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인’, 재벌가 이야기로 욕망을 성찰하는 드라마
냉정한 이야기지만 아마도 자본주의에서 누군가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그 사람이 가진 거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일 게다. tvN 토일드라마 <마인>은 바로 ‘나의 것’이라는 의미의 ‘mine’을 제목으로 삼고, 효원그룹이라는 재벌가의 으리으리한 대저택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다. 엄청나게 넓은 대지 위에 커다란 건물이 카덴자 그리고 작은 건물이 루바토라 불리는 이 대저택은, 돈으로 매길 수 없는 예술작품에 가까운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게다가 완벽한 카스트를 이루는 이 집의 위계는 이 곳에서 살아가는 주인들과 그들을 완벽하게 케어해주는 메이드들로 나뉘어있다. 조선시대나 어울릴 것 같은 ‘도련님’이라는 지칭에 헛웃음을 흘리는 신참 메이드는 헤드 메이드에게 소리를 빽 지르며 “여기는 어나더 월드”라고 알려준다. 그 다른 세상을 구조화하는 건 다름 아닌 돈이다. 그래서 메이드들도 여기에 적응하고 갑질하는 저들 세계에 남고 싶어 한다. 지나칠 정도로 충분한 돈을 주니까.
그런데 재벌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는 엉뚱하게도 엠마 수녀(예수정)의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주기도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재벌가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설명하는 목소리 역시 엠마 수녀다. 이 지점은 <마인>이 이 작품을 쓴 백미경 작가의 성공작이었던 JTBC <품위 있는 그녀>와는 사뭇 다른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품위 있는 그녀>가 부유층들의 허위의식을 폭로하는데 집중했다면, <마인>은 모든 걸 다 갖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 속에서 진짜 가져야할 것을 못 가진 이들의 삶을 성찰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물론 이 극단화된 부유층의 이야기는 ‘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어떤 성찰의 기회를 줄 것으로 보인다.
이 드라마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심축은 역시 첫째 며느리 정서현(김서형)과 둘째 며느리 서희수(이보영)다. 재벌가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자라온 정서현은 가족조차 비즈니스를 하듯 대하며 살아가는데 익숙하다. 이들에게 관계는 ‘가진 것’에 따라 달라지는 서열과 무관하지 않다. 정서현은 맏며느리로서 집안 대소사를 결정하고 예술 사업을 통해 대외적인 일까지 관장하지만, 가족 관계는 차갑기 그지없다. 알코올과 도박에 빠져 사는 남편은 남이나 다름없고, 그의 이혼한 아내가 낳은 아들 수혁(차학연)은 모자간의 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모든 걸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젊어서 사랑했던 동성 애인을 잊지 못하고 또 드러내지도 못한 채 가슴 속 깊이 봉인해놓고 살아간다. 가진 것이 의미 없어지는 삶이다.
반면 여배우였다 결혼해 효원가에 들어온 서희수는 정서현과 달리 비서와도 자매처럼 지내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남편 전 부인의 아들과도 친아들 같은 정을 준다. 하지만 모든 걸 다 가졌다 생각하는 그에게도 위기가 시작된다. 시크릿 튜터로 들인 강자경(옥자연)이 조금씩 자신이 가졌던 것들을 건드리면서다. 서희수의 남편 한지용(이현욱)과 이미 과거에 비밀스런 관계였을 것으로 보이는 강자경은 그래서 서희수의 모든 걸 빼앗으려 할 것이고, 이 둘의 사투는 드라마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서희수가 저 정서현과는 ‘가지려는 것’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정서현은 자신의 사랑 같은 삶의 진정한 것 대신 재벌가 맏며느리의 삶을 가지려 했지만, 서희수는 이 낯선 재벌가에 들어와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희수가 가지려는 건 그래서 ‘재벌가 며느리’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다. 이 대비는 향후 이 드라마가 갖진 대결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온갖 욕망으로 가득 채워진 자본주의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가지려 노력하지만, 진짜 가져야 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 물론 <마인>의 겉면은 재벌가를 둘러싼 치정과 불륜, 후계구도를 두고 벌어지는 상속 싸움, 가진 것으로 나뉜 신 카스트 속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갑질 등등 자극적인 광경들이지만, 그 속은 마치 이들을 부감으로 내려다보는 성찰적 시선이다. 여러모로 <품위 있는 그녀>에서 한 걸음 더 깊어진 작가의 고민이 느껴지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PD저널), (사진출처: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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