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구미호뎐'은 어째서 '도깨비' 같은 절절함이 느껴지지 않나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구미호뎐'은 어째서 '도깨비' 같은 절절함이 느껴지지 않나

D.H.Jung 2020. 11. 29. 11:52
728x90

'구미호뎐'의 문제점, 너무 들쭉날쭉한 이야기로는 몰입이 어렵다

 

지난주 결방의 이유를 tvN 수목드라마 <구미호뎐>은 '완성도'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보다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한 주 결방을 선택했다는 것. 그래서 돌아온 <구미호뎐>은 과연 그 완성도를 높였을까.

 

구미호 이연(이동욱)과 이무기(이태리)의 일대 격전을 앞두고 있는 <구미호뎐>이지만 이상하게도 이 드라마는 생각만큼의 극적 긴장감이 생기지는 않고 있다. 심지어 이연이 사랑하는 남지아(조보아)의 몸에 이무기가 깃들었고 그래서 점점 이무기화 되어가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이 겪게 될 수 있는 위험(죽음이든 위기든)은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몰입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다. 그런데 남지아나 이연 같은 남녀 주인공은 물론이고 이들을 돕는 구신주(황희)나 투덜대면서도 이연을 살리려 하는 이랑(김범)이 위기상황에 놓이게 되어도 시청자들이 느끼는 긴장감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기유리(김용지)를 이용해 구신주를 끌어내고 남지아의 부모님을 찾아간 이무기가 그들에게 자살 암시를 걸어 죽게 만드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그렇다. 어째서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 시청자들은 긴장하지 않게 됐을까. 그것은 이미 남자아의 부모님들이 죽음과도 같은 긴 실종을 겪었고 그 와중에도 이연의 작은(?) 도움으로 너무나 쉽게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쉽게 죽지 않는다. 또 죽은 줄 알았지만 쉽게 살아 돌아온다.

 

심지어 죽음이 갈라놓는 아픈 상처들도 그리 절박한 마음을 만들지 않는다. 그건 이미 과거 수백 년 전 이무기가 깃든 남지아가 이연에 의한 죽음을 선택한 후 여러 차례 환생했고 결국 이연을 만나게 됐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죽어도 다시 환생해 만난다. 그러니 긴장할 일이 뭐가 있나.

 

물론 이연이 이무기를 끌어안고 삼도천에 몸을 던져 환생도 불가한 영원한 죽음을 선택하려 한다는 사실은 조금 다르지만, 드라마가 지금껏 흘러온 이야기의 구조상 과연 진짜로 이연이 그런 죽음에 이를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삶도 죽음도 어떤 위기 상황도 긴장감이 잘 느껴지지 않게 된 건 이야기 속 죽음이 너무 쉽게 다뤄져서다.

 

이무기가 퍼트린 역병에 의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지만 그것 역시 별다른 긴장감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전혀 알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죽는 건 이 드라마에서는 거의 풍경 같은 밋밋한 느낌으로 전해진다. 단 한 사람이 죽어도 그 인물에 대한 짧아도 시청자들이 공감할만한 디테일들이 담기게 되면 더 절박하게 느껴질 수 있을 테지만 이 드라마는 대본에서도 또 연출에서도 그런 지점에 강조점을 전혀 두지 않는다.

 

게다가 당장 종말이 가까워올 정도의 역병이 번지는 순간에도 이연과 남지아가 곱창집을 찾아가 곱창을 먹는 PPL 같은 부분은 그잖아도 쉽지 않은 몰입을 더욱 맥빠지게 만든다. 그렇다고 이런 대본과 연출의 결함을 연기가 채워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제 마지막을 향해 가는 이 극적 상황 속에서도 긴장감이나 절절함이 느껴질 수 있을까.

 

수백 년에 걸친 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운명적 사랑이야기. 그것도 우리네 고전에서 재해석된 이야기라는 점은 여러모로 <구미호뎐>을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와 비교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라.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 김신(공유)과 지은탁(김고은)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려만 해도 느껴지던 절절함을. <구미호뎐>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는 그 절절함이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