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화양연화' 이보영이 속물로 변한 유지태를 변화시킨다는 건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화양연화' 이보영이 속물로 변한 유지태를 변화시킨다는 건

D.H.Jung 2020. 5. 6. 14:41
728x90

당신의 ‘화양연화’는 과거가 아닌 현재다

 

어쩌다 그는 이토록 속물로 변하게 된 걸까. 대학시절 그 누구보다 뜨거웠고 열정에 넘쳤으며 신념에 가득했던 청춘이 어느덧 지긋한 중년에 이르러 거울 속에 선 인물이 너무나 속물이 되어 있는 걸 발견하는 건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의 문제의식은 바로 거기서부터 비롯된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의 전면에 나섰고, ‘지는 편’쪽에 서서 싸웠던 한재현(박진영, 유지태)은 어쩌다 중년에 이르러 이기기 위해 뭐든 하는 냉혈한이자 속물인 형성그룹 사위가 되었다. 형성그룹 회장 장산(문성근)의 딸 장서경(박시연)과 결혼해 승승장구한 그는 부당해고에 맞서 회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노동자들을 강제해산시키라는 장인의 명을 받는다.

 

‘가위손’이라 불릴 정도로 지금껏 그토록 많은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한 그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장산에게는 이용가치가 있는 인물로 판단된다. 장산은 한재현을 딱 그 정도의 사냥개로 취급한다. 자신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에 보낼 정도로. 그러면서 주는 먹이나 먹으며 살아가라고 말할 정도로.

 

이 피도 눈물도 없는 한재현을 뒤흔든 건 다름 아닌 대학시절 그를 졸졸 따라다녔던 지수(전소니, 이보영)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를 둔 학부모로 서로 마주하게 된 두 사람은 너무나 달라진 서로의 모습을 발견한다. 대학시절 그다지 학생운동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지는 편을 한다는 한재현에게 ‘선배 편’이 되겠다며 부조리한 세상과 맞서게 된 지수였다.

 

부당해고에 맞서 시위를 벌이는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는 지수를 발견한 한재현은 그래서 혼란스럽다. 과거를 온전히 지우고 현재의 속물적인 자신으로 살아가던 그의 앞에 당혹스럽게도 지수는 청춘시절 그 뜨겁게 열정과 신념에 차있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끌어왔기 때문이다. 타인들 앞에서는 결코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던 그는 바로 청춘의 자신을 마주하면서 흔들린다.

 

<화양연화>는 이처럼 한재현과 윤지수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멜로를 그리고 있지만, 그것이 그저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에만 그치고 있는 건 아니다. 그 멜로에는 젊은 날의 열정을 잃고 살아가게 된 이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위로가 함께 들어가 있다. 한재현과 윤지수의 재회와 그로부터 피어나게 되는 사랑의 감정은, 한재현에게는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 현재를 바꾸는 기폭제가 된다.

 

그래서 <화양연화>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었지만 어느 새 기득권이 되어 있는 중년들에게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드라마다. ‘삶이 꽃이 되는 순간’이라는 부제를 달은 <화양연화>는 말한다. 당신의 화양연화는 과거에만 존재하는 어떤 순간이 아니고 지금 바로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는 현재라고.(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