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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실격’, 도대체 무엇이 이들의 자격을 박탈했나
    동그란 세상 2021. 9. 1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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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실격’, 전도연의 눈물, 류준열의 허함에 공감했다면

    인간실격

    “안녕하세요. 선생님.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만나고온 그 날부터 인간의 자격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가족, 친구 동료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자격. 자기 이름 당당히 걸고 세상의 룰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런 온전한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세상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분노하고 절망할 자격.”

     

    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은 대필작가였지만 무슨 일인지 지금은 가사 도우미가 되어 일하고 있는 부정(전도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첫 화의 부제는 ‘인간의 자격’이다. 어쩌다 대필작가가 됐는지 그러다 왜 지금은 가사 도우미 일을 하는지 이유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부정이 처한 상황은 그 내레이션과 더해져 이 인물이 왜 절망감을 느끼는가를 잘 말해준다. 

     

    그런데 이 내레이션과 더불어 보여지는 영상은 한 여성과 모텔에 들어온 강재(류준열)의 모습이다. 본인은 역할 대행 서비스를 한다고 하고 있지만, 그 첫 장면이 말해주듯 그가 하는 일은 호스트와 그리 다르지 않다. 정해진 시간 동안 역할을 대행해주고 그 시급을 받는 일을 한다. 부정의 내레이션이 깔리며 강재의 일상이 겹쳐지지만, 이 서로 다른 두 삶의 겹침은 그다지 이물감이 없다. 

     

    대필작가였다 그것마저 박탈된 부정의 삶이나, 진짜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는 강재의 삶이나 비슷하다. 저 부정의 내레이션처럼 그들은 ‘자기 이름 당당히 걸고 세상의 룰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런 온전한 인간은 아니다. 그래서 ‘세상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분노하고 절망할 자격’도 없다 치부된다. 

     

    부정은 지나(이세나)의 집을 청소하고 정리해주는 가사도우미 일을 하러 그 아파트에 갔다가 주민들이 쓰는 사우나에 들어간 일로 다른 주민으로부터 봉변을 당한다. 직접적으로 갑질을 당한 건 아니지만, 관리인에게 ‘아무나’ 사우나 출입하는 이들을 막아달라며 은근히 ‘저질’이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그런데 부정이 말하는 ‘인간의 자격’, 즉 사우나도 주민들은 들어가지만 가사도우미는 들어갈 수 없고, 글을 써도 대필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 없게 만드는 그 자격은 무엇에 의해 주어지는 걸까. 그건 다름 아닌 자본화된 세계에서 돈의 논리로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대필작가를 고용한 작가는 돈을 지불했기에 그 자격을 갖고, 역할대행을 요구한 이들도 시간 당 돈을 지불해서 그 자격을 갖는다. 나아가 사우나를 쓰는 일도 그 집을 소유해서 가능한 자격이다. 

     

    자본화된 세상에서 인간의 자격은 심지어 죽은 후에도 이어진다. 강재가 빌려준 돈을 갖고 두 달 전 사라졌다 자살한 사체로 돌아온 정우(나현우)의 죽음은, 돈이 없고 또 돈을 내줄 가족이나 친구조차 없어 떠나는 마지막 길을 쓸쓸하지 않게 갈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같이 동반자살한 여자는 최소한 엄마가 있어 울어주고 장례를 치러주지만, 정우는 그런 가족도 없다. 다만 그 쓸쓸한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딱이(유수빈)와 강재가 있을 뿐이다. 

     

    모든 게 자본화된 세상에서 가진 자들만이 자격이 주어지는 세상. 하지만 부정도 강재도 이것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다. 모든 역할 대행을 다해도 장례 역할 대행은 못할 짓이라며 갖가지 장례비용을 얘기하는 강재도 차마 죽은 정우의 사체를 그냥 방관하지 못한다. 정우의 죽음이 너무 ‘허하다’고 말하는 딱이 이야기를 듣다 강재는 “비용이 얼만데?” 하고 묻는다. 돈이 없어도 최소한 저렇게 쓸쓸하게 보내는 건 아니라 생각하는 것. 강재는 결국 제 돈을 털어 장례식을 해주기로 한다. 

     

    대필작가로서 아마도 선생님이라 불리는 그가 대리해준 이에게 악플을 달았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출석요구서를 받은 부정은 절망감에 빠진다. 대필작가여서 ‘세상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분노하고 절망할 자격’을 갖지 못했기에 누군가에 대한 항변이 ‘악플’로 치부되는 현실을 마주하게 돼서다. 하지만 절망감에 아버지 창숙(박인환)을 찾아간 부정은, 박스를 주우러 다니며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자식 앞에서는 “괜찮다”고 말하는 전혀 괜찮지 않은 삶을 확인한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돈’의 논리로 겨우 주어지는 ‘인간의 자격’을 실감하며 부정은 절망감을 느낀다. 부정은 애써 절망감을 숨겨왔지만, 자식은 부모보다 잘 살아야 맞는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에 무너져 내린다. “아부지. 나는 실패한 거 같아. 나 실패한 거 같아요... 그냥 그냥 내가 너무 못났어.” 그래도 “너는 내 자랑”이라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부정은 애써 부인한다. “나 자랑 아냐 아버지. 자랑이라고 하지 마. 나 그냥 너무 나빠진 거 같아...” 

     

    그는 열심히 노력해 왔지만 자신이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는 것에 절망한다. “아버지 나는 아무 것도 못됐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 것도 못됐어. 결국 아무 것도 못될 거 같아요. 그래서 너무 외로워 아버지. 아버지도 있고 정수도 있는데 그냥 너무 외로워. 그냥 사는 게 너무 창피해.” 

     

    부정의 눈물이 가슴을 후벼 파는 건 그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로 다가오고 있어서다. 적어도 우리 모두는 부모 앞에서 ‘자랑’이었지 않던가. 무언가가 될 거라 믿었던 자랑. 하지만 자본화된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때론 많은 걸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간의 자격’조차 없는 그런 삶을 마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지만, 세상은 그렇게 우리에게 무례하게 군다. 

     

    그런 부정이 버스 안에서 우연히 손수건을 내준 강재의 옷소매를 잡는 장면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가진 어떤 위로의 예감을 갖게 만든다. 저마다의 돈의 가치로 ‘자격’을 부여하고, 심지어 ‘인간실격’ 판정을 내리는 현실이지만, 그 안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인간적인 그 진짜 자격을 확인해주는 이들의 모습이 보고 싶어져서다. 그것은 또한 스스로 ‘실격’이라 대우받는, 사실은 결코 실격이 아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자격 있는 진짜 삶의 가치를 드러내주는 것일 수 있을 테니.(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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