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범잡'이 지적한 유체이탈 사과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점 사과드립니다." 얼핏 보면 사과문처럼 보이지만 이 안에는 엉뚱한 변명이 섞여 있다. 그것은 피해자는 의도와 상관없이 엄연한 피해사실이 있는 것이고, 그래서 의도를 강조하는 건 변명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tvN <알쓸범잡>에서 박지선 교수는 이 같은 가해자들의 잘못된 사과문의 사례들을 들려줬다.
"일이 이렇게 된 점은 사과드립니다." 이 문구에는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일이 이렇게 됐다는 식의 '책임회피'가 들어있고 심지어 가해자가 피해자임을 호소하는 사과문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저의 잘못이 큽니다" 같은 문구에는 '크다'라는 표현 자체에 내 잘못이 아닌 부분도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고, "억울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문구에는 피해자에게 내 입장을 이해하라는 식의 변명이 담겨 있다.
박지선 교수가 지적한 잘못된 사과문 중 시선을 끈 건 "제 작은 실수로 인해서 큰 오해가 생긴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같은 문구였다. 박지선 교수는 이런 사과문은 본인의 잘못을 '실수'라 표현하는 것이 피해자를 굉장히 분노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건 문제를 너무나 사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해'라는 표현은 마치 "상대방은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오해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건가?"라고 들릴 수 있다고 했다. 잘못된 사과문이 2차 가해로 이어지는 셈이다.
흥미로웠던 대목은 박지선 교수가 지적한 가해자들의 잘못된 사과문의 사례에 대해 윤종신이 더한 이야기였다. "저는 이 내용이 의미있는 게 방송이나 SNS를 통해서 해명이나 사과문을 올리는 일들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내 잘못에 대한 것도 있고 누구를 가해해서도 있고 아니면 논란에 대한 해명을 할 때도 보면, 진심을 담아서 쓰면 괜찮아질 일이 핑계가 섞이면 확실히 일이 더 커지더라고요."
실제로 최근 벌어졌던 연예계의 일련의 논란들과 거기서 나왔던 사과문들을 보면 어째서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분노가 컸던가를 이 사례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TV조선 <아내의 맛>과 함소원이 조작방송에 대해 내놓은 사과문을 보면, 함소원은 '변명하지 않겠습니다'라며 '잘못했다'는 말을 연거푸 내놓은 반면, <아내의 맛> 제작진이 내놓은 사과문에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 이외에 '잘못했다'거나 '사과한다'는 말은 단 한 줄도 들어 있지 않다. 대신 이 문제를 출연자의 '프라이버시' 문제를 제작진이 100% 확인할 수 없어 벌어진 일이라며 함소원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한 대목이 들어 있다.
서예지와 김정현 사태에 대한 해명문과 사과문에서도 '오해', '실수' 같은 단어들이 등장한다. 서예지의 소속사 골드메달리스트가 내놓은 해명문은 이른바 '조종설'은 사실이 아니고, 공개돼서는 안 되는 사적 대화가 공개되면서 나온 '오해'라는 논지가 담겨있다. 또 학력위조 논란에 대해서도 소속사측은 방송에서 긴장해 '실수'를 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김정현이 자필로 내놓은 사과문에도 죄송하다, 후회스럽다, 사죄드린다, 용서를 구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지만 마지막 부분에 '실수'라는 단어가 들어간 건 부적절해 보인다.
<알쓸범잡>에서 박지선 교수의 잘못된 사과문의 사례를 들으며 정재민 전 판사는 가해자들이 법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선처를 호소하곤 하는데, 그것이 자신이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분명히 했다. 연예인들의 논란이나 범법 사실이 밝혀졌을 때 그들이 실망한 대중들에게 사과하는 것만큼 피해 당사자에게 사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걸 새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윤종신의 말대로 사과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잘못된 사과는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최근에 연달아 터지고 있는 연예계의 갖가지 사건들과 그로 인해 늘고 있는 해명과 사과의 글들은 진심이 아니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한 일이 될 수 있다. 박지선 교수는 어떻게 사과하면 올바른 사과가 되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다 필요 없고 "내가 잘못했다. 내 잘못이다"라는 진심을 담은 한 마디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사진:tvN)
'옛글들 > 명랑TV'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쩌다 사장', 조인성에 눈멀다 차태현에 마음 빼앗긴 까닭 (0) | 2021.04.26 |
---|---|
'강철부대', 박갈량 박준우가 있어 이 군대 서바이벌이 산다 (0) | 2021.04.26 |
당신 얼마나 명예로웠는가..'강철부대' 해병대가 남긴 먹먹한 울림 (0) | 2021.04.18 |
'유퀴즈' 인간신호등·인형병원장..이런 분들이 세상을 바꾼다 (0) | 2021.04.14 |
심상찮은 신드롬 '강철부대', 軍리얼리티 끝판왕 떠오른 이유 (0) | 2021.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