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나 배우 뒤에 숨겨진 진짜 문제들
드라마를 비판하는 드라마, ‘온에어’의 한 장면. 작가 서영은(송윤아)과 배우 오승아(김하늘)가 언쟁을 벌인다. 작가 서영은이 “우리나라 배우들은 연기 못해도 CF 많이 찍으면 스타인 줄 알지만, 미국 배우들은 쓰지도 않는 제품 홍보하는 거 수치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자 여기에 맞받아 오승아가 이렇게 말한다. “그러는 작가님은 왜 작품마다 PPL로 도배를 하죠?”
‘온에어’는 확실히 이런 우리네 드라마들이 가진 문제점들을 끄집어내는 대사들이 많다. 서영은 작가와 이경민(박용하)PD가 벌인 시청률과 진정성 논쟁도 그 중 하나다.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작품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서작가 작품에는 명대사만 많을 뿐 진정성이 없다.”고 이경민이 말하자 “드라마의 반이 구성이라면 나머지 반은 대사다. 95%의 상투성에 5%의 신선함만 있으면 된다.”고 서영은은 반박한다. 그대로 토론 프로그램에 올려놓아도 될만한 이야기들이다.
분명히 과거에는 없던 소재이고, 대사들이다. 무엇보다 액자소설처럼 드라마를 비판하는 드라마라는 점이 흥미를 끈다. ‘온에어’의 기획의도를 인터넷을 통해 보면 이 드라마는 천편일률적인 기획과 내용으로 이제는 ‘공산품이 되어버린’ 우리네 드라마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어 그런 문제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비판적인 발전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 문제의 원인제공자로서 작가, PD, 배우, 그리고 스텝들(매니저를 포함한 연예계 관계자들까지)이다.
이경민 PD는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가 하고자하는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이경민 PD의 캐릭터는 대사 속에서 등장하듯이, 대충 시청률을 의식해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드라마가 아니라, 진정성이 살아있고 통일성이 있으며 메시지가 일관되어 결과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를 추구하는 인물이다. 여기에 장기준(이범수)이란 매니저는 결과적으로 이경민 PD를 드라마 밖에서 지원하는 인물이다. 그는 스타가 아니라 배우를 키워내고 싶은 매니저다.
우리네 드라마의 문제가 도출되는 것은 작가 서영은과 배우 오승아를 통해서다. 그들은 이른바 속된 말로 뜰대로 뜬 인물들이다. 아쉬울 것 없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우리 드라마가 한류바람을 타고 활개를 칠 때의 그 의기양양함을 닮았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지금 우리 드라마들의 문제점도 똑같이 닮았다. 이 드라마에서 제시되는 이들의 문제는 ‘초심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서영은도 그렇고 오승아도 그렇다. 그러니 이 드라마는 이들이 초심을 찾아가는, 그래서 본래 열정이 있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은 우리네 드라마의 문제가 작가나 PD, 혹은 배우 때문에 생겨난 것일까 하는 점이다. 과연 그들이 초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 드라마의 문제가 생겨난 것일까. 오히려 그것은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의 잘못된 시스템이 초래한 문제가 아닐까. 쪽대본이 난무하고, PPL로 도배되고, 시청률만 되면 다 된다는 식의 드라마들은 사실, 사전제작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지나친 규제중심의 광고제한으로 오히려 편법광고를 만들고, 시대에 잘 맞지 않는 시청률조사 시스템에 경도된 시청률 지상주의의 결과가 아닐까. 오히려 작가나 PD 혹은 배우는 그 희생자가 아닐까.
여기서 처음 언급했던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 무분별한 PPL을 비판하는 대사가 나오는 그 장소(아마도 떡으로 삼겹살을 싸먹는 음식점)조차 여러 번 대사나 장면을 통해 홍보된 곳이란 점이다. 이 아이러니는 우연한 것일까 아니면 의도된 것일까. 우연한 것이라면 드라마를 비판하는 이 드라마조차 그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 된다. 반대로 그것은 어쩌면 작가나 PD에 의해 의도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엔 이런 시스템에 대한 나름대로의 저항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라고 자기 작품이 상품으로 도배되는 걸 바라겠는가.
혹 그럴 리는 없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민감한 기자들을 낚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요즘 드라마들은 논란 또한 관심으로 전이시키는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이 드라마가 제작되고 방송되고 홍보되는 시스템은 참 견고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글조차 그 특정 장소를 더 홍보해주는 꼴이 되니까.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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