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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외출' 워킹맘 한혜진의 일갈, 묵직한 울림 남긴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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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어째서 세상 엄마들만 죄인처럼 살아야할까

 

“왜요? 우리 엄마가 왜? 왜 죽어야 하는데요? 왜 다들 우리 엄마만 잘못이라고 하는 건데? 왜 우리 엄마가 내 딸을 봐줬어야 했는데요? 왜 그랬어야 했는데?” tvN 단막극 <외출>에서 한정은(한혜진)은 자신의 엄마 최순옥(김미경)을 향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시어머니에게 누르고 눌렀던 감정을 폭발시킨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은 아이. 그 아이를 돌봐줬던 친정 엄마 최순옥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 아이의 엄마인 한정은은 아이의 죽음과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아픔 속에서 힘겨워한다. 감기약을 먹고 잠시 잠든 사이 사고가 벌어진 줄 알았으나 찾아온 아빠를 만나러 잠시 외출한 사이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하기도 하지만, 한정은은 그것 역시 엄마가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거라는 걸 알게 된다.

 

게다가 엄마는 치매 증세를 갖고 있었다. 사고가 난 날, 외출했던 엄마는 집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를 위해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면서도 집을 기억하지 못해 행인들을 붙들고 도와 달라 애걸하는 최순옥은 마치 우리네 엄마들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그 힘겨운 육아를 딸을 위해 떠맡으면서 잠시 외출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삶을 감당하는 엄마들.

 

<외출>은 아이의 죽음으로 촉발된 사건을 다루지만, 이런 비극이 최순옥에서부터 한정은 그리고 그의 딸 유나로 이어지는 여성들이 겪어온 비극이라는 걸 그려낸다. 육아는커녕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으로부터 도망치듯 살아온 엄마 최순옥이 살아온 세상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육아 또한 떠안으며 살아가야 하는 한정은이 살아가는 세상과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워킹맘들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공적 육아 시스템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 회사는 대놓고 워킹맘들을 차별한다. “이래서 여자들은 안 된다니까. 맨날 집안 핑계나 대고 에이.” 계약직 사원 신소희(윤소희)를 정규직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평가를 내리는 조부장(손경원)은 대놓고 여성이 정규직이 되는 걸 꺼려한다. 그것이 회사로서는 리스크라는 것이다.

 

그러려니 듣고 지나치던 한정은은 그러나 조부장의 그 말에 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팀장님. 애기 키우느라 퇴사한 사람을 재고용하는 게 하이리스크라고 하셨죠? 근데요. 애기 키우며 직장 다니는 여직원들 책임감은 더 강하면 강했지 덜하진 않아요. 애초에 그런 직원들을 퇴사하게 만드는 게 진짜 큰 손해고 리스크인 걸 모르시나 봐요. 직장생활은 다 의지로 하는 거라구요? 여기 의지 없는 사람 없어요. 근데 그 의지가요, 집에서 애기 봐주는 친정엄마 생각하면 자꾸 약해져요.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왜 엄마들은 항상 죄인이 되는 걸까요? 몰랐다고 하지 마세요. 그것도 죄예요. 그리고 모르지 않으셨잖아요.”

 

도대체 유나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일까. 억지로 서울 집까지 오게 해 대신 아이를 맡아줬던 엄마일까,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한 워킹맘 한정은일까? 이런 사고가 벌어지면 항상 엄마들이 그 죄인이 되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사건이 벌어지게 된 진짜 원인들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여전히 육아는 엄마들만의 몫이라 여기는 인식, 하이리스크라고 욕하기만 하면서 워킹맘들의 복리를 위한 육아 시스템은 마련하지 않는 회사,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한 현실 등등. 진짜 원인들은 그런 것들이다. 여기 죄 없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책하는 엄마들이 아니고.

 

2부작이었지만 <외출>은 단편이 가진 압축적인 이야기로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아마도 워킹맘들이라면 이 드라마가 던지는 공감의 폭이 훨씬 더 컸을 게다. 한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진 육아문제와 성차별적 사회에 대한 진중한 화두를 던졌다. 친정엄마에서 그 딸로, 또 엄마가 된 그 딸이 또다시 그의 딸로 이어지는 그 삶이 더 이상 비극의 유산이 아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면 우리 사회 전체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드라마는 묻고 있다.(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