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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1박2일’의 김C, 그 맨 얼굴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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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인의 맨 얼굴, 김C

‘1박2일’의 ‘백두산 특집’에서 배로 19시간, 버스로 23시간을 이동한 출연진들. 아무리 리얼 버라이어티쇼지만 눈을 뜬 강호동은 먼저 눈곱부터 닦아내고, 가까이 놓여있는 카메라에 얼굴 크게 잡힌다고 투덜댄다. 이승기는 늘 그래왔듯이 그 와중에도 생수를 조금 따라서 세수를 한다. 만인에게 얼굴이 노출되는 연예인이라면 습관적으로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그 때 불쑥 이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난 방송을 위해 안 씻을래.”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C. 그 이유는 “우리의 여정이 힘들다는 걸 그냥 표현”하기 위해서란다.

‘1박2일’에서 김C는 사실 다른 멤버들과 비교해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는 캐릭터는 아니다. 복불복 게임의 벌칙으로 고추냉이가 잔뜩 들어간 음식을 먹게 된다면 아마도 예능에 익숙한 이들은 그것이 실제 맵건 맵지 않건 ‘확실하게 맵다는 리액션’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김C는 다르다. 그저 먹고는 그저 그렇다는 표정을 지을 뿐 과장된 리액션은 보이지 않는다. 김C의 존재가 부각됐던 번지점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승기와 은지원이 못한 번지점프를 하는데 있어서 김C는 예능인들 특유의 과장된 몸짓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뛰어내린 후, “이런 거라도 해야한다”고 담담히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과장되지 않은 모습은 ‘1박2일’에서는 사실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명한PD가 밝힌 대로 리얼 버라이어티의 진가는 ‘꾸미지 않는 것’에서 자연스러울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호동이 표현한 대로 “눈만 감으면 시체”가 되는 김C의 얼굴은 이미지로 메이크업된 것이 아닌, ‘예능인 본래의 맨 얼굴’을 보여준다. 그래서 백두산까지의 여정에서 다른 팀원들이 힘겨운 표정을 지으며 고생을 역설하는 것보다, 버스 맨바닥에서 자고 일어난 김C가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다”고 하는 말 하나가 더 실감을 준다.

지금까지 김C가 ‘1박2일’에서 보여준, 아니 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보여준 행보들도 거의 자신의 맨 얼굴에 가깝다. 김C가 소설가 이외수씨의 집을 추천해 찾아간 것은 ‘1박2일’에서 기획된 내용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김C와 이외수씨의 관계가 그렇듯 돈독하다. 김C가 쓴 책에 이외수씨가 삽화를 그려준 것이 계기가 되어 만난 그들은, 이외수씨가 김C의 콘서트에서 퍼포먼스를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춘천에서 오래 생활했고, 사실상 거지처럼 살았던 적이 있으며, 예쁜 색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점 이외에도 그들은 삶 자체가 꾸며지지 않은 맨 얼굴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뜨거운 감자’의 보컬로서 ‘봄바람 따라간 여인’을 부르는 김C의 음악 또한 치장되지 않은 느낌을 준다. 시류를 타는 이른바 히트곡들과 비교해 조금은 덜 세련된 면이 있지만 바로 그것이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감칠맛 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어쩌면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고집하는 음악인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마련인 독특한 그들만의 매력일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찾아가 김C가 ‘서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리는데 어색하지 않은 것은, 그가 노래를 할 때나 예능을 할 때나 혹은 라디오를 하거나 내레이션을 할 때나 늘 솔직한 진지함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 선 예능인들이 늘 웃고 밝은 얼굴을 보이려 할 때, 막상 그 카메라를 메고 들고뛰는 제작진들의 힘겨운 얼굴처럼, 김C는 그 카메라 이면의 리얼리티를 그대로 보여주는 힘이 있다. 어쩌면 김C의 꾸미지 않는 얼굴은, 앞으로는 늘 웃고 있지만 때로는 찡그리고, 눈물도 나고, 힘겨워 하기도 하는 모든 예능인들의 맨 얼굴을 표상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