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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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형사', 손현주는 어째서 끝까지 사람을 포기 안할까

D.H.Jung 2020. 8. 1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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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형사'가 손현주를 통해 그려내는 따뜻한 인간관

 

"잠깐 미웠던 거야. 네가 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도 아니잖아.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지." 자신이 밉지 않냐고 묻는 윤상미(신동미)에게 강도창(손현주)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 강도창을 사수로 뒀던 윤상미지만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와 성공하고픈 욕망에 이대철 재심 법정에서 거짓말을 해 강도창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그였다. 하지만 강도창은 윤상미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다. 그건 조직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지를.

 

JTBC 월화드라마 <모범형사>에서 강도창은 끝까지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다. 물론 사람이기를 포기한 실제 살인범 오종태(오정세)나 역시 살인범이거나 공모자인 정한일보 유정석(지승현) 부장 그리고 그들의 수족이 되어 동료를 배신한 남국현(양현민) 형사 같은 이들은 예외지만 인천 서부경찰서 문상범(손종학) 서장처럼 한 때 저 편에 서 있었지만 그 잘못을 뉘우친 인물은 포기하지 않고 챙긴다. 윤상미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그런데 이것은 강도창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의 파트너인 오지혁(장승조)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정한일보 진서경(이엘리야) 기자는 이대철 재심을 뒤집을 증거를 갖고 있었지만 자신을 챙겨줬던 유정석에 대한 여전한 신뢰 때문에 그가 시키는 대로 이를 증거로 활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오지혁도 진서경을 포기하거나 그의 행위를 대놓고 나무라지 않는다. 그 역시 조직의 힘에 의해 무력할 수 있는 게 조직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다. 오지혁은 끝까지 진서경을 포기하지 않고 거기서 느껴지는 진심은 진서경을 조금씩 흔들어 놓는다.

 

이런 인간관은 강도창과 오지혁이라는 '모범'을 세워두고 그들의 그런 진심이 주변인물들에게 어떤 변화를 주는가를 보여준다. 그들의 모범은 현실에 찌들어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며 살아가던 인천 서부경찰서 강력2팀이 이대철 사건의 진실을 계속 추적하게 만들고, 이를 방해하던 윤상미 같은 인물조차 흔들리게 만든다. 윤상미는 강도창에게 왜 그렇게 사냐고 묻는다. 좀 못된 말도 못된 짓도 하고 그래야 자신처럼 '나쁜 년'도 위안을 받을 거라고 말한다. 그건 강도창의 '모범'이 스스로에게 가책을 느끼게 만든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윤상미에게 강도창은 자신의 선택을 생색내지 않는다. "야 나도 너처럼 잘나고 똑똑했으면 너처럼 살았을 거야. 멍청해서 이렇게 사는 거야." 그의 말은 반어적으로 들린다. 모범으로 살아가는 일은 현실적으로는 '멍청한 짓'이 된다. 그게 불량한 시스템이 만들어내고 있는 짓들이다.

 

<모범형사>의 대결구도는 그래서 강도창, 오지혁과 오종태, 유정석이 벌이는 치고받는 싸움이 아니라, 모범으로 서 있는 강도창, 오지혁의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진심과, 불량한 시스템에 기대거나 편승해 권력을 누리는 오종태, 유정석의 이용해먹으려고만 하는 거짓의 대결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대결의 결과는 진범이 잡히고 처벌받는 것으로 드러나겠지만, 그 과정에서 시스템에 흔들렸던 많은 이들이 이 '모범형사'가 하는 '멍청한 짓'에 가책을 느껴 그 편에 서게 되는 것으로도 그려지고 있다.

 

모두가 불량해진 세상에서 어쩌면 '불량한 것'은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을 지도 모른다. 다 그렇게 살아간다 치부하며 잘못을 잘못으로 여기지 못하게 되는 것. <모범형사>가 그 불량한 세상에 애써 '모범'을 세워놓은 건 그들의 바름을 칭송하기 위함만이 아니다. 불이익을 받을지라도 여전히 모범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이들이 있어, 적어도 불량한 것들이 드러나고 그걸 알게된 이들이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게 되는 길을 제시하기 위함이기도 하다.(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