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19금 청춘물 '인간수업', 이런 파격적인 드라마가 가능한 이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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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청춘물 '인간수업', 이런 파격적인 드라마가 가능한 이유

D.H.Jung 2020. 5. 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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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수업’, 넷플릭스라서 허용되는 용감한 드라마라는 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은 한 마디로 파격적인 드라마다.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지만 19금이라는 사실 자체가 그렇다. 그것은 고등학생들이 등장하지만 <인간수업>이 그 흔한 청춘물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드라마는 청소년 성매매 어플을 통해 돈을 버는 오지수(김동희)와 실제 성매매를 하는 여고생 서민희(정다빈) 그리고 오지수의 이 비밀을 알게 되면서 그 범죄의 세계 속으로 깊숙이 함께 들어가는 배규리(박주현) 같은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다.

 

고등학생들이지만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서 봐왔던 그런 모습은 발견하기 어렵다. 이들이 처한 현실은 한마디로 살풍경하다. 시종일관 욕과 담배를 입에 달고 살고, 학교에서는 평범해 보이지만 방과 후가 되면 저마다 돈을 벌기 위한 살벌한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어눌하면서도 돈다발에 대한 욕망에 휘둘리며 폭주하기도 하는 오지수라는 인물은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토록 순한 양처럼 보이는 아이가 그토록 험한 세상과 매개된 건 스마트폰 어플 같은 한 단계의 차폐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게임이라도 하듯 어플을 통해 저쪽 성매매와 범죄의 세상에 개입하지만, 본인이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결국 이 평범한 고등학생의 일상과 저 범죄의 세계 사이를 매개하며 차단해줬던 스마트폰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오지수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 속에 빠져버린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고등학생들은 이 같은 범죄의 세계 속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 걸까.

 

그것은 ‘어른의 부재’ 때문이다. 오지수는 부모가 부재하다는 걸 숨긴 채 학교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 성매매 어플을 운용한다. 이런 사정은 꽤 잘 나가는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부모를 두고 있는 배규리도 마찬가지다.

 

배규리의 부모는 자신의 회사에서 연습생들을 마치 상품 다루듯 하는 것처럼, 자식도 그렇게 다룬다. 그런 삶에서 배규리는 숨 쉬는 게 토가 나올 것 같다고 말한다.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숨이 쉬어지는 그런 삶이 그에게는 무의미하고 심지어 구토가 난다는 것. 이것은 부유한 가정에서 살아가는 배규리가 그와는 너무나 다른 거친 세계 속에 발을 담고 있는 오지수와 ‘동업자(?)’가 되는 이유다.

 

이 드라마에서 어른들은 아이들까지 착취해 가는 그런 인간들이다. 그래서 오지수와 서민희, 배규리 같은 아이들의 치열해지는 삶은 마치 그 어른들과의 사투를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이 드라마에 유일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왕철(최민수)이라는 인물이다. 만만찮은 과거를 숨기고 있는 이 인물은 폭력이 난무하는 그 범죄의 세계 속에서 그나마 이 아이들을 드러내지 않고 신경 쓰는 어른이다.

 

아마도 <인간수업>은 최근 벌어진 충격적인 n번방 사건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n번방 사건이 온 세상에 드러났을 때 아이들보다 더 충격을 느낀 건 어른들이었다. 공공연하지는 않지만 어느새 아이들이 그런 세상에 들어가 있을 때,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결코 그런 세상에 있지 않을 거라 애써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 부인은 결국 부재를 낳고 그 부재는 n번방 같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이어진다. <인간수업>은 그래서 마치 우리가 부인했지만 이미 벌어지고 있는 그런 세계를 불편해도 있는 그대로 꺼내놓은 것처럼 보인다.

 

국내 드라마에서는 결코 보지 못했던(어쩌면 볼 수 없었던) 이 파격적인 이야기가 거침없이 전개되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지금의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에서 이 드라마가 제작되었다면 아마도 그 결과는 지금 같은 파격과는 거리가 먼 두루뭉술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인간수업>은 그런 면에서 우리네 드라마도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용감하게 꺼내놓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다. 첫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진한새 작가의 거침없는 필력과 김진민 감독의 섬세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울 정도로 몰입감을 만들어준 젊은 배우들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태원 클라쓰>에서의 연기를 잊게 만드는 김동희, <반의반>은 그가 가진 연기의 반의반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낸 박주현, 어린 나이부터 연기를 해왔고 드디어 열매를 맺은 듯 보이는 정다빈 그리고 이 모두를 끌어안는 블랙홀 같은 강력한 마력의 연기를 보여준 명불허전 최민수까지. <인간수업>은 이들에게는 그 연기를 확장해준 일종의 ‘연기수업’이기도 했다.(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