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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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킹', 멜로 대신 세계관 선택한 김은숙 작가의 도전

D.H.Jung 2020. 5. 1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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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킹', 멜로는 설레지 않지만 세계관은 궁금한 아이러니

 

SBS 금토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이하 더 킹)>은 김은숙 작가의 야심이 엿보이는 기획이다. 평행세계라는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설정을 가져왔고,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을 오가는 그 세계관 역시 우리네 드라마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두 개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도플갱어가 존재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결국 각각 독립되어 있던 이 두 개의 세계가 만파식적을 통해 서로 넘나들 수 있는 차원의 문이 열리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두 개의 세계를 각각 지켜내려는 이곤(이민호)과 정태을(김고은)이 있는 반면, 두 개의 세계를 교란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려는 이림(이정진)이 있다. 이림은 대한제국의 황제 자리를 꿰차려 하다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정태을의 신분증을 가진)에 의해 저지되고 반쪽으로 갈라진 만파식적을 통해 대한민국을 넘나들게 된다.

 

그가 하려는 일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을 유혹해 대한제국에서 권력을 가진 채 살아가는 그들의 도플갱어를 제거한 후 그 자리를 대체시키는 것. 또 정반대로 대한제국의 인물을 데려와 대한민국에 채워 넣음으로써 이 곳에서의 부와 권력을 동시에 차지하려 한다.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세계의 인물들을 유혹해 자기 마음대로 배치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넓혀나가려는 일종의 도플갱어 게임이다.

 

이곤은 차원의 문을 넘어 대한민국으로 들어와 정태을과 만나면서 점점 이 곳에 대한제국으로부터 넘어 들어온 자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정태을을 좋아하는 대한민국 형사인 강신재(김경남) 역시 어떤 이유에선지 대한제국에서 이 편으로 넘어와 성장한 인물이다. 그의 어머니가 도박에 빠져 자신을 탕진하며 사는 건 아마도 강신재와 바꿔치기 된 자신의 친자식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을 게다.

 

이림은 대한민국으로 넘어와 제일 먼저 자신과 이곤의 도플갱어를 살해한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곤마저 살해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일 게다. 정태을은 대한제국에 그의 도플갱어인 루나가 살아있다. 정태을이 형사인 반면, 루나가 범죄자라는 상황은 향후 이 두 존재가 만나 어떤 대결구도를 이룰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처럼 <더 킹>은 사실 두 세계의 도플갱어 게임이라는 그 세계관 자체가 꽤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점점 본격화되어가는 이 게임에 주목하고 몰입한다면 향후 충분히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좋은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더 킹>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고, 나아가 시청률도 조금씩 빠지고 있을까.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건 우리가 이른바 김은숙표 드라마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멜로'가 이번 작품에서는 생각만큼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그도 그럴 것이 <더 킹>은 막시무스라는 백마를 타고 이 세계로 넘어와 정태을을 만나는 이곤 황제의 모습을 초반에 담아냈는데, 이런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또 '백마 탄 왕자와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기시감을 만들어 버렸다.

 

여기에 김고은과 이민호를 캐스팅한 부분 역시 그다지 좋은 선택이 될 수 없었다. 김고은은 여러모로 김은숙 작가의 성공작인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의 모습을 자꾸 비교하게 만들었고, 따라서 그 상대로 등장하는 이민호는 <도깨비>에서 김고은의 상대였던 공유와 비교하게 됐다. 이민호가 연기하는 이곤의 황제라는 위치에서 나오는 특유의 어투들은, 아쉽게도 공유가 했던 그 어투처럼 몰입감을 주지 못했다.

 

김은숙 작가 특유의 멜로 대사들도 <더 킹>에서는 생각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니 대사 자체에서도 또 이를 소화하는 연기에서도 몰입이 되지 않아 시청자들에게 설렘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결국 <도깨비>와 비교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쉬운 일이지만 이번 <더 킹>에서 김은숙표 멜로는 판타지의 황당할 수 있는 부분조차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더 킹>은 그 세계관의 흥미로움으로 인해 이런 멜로의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향후 전개가 궁금해지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 실제로 멜로만 빼고 보면 <더 킹>의 도플갱어 게임은 마치 잘 짜여진 본격 스릴러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아이러니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김은숙 작가하면 먼저 떠오르던 멜로는 설레지 않지만, 대신 그 세계관의 대결이 궁금해진다는 건.(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