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스포트라이트’가 ‘킬’했어야 했던 아이템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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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가 ‘킬’했어야 했던 아이템들

D.H.Jung 2008. 7. 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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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왜 미완의 아이템이 되었나

MBC 수목 드라마 ‘스포트라이트’에서 사회부 기자, 서우진(손예진)은 갑자기 울어버린 앵커로 인한 방송사고를 막기 위해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생방송으로 시간을 끌기도 하고,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짝퉁 명품을 파는 현장을 탐사보도하기 위해 잠입했다가 곤욕을 치를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심지어 특종에 대한 강박으로 장진규라는 희대의 살인마에게 접근해 목숨을 내건 인터뷰를 강행하기까지 한다. ‘스포트라이트’의 초반 장진규 에피소드까지의 숨가쁜 이야기는 사회부 기자라는 직업이 보여줄 수 있는 절정을 보여주었다.

‘스포트라이트’, 왜 좋은 아이템을 살리지 못했나
이처럼 애초에 ‘스포트라이트’가 꿈꾸었던 드라마는 적당히 전문직을 차려입은 멜로 드라마가 아니었다. 물론 손예진과 지진희가 가진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어떤 멜로의 예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잠입 취재를 하기 위해 다방 여 종업원으로 위장하고, 희대의 살인마와 격투를 벌이다 머리에 피가 철철 흐르는 맹렬 여성의 이미지를 부각시킨 손예진과, 따뜻함보다는 냉철함을 연기하며 ‘킬!’을 외쳐대는 캡 지진희는 그런 예감을 없애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 초반부에 너무 하이라이트를 집중시키다보니 다음 진행에 큰 부담이 생겼다. 앵커 경합이나, 사회에 전 재산을 기부한 할머니의 사연 같은 에피소드가 그 자체로는 약한 것이 아니지만, 장진규 에피소드 뒤로 붙으면서 상대적으로 맥이 풀리게 된 것. 장진규 에피소드에 환호하던 시청자들은 그 이후의 상대적으로 맥빠지는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스포트라이트’는 장진규 이후 종영했다”는 과격한 표현을 하기도 했다.

‘스포트라이트’는 이후에도 여러 번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뉴시티 분양과 관련하여 벌어진 영환건설의 비리를 캐내려는 서우진 기자가 총체적인 위기 국면에 접어들면서다. 기자로서의 신뢰도도 땅에 떨어지고, 가족들마저 피해를 입게되는 극단적 상황으로 몰리면서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 올렸다. 하지만 결국 그 뿐,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이어진 에피소드는 다시 심층리포트의 진행자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는 서우진과 채명은(조윤희)과의 대결이다.

이후 마지막 에피소드로서 경제특구비리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지만 이 역시 결말에 있어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했다. 그동안 고압적으로만 보였던 국정원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것이나, 영환건설측이 순순히 방송출연을 자청한다는 것, 그리고 방송 도중 서로의 비리를 폭로하게 되는 내용은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상당 부분 떨어뜨렸던 것이 분명하다.

‘스포트라이트’, 왜 미완의 아이템이 되었나
전체적으로 보면 ‘스포트라이트’는 늘 일을 잘 벌여놓은 상태에서 뒤처리가 잘 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기자로서 서우진이 잡아내는 아이템들은 실제 현실 사회에서 보았던 유사한 비리사건들을 연상시키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그것이 다루어지는 방식은 주로 정치적인 해결에 의지했다. 사회부에서 시작한 에피소드가 정치부에서 끝나는 것은 실제로 보면 현실적일지 모르지만, 드라마 속에서 시청자들이 보고싶은 결말은 아니다.

‘스포트라이트’는 또한 서우진과 오태석(지진희)의 멜로 구도에 있어서도 망설이기만 할 뿐 어떤 진행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꼭 멜로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 중반부터 오태석의 캐릭터가 캡에서 연인으로 바뀔 조짐을 보였던 것은 드라마의 일관성에 독이 되었다. 차라리 멜로의 조짐 자체를 빼고 하드보일드하게 진행하던가, 아니면 처음부터 멜로를 바탕에 깔고 가던가 ‘스포트라이트’는 미리 결정을 했어야 한다. 직접적인 멜로 라인은 아니지만 저 ‘X파일’의 스칼리와 멀더 같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스포트라이트’는 여러모로 미완의 성격이 강한 드라마가 되었다. ‘스포트라이트’가 ‘킬’해야 했던 것은 너무 초반부에 만들어버린 하이라이트에 이어진 전체 흐름과 아무 상관없는 소소한 경합아이템들이다. 또한 애초에 멜로를 예상하기 어렵게 어필되었던 오태석의 캐릭터가 중반부터 흔들린 것도 ‘킬’되었어야 하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에피소드들 하나 하나를 두고 보면 관심을 끌만한 좋은 아이템들이었지만, 이 아이템들을 꿰뚫는 하나의 주제나 큰 흐름을 잡지 못했기에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상승곡선을 이루지 못했다.

이로서 ‘스포트라이트’는 드라마 속에서의 뉴스프로그램과 유사한 성격을 띄게 되었다. 각각의 뉴스들은 흥미진진하지만, 어떤 일관된 심층리포트 같은 집요함이나 끈질김을 발견하기가 어렵게 된 것은 이 좋은 가능성을 가진 아이템 자체를 아쉽게도 ‘킬’하게 만드는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