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정진영·원미경, 늦지 않았길, 그래서 다시 사랑해도 되길
'진숙씨 너무 늦지 않았죠? 당신이 웃네요. 내가 당신을 다시 사랑해도 될까요?' 횡단보도를 건너오며 상식(정진영)은 진숙(원미경)에게 속으로 그렇게 묻다가 갑작스런 어지럼증으로 쓰러진다. 그 순간 진숙은 "상식씨!"하고 다급하게 외친다. 아마도 그 이름은 20대 때 결혼해 알콩달콩했던 그 때 자주 불렸지만 나이 들어 거의 잊고 있던 이름이 아니었을까.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에서 김상식은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래서 같이 있는 게 숨도 쉬지 못하겠다던 진숙의 졸혼 선언은 상식을 심지어 폭력적인 가장으로까지 오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야간산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해 스물 두 살의 기억으로 되돌아간 상식은 의외로 '사랑꾼'의 모습을 보여줬다.
스물 두 살의 사랑꾼과 이제 반백을 훌쩍 넘긴 폭력적인 가장. <가족입니다>가 그리는 상식의 모습은 이게 한 사람의 모습인가 싶을 정도로 멀어져 있는 것에서 시작해 차츰 어째서 그 사랑꾼이 이런 가장의 모습으로 비춰지게 됐는가를 찬찬히 보여준다. 알고 보면 상식은 폭력적인 가장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순간의 감정이 터졌던 것이었다.
그것은 아내 진숙이 대학생 때 가진 첫 딸 은주를 위해 그를 짝사랑하던 상식을 남편으로 받아들이면서 비롯된 일이었다. 상식은 진숙을 사랑하는 만큼 은주 또한 친 딸처럼 사랑했지만,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해 트럭운전을 하며 살아가는 자신이 진숙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생각 때문에 오해와 의심을 만들었다. 진숙이 은주의 아버지를 만난다는 오해를 했던 것. 그래서 사랑꾼 상식은 진숙에게 냉랭해졌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상식의 그런 못난 행동들은 진숙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깊어서였다. 진숙은 그렇게 갑자기 변해버린 상식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 역시 버티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첫 딸 은주가 친 딸이 아니라는 걸 약점처럼 숨겨가며 숨 쉬는 것조차 조심해가며 그렇게. 하지만 그것 역시 진숙의 진심은 아니었다. 병원에 앉아 진숙은 그 진심을 상식에게 말했다.
"당신이 태산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어. 난 책임지라고 할 까봐 도망친 그 사람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 당신 평생 허깨비랑 싸운 거야. 젊은 시절 당신이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우리 둘이 헤쳐 나가면 된다고,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고 선언할 때 멋져 보였어.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고 한 약속 지금껏 잘 지켜준 거 고마워. 딱 그것만 지켜서 이렇게 사단이 났지만. 고마워. 뭐하느라 세월이 이렇게 가버렸나."
진숙의 그 말에 상식도 오랫동안 가슴에 담았던 이야기를 건넨다. "나도 용기를 내서 솔직하게 고백 하나 할게요. 나는 허깨비랑 싸운 게 아니라 평생을 못난 나랑 싸운 거 같아요. 내가 다시는 날지 못하게 선녀 옷을 몰래 숨겨버린 비겁한 놈 같아서. 누가 나보고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 할까봐. 예전의 그 멋진 청년을 당신이 아니라 내가 먼저 잊고 산 것 같아."
<가족입니다>는 가족 간의 갈등들이 저 막장드라마들이 보여주듯 누군가 진짜 악해서 벌어지고 누군가를 상처 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나빠서가 아니라 몰라서다. 혹은 외면해서. 상식과 진숙의 화해는 그래서 가슴을 먹먹하게 하면서 동시에 다시금 가족을 생각하게 만든다. 가족 간에 어떤 갈등들이 있다면 그건 혹여나 잘 알지 못해서가 아닐까. 누군가 화를 내거나 변화된 모습을 보였을 때 왜 그런 것인가를 잘 들여다보려 했을까. 가까이 있는 가족일수록 잘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더 많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알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이 드라마는 말해주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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