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의 가치, 풍자 코미디에 담아낸 우리네 출산·육아
tvN 월화드라마 <산후조리원>이 8회로 대미를 장식했다. 보통 미니시리즈가 16부작이라는 걸 염두에 두면 그 절반의 분량이지만, 이 드라마가 남긴 여운은 그보다 훨씬 더 길 것 같다. 산후조리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배경으로, 우리네 여성들이 겪게 되는 출산, 육아의 독특하고도 이상한 풍경은 빵빵 터지는 코미디로 그려졌지만, 그것이 꼬집는 현실은 매서웠다.
드라마는 첫 회부터 출산 과정을 디테일하게 여러 단계로 잡아내며 그것이 저승사자가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일이라는 걸 가감 없이 드러내준다. 흔히들 '순산'이라며 별거 아닌 것처럼 치부하곤 하던 출산의 그 풍경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왜 '격정 출산 느와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가를 실감나게 만든다. 그 과정은 피가 철철 흐르고 마치 짐승처럼 변해 싸워내야 하는 일이었으니.
그런 느와르 같은 출산은 그러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세레니티 산후조리원에 들어간 오현진(엄지원)은 그 곳의 엄마들이 하루 종일 아이의 젖을 주기 위해 세 끼 내내 미역국을 먹고 유축기를 달고 사는 모습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한 회사의 최연소 상무로서 능력을 발휘하던 그지만, 산후조리원에 들어와서는 엄마로서 뭐 하나 아는 게 없는 자격미달 최고령 산모가 된다.
모유냐 분유냐를 두고 벌이는 논쟁은 엄마가 우선이냐 아니면 아기가 우선이냐는 질문처럼 무의미한 것이지만, 산후조리원에서는 그것으로 엄마의 자격을 논한다. 다둥이 엄마로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조은정(박하선)은 그래서 산후조리원의 모범적인 엄마로 추앙되고,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오현진은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과 자기 자신 사이에서 심각한 괴리감을 겪는다.
조은정의 정반대 위치에서 아기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엄마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며 분유수유를 선택하는 이루다(최리)의 등장은, 산후조리원의 모성 강요 분위기에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산후조리원>은 조은정의 선택이나 이루다의 선택 그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언가에 의한 강압과 억압으로 강요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다만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
아이를 갖기를 그토록 소망했지만 결국 낳은 아기를 먼저 보내게 된 딱풀이 엄마 박윤지(임화영)가 오현진의 아기를 마치 자신의 아기처럼 생각하며 집착하는 에피소드는 출산의 문제가 어떤 이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소망이라는 걸 담는다. 출산은 '격정 느와르'이어서 피하고 싶은 어떤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기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더한 고통을 감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산후조리원>은 물론 우리네 사회가 가진 모성에 대한 강요, 일과 육아 사이에서의 갈등, 그 과정을 그저 당연한 어떤 걸로 여기는 사회 풍토 같은 것들을 날카롭게 비판했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어떤 하나의 결론을 답으로 내리지는 않는다. 산후조리원을 나선 엄마들은 저마다의 선택을 한다.
오현진은 아기를 위해 1년간의 육아휴직을 결심했다가 자기 앞에 생긴 기회를 외면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은 여전히 부족하고 이기적인 엄마라고 말하지만 세레니티 산후조리원 최혜숙(장혜진) 원장은 그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좋은 엄마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에요. 아이랑 함께 행복한 엄마지. 꼭 행복해지세요."
조은정은 아이의 엄마로서의 삶만이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삶 또한 소중하다는 걸 깨닫고는 변화한다. 아이를 돌보면서도 자기 삶을 찾아가는 것. 불행한 부모의 결혼생활만을 보며 자라 결혼 자체에 두려움을 가졌던 이루다는 진정 사랑하는 아이의 아빠와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게 된다. 또 아이를 먼저 보낸 엄마 박윤지는 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조금씩 잊어갈 거라고 다짐한다. 모두가 저마다의 선택들을 했고, 거기에 대해 드라마는 따뜻한 응원의 시선을 던진다.
<산후조리원>은 사실 그 드라마 내용이 세레니티 산후조리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한정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16부작 같은 미니시리즈의 틀은 다소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8부작을 선택한 것이지만, 이런 선택은 향후의 드라마들의 기획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니시리즈는 16부작이라는 틀에 맞추다 보면 좋은 소재라도 짧아서 버려지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의 길이를 다변화시킨 선택의 성공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풍자적이고 블랙코미디적인 톤으로 풀어낸 박수원 PD의 연출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런 연출이 있어 드라마는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더불어 웃음과 감동까지 더할 수 있었다. 여성들만 공감할 수도 있는 소재를 남편들의 이야기까지 더해 폭넓게 담아내려 한 작가들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또 엄지원, 박하선, 장혜진, 임화영 같은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 또한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려준 중요한 요인이다. 모두가 박수 받을 만했다.(사진:tvN)
'옛글들 > 드라마 곱씹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미호뎐'은 어째서 '도깨비' 같은 절절함이 느껴지지 않나 (0) | 2020.11.29 |
---|---|
욕하면서 보게 만드는 중독성, '펜트하우스'의 위험한 선택 (0) | 2020.11.29 |
가사도우미 면접 보러 가니? '며느라기'의 공감백배 시월드 (0) | 2020.11.29 |
'스타트업', 아는 게 코딩뿐인 남주혁은 과연 어떻게 변할까 (0) | 2020.11.29 |
'일의 기쁨과 슬픔', 때론 디테일한 일상 공감이 더 긴 여운을 만든다 (0) | 2020.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