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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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사극도 예외는 아니다

D.H.Jung 2008. 3. 12.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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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빈성씨가 다모가 된 까닭

주말극을 장악한 이른바 줌마렐라(아줌마 신데렐라)가 있다면, 사극에도 신데렐라는 예외가 아니다. MBC 월화 사극, ‘이산’에서 훗날 의빈성씨가 될 성송연(한지민)과 정조(이서진)의 사랑이 그렇다. 그것도 그 신분의 벽이 그저 양반과 천민의 수준이 아니다. 천민과 왕과의 사랑을 다루고 있으니 그야말로 극과 극의 만남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설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가 신데렐라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보이는 이야기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눈에 가장 잘 띄는 것이 늘 있게 마련인 반대하는 시어머니다. 이산을 위해서라면 한 목숨 기꺼이 바칠 듯하던 그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송연이 다모라는 그 신분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의 의빈성씨는 적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사육신 중 하나인 성삼문을 배출한 조선시대 명문가의 하나인 창녕 성씨 중 찬성 벼슬에 올랐던 성윤우의 딸이다. 적어도 다모 같은 천민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물론 ‘이산’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약간의 사실의 변용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왜 굳이 도화서 다모 같은 천민으로 의빈성씨를 설정했는지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법하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도화서 다모라는 직업이 가지는 특성 때문이다.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그림은 어진(임금의 초상화)과 의궤(행차도 같은 의식을 기록한 것)였다. 그러니 사극으로서 도화서 화원이라는 직업은 여러 모로 매력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화원은 그 그림 자체도 흥미를 끌게 하지만, 무엇보다 모든 행사에 나간다는 점, 그것도 그림으로(요즘으로 치면 사진 같은 것이다) 남긴다는 점이 그렇다. 사극의 극적인 전개를 위해서 이 그림이라는 기록은 추리극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하고 때론 사건 해결을 위한 확실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 화원이 아닌 다모는 신분을 한 단계 낮추면서 또한 당대로서는 성차별을 겪기 마련인 여성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볼 때 가장 약자에 해당하는 존재가 된다. 물론 이런 설정은 성장 드라마를 만들어내기 위한 발판이다. 드라마 상에서 성송연은 남자 화원들보다 뛰어난 입지전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다분히 현대여성들의 환타지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의빈성씨를 굳이 다모로 설정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신데렐라의 사극 멜로 버전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현대극에서 신데렐라야 빈부 차이에서 거의 비롯되지만, 사극은 그 신분 차이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극이 갖는 환타지는 더 커진다. 이렇게 보면 다모라는 직업의 선택에는 두 가지 고려가 들어있다. 그것은 저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말하는 전문직에 대한 요구가 첫번째요, 직업의 천한 신분으로 인해 생기는 보다 강력한 신데렐라 설정이 두번째다. 이렇게 보면 역사왜곡의 문제는 남겠지만, 드라마적으로 봤을 때 의빈성씨를 다모로 설정한 것은 다분히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그 효과가 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는 문제는 지금부터다. 성송연은 이 다모라는 신분으로 어차피 의빈성씨까지 올라가야 하는 드라마 속의 과제를 안고 있는 캐릭터다. 그렇다면 이 과정이 더 중요해진다. 다모에서 화원의 지위까지 성장한(물론 신분상으론 여전히 다모지만) 성송연은 이제 어떻게 의빈성씨가 될 것인가. 앞부분의 성장은 성송연 혼자 가진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 것이라 현대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충분한 공감이 된다. 허나 의빈성씨가 되는 과정 역시 그러할까. 그것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과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전형적인 신데렐라 멜로를 따라갈 것인가. 그것이 그저 신데렐라의 사극 버전이 될지, 아니면 능동적인 현대 여성의 사극적인 변용이 될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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