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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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세상

좀비 장르 ‘해피니스’는 왜 한효주와 박형식의 설렘을 담았을까

D.H.Jung 2021. 11. 14.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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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니스’가 묻는 행복, 팬데믹 속에서도 우리의 선택은

해피니스

“그래. 가까운 데 있었어. 이현아 너 혹시 사귀는 사람 있어? 있어? 너 코 고니? 이 갈아? 우리 결혼할까?” tvN 금토드라마 <해피니스> 첫 회 엔딩에서 윤새봄(한효주)은 정이현(박형식)에게 대뜸 결혼을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고, 정이현은 윤새봄에게 “우리 사귈래?”하고 물었을 정도로 그에게 설렘을 느낀 바 있었다. 하지만 당시 윤새봄에게 거부당했던 정이현은 그의 갑작스런 결혼 제안이 너무 친해 던지는 농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윤새봄은 농담이 아니라고 정색하며 진지한 얼굴로 정이현을 바라본다. 

 

이 장면은 사실 <해피니스>가 첫 회에 보여준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의 전조들과는 사뭇 대비된다. 윤새봄과 정이현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곳은 다름 아닌 군 당국이 새로이 창궐한 감염병으로 좀비처럼 변해 목을 물어뜯는 증상(?)을 보이는 이들을 임시로 수용해놓은 폐 대학교다. 좀비처럼 변해 공격해온 경찰특공대 교육생 이종태(남상우)와 사투를 벌이다 손에 상처를 입게 되면서 윤새봄은 중대본 위기대응센터 소속 한태석(조우진) 중령의 명령에 의해 그곳으로 수용됐다.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윤새봄은 그러나 감금된 방 벽에서 의문의 핏자국을 발견하고, 수용된 건물 전체에서 들려오는 괴성들을 듣는다. 건물 방 곳곳에 감염된 자들이 수용되어 짐승 같은 괴성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 평범한 사건처럼 시작된 이야기는 이제 세상 가득 좀비들로 채워져 종말론적 위기에 들어설 암울한 세상을 예고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윤새봄과 정이현은 엄청난 충격에 빠지기보다는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윤새봄이 정이현에게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결혼을 이야기할 정도로. 

 

<해피니스>는 알 수 없는 감염의 원인으로 좀비들이 창궐하는 종말론적 팬데믹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어둡지가 않다. 아니 어둡기는커녕 윤새봄과 정이현 사이의 설렘 같은 멜로 감정까지 느껴진다. 물론 갑작스레 좀비로 변한 인물들과 육박전을 벌이는 장면이나, 그 사태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감염자가 먹었다는 약을 추적하고 그 약이 심한 부작용으로 퇴출됐던 약 ‘넥스트’라는 걸 알아내는 과정은 액션 스릴러가 주는 긴장감과 공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도 <해피니스>의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는 발랄하다. 

 

그 이유는 암울할 수 있는 팬데믹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의외로 이에 침착하게 대응하고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들 때문이다. 윤새봄은 한태석이 찾아 본 인사기록카드에 적혀 있듯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극도로 침착’한 인물이고. ‘머리가 좋고 생존력이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호기심이 강한 것이 문제’인 인물이다. 그는 조사를 받기 위해 폐 대학교에 감금되어서도 아침에 출근 걱정 없이 푹 잘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하는 그런 성격을 가졌다. 

 

팬데믹의 암울함과 대비되는 낙천적인 인물들의 모습. 아마도 이것은 <해피니스>가 갖고 있는 여타의 좀비물과 차별화되는 지점일 게다. <해피니스>는 위기 상황을 그리긴 하지만 그걸 절망적으로 담지는 않는다. 이건 어떻게 가능해진 것이고 왜 작가는 이런 설정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있는 걸까. 

 

코로나19가 종식된 근미래 설정은 여기에 대한 답을 해준다. 이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는 ‘행복’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을 새삼 절감한 바 있다. 그저 마스크 없이 편히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이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던가를 우리는 팬데믹 상황에서 오히려 깨닫게 됐다. 게다가 이런 위기 상황은 완전히 종식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적응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삶이란 그런 위기와 더불어 지혜롭게 살아내는 그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해피니스>는 바로 이런 팬데믹 이후의 달라진 인식 기반 위에 세워진 드라마다. 윤새봄과 정이현은 그래서 새로운 감염병이 창궐하고 좀비 세상이 도래하는 그 위기 속에서도, 의외로 침착하고 자잘한 행복들과 서로에 대한 마음들을 꺼내놓는다. 결국 <해피니스>라는 제목에 담겨 있듯이 그런 진정한 행복이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건네는 따뜻한 이야기나, 손길에 의해 가능하다는 걸 드라마는 대놓고 꺼내놓는다.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설렘 가득한 멜로의 분위기가 이상하게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좀비 장르는 어둡다? 바로 이 지점은 좀비 장르가 마니아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게 한 중요한 이유다. 물론 넷플릭스 같은 전 세계에 분포된 좀비 장르 마니아들을 가진 플랫폼이라면 문제될 게 없지만, 우리네 지상파, 케이블 등에서 이러한 마니아적 성격을 가진 좀비 장르는 그만큼 리스크가 크게 느껴진 게 사실이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색다른 행복에 대한 인식 기반을 통해 어둡지 않고 설렘까지 담아놓은 <해피니스>의 이야기는 좀비 장르를 보다 폭넓은 시청자들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가능성이 되지 않을까. 남다른 기대감을 갖게 되는 대목이다.(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