 이 시대를 태평성대로 부르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난세 속에서도 백성을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시킨다는 애초의 초심을 잃지 않고, 그 순수한 마음을 철저한 준비와 끈기로 실현시킨 것, 성군의 탄생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비록 본래 역사와 다른 점이 있지만 그 드라마 안에서라도 이러한 성군을 찾는 마음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