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몰래카메라’는 사라지지 않는다, 바뀔 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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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카메라’는 사라지지 않는다, 바뀔 뿐

D.H.Jung 2008. 4. 15.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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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의 카메라는 어떻게 변해왔나

초창기 ‘몰래카메라’가 열렬한 호응을 얻었던 것은 당대 이른바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이미지라는 옷을 잔뜩 끼어 입은 스타들의 옷을 벗겨낸다는 쾌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좀체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다가 가끔씩 얼굴을 보이면서 강화해온 ‘신비한 이미지’는 연예계에 넘쳐났고, 따라서 이것은 ‘몰래카메라’의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몰래카메라가 잡아낼 수 있는 신비화된 연예인들은 부지기수였고, 그 연예인들은 무너진 자신의 진솔한 얼굴을 시청자에게 여지없이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이 시절, 우리에게 몰래카메라란 흥신소를 떠올리게 하는 도착적인 기구를 연상케 했다. 그것은 어두컴컴한 곳에 숨겨져 누군가를 훔쳐보기 위해 사용되는 음성적인 도구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후 다시 ‘몰래카메라’가 부활했을 때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달라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상황은 정반대였다. 연예인들은 신비로운 존재라기보다는 바로 옆집 아저씨 같은 편안하고 친숙한 존재로서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즉 진솔한 얼굴조차 상업화된 것이다. 몰래카메라의 자리를 셀프카메라가 차지할 정도로 카메라에 대한 사생활 노출은 일상화되었다.

스타들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맨 얼굴을 포착해왔던 ‘몰래카메라’는 오히려 상업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진솔한 얼굴(역시 기획된 이미지이다)을 잡아내는 카메라로 변질된다. 이 시기 유난히 조작설이 많았던 것은 실제로 그랬다기보다는, 이렇게 변화된 상황 속에서 몰래카메라(속 스타들)를 대하는 시청자들의 눈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숨어서 훔쳐보는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몰래카메라의 폐지는 당연한 수순이 되었다.

그렇다고 몰래카메라가 사라졌을까. ‘무한도전’과 ‘1박2일’의 카메라는 어떻게 출연진들의 리얼한 얼굴들을 포착하고 있을까.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와서 몰래카메라는 좀더 공공연한 방식으로 사생활을 찍기 시작한다. 몰래카메라는 이제 더 이상 숨겨져서 누군가를 찍는 구태의연한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대신 수없이 많은 카메라를 동원함으로써 대상으로 하여금 도대체 어떤 카메라가 자신을 찍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엄청나게 많은 카메라들을 동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대상이 카메라를 의식하는 순간, 리얼리티는 깨지고 가식적인 얼굴이 고개를 내밀게 된다. 여기서 카메라가 잡아내는 리얼리티는 순간적이고 무의식적인 것이다. 당황하는 스타들의 독특한 반응을 순간적으로 포착해낸 영상은 적당한 자막(해설)과 함께 반복적으로 편집되어 시청자들에게 과장되게 보여진다.

이 수없이 많은 카메라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사생활 노출이 극단에 와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건물에서나 지하철에서나 회사에서나 길거리에서나 우리는 어디서건 카메라 속에 포착된다. 초창기 몰래카메라는 그것이 음성적으로 숨겨져 있었기에 오히려 도드라져 보였지만, 현재의 몰래카메라들은 양성적으로 보편화되면서 오히려 숨겨진다. 그리고 이 생활 속으로 파고든 카메라의 침입은 이제 누구나 몰래카메라를 찍을 수 있는 휴대폰 시대를 맞으면서 일상이 되어버린다.

이런 시대를 맞아 몰래카메라를 시작했던 ‘일요일 일요일밤에’에서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코너를 방영하게 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것은 분명 가상으로 설정된 부부의 삶을 엿보는 몰래카메라의 형식이 분명하지만, 카메라는 과거처럼 강조되지 않는다. 이제는 모든 카메라들이 몰래카메라와 같은 일상을 찍어대기 시작했기 때문에 굳이 몰래카메라를 강조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게다가 이 엿보기 상황은 과거와는 다르다. 과거는 진짜 상황이 주어지고 거기서 나오는 리얼한 반응을 보았다면, 가상버라이어티를 주창하는 이 코너는 가짜 상황 속에서의 리얼한 반응을 보여준다. 정형돈과 사오리는 가상의 부부로 설정되지만 그 안에서 부부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게임(가상)이지만 그 안에서는 실제로 접촉(현실)이 일어나는 이 코너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이 시대의 영상 감수성을 잘 보여준다. 이것은 이제 시청자들이 가상이든 현실이든 엿보는 카메라 안에 포착되는 영상의 게임에 익숙해졌다는 말이다.

예능 프로그램이 가진 오락성에 전도된 카메라를 예로 들었지만, 어찌 보면 누군가를 엿보는 이러한 행위는 카메라가 가진 본성인지도 모른다. 시청자들은 TV 앞에 가만히 앉아서 카메라가 가져올 저 편 세상의 현실을 기다린다. TV의 창이 투명해져서 자신이 TV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몰입될 수 있도록 시청자들은 TV가 리얼해지기를 기대한다. 리얼리티가 강조되는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기곤 있지만, 조금만 신경 써서 보면 그 리얼리티란 사실은 대부분 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리얼’이라는 단어를 기꺼이 붙여주는 이유는 무얼까. 혹 변한 것은 카메라와 TV가 아니라 좀더 리얼한 상황에 몰입하고픈 시청자들이 스스로 인식을 바꾼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