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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세상

‘구경이’, 이번 이영애는 왠지 기대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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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서 끌리는 ‘구경이’, 이영애를 비롯 문법을 깨니 참신

구경이

과학실험실 같은 곳에서 고등학생이었던 케이(김혜준)가 비커에 담긴 피처럼 보이는 붉은 액체를 용기에 붓는 장면으로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는 시작한다. 그 광경은 마치 무언가 묘약 혹은 독약을 만들어내는 광경 같고, 케이는 현재화한 마녀 같은 모습이다. 그가 톱질로 나무를 자르는 장면과 함께, 이번에는 구경이(이영애)가 사는 집이 신나게 두들기는 키보드 소리와 바퀴벌레의 움직임을 따라 보여진다. 

 

영락없는 은둔형 외톨이의 행색을 한 구경이의 입에서는 “죽어! 죽어!”가 연실 흘러나온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들 속에서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게임에 몰두하는 주인공. <구경이>의 시작은 이 드라마의 서사가 어떤 구도를 갖고 있는가와 더불어 기존에 봐왔던 문법에서 벗어나 있다는 걸 드러낸다. 

 

구경이 역할의 이영애는 이 사실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배우가 아닐 수 없다. <대장금> 이후에 단아하고 우아한 모습에 갖혀 지내야 했던 배우.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가 그걸 깨주었지만, 그 살벌함마저 우아함으로 드러났던 배우가 아니었던가. 광고는 그를 ‘산소 같은 여자’로 이미지해 오래도록 소비시켰고 전작 드라마였던 <사임당, 빛의 일기>는 더더욱 <대장금>의 이미지를 다시 소환시켰다. 그러니 산발을 한 채 쓰레기 속을 뒹굴며 게임 폐인에 맥주를 엘릭서 마시듯 마시는 구경이로 돌아온 이영애는 그 첫 장면부터가 파격이고, 그건 또한 <구경이>라는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커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드라마가 2회를 지나가는 동안 그 흔한 남자 주인공 하나가 안 보인다. 이영애가 나왔는데 상대 남자 주인공은 없다. 남편 장성우(최영준)는 과거 케이와 얽힌 어떤 사건으로 인해 자살했다. 대신 <구경이>는 여성 캐릭터들의 전시장이라 할 만큼 그들 중심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구경이에게 보험 조사관일을 하게 만든 NT생명 나제희(곽선영) 팀장이 그렇고, 갑자기 등장해 케이를 함께 잡자고 손을 내미는 기부재단의 용숙(김해숙) 국장이 그렇다. 물론 남성 출연자들이 존재하지만 보조적인 역할들이 대부분이고 여성 원 탑에 빌런까지 여성이다. <구경이>의 서사가 특별한 건 이 인물 설정이나 구도에서부터 도드라진다. 

 

스토리는 과거 악연이 있던 구경이와 케이가 다시 통영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얽히게 되는 과정으로 풀어져 나간다. 나제희의 의뢰를 받아 보험사기의 진실을 파헤치던 구경이는 그 뒤에 숨겨진 연쇄살인의 징후들을 보게 된다. 즉 구경이는 자신이 추적하던 보험가입자가 사망하고, 그와 함께 회식을 했던 공장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것이 단순한 보험사기가 아니라는 의심을 갖게 된다. 그 연쇄살인마는 이미 케이라는 게 밝혀졌다. 따라서 드라마는 누가 살인범인가를 추적하기보다는 구경이와 케이 사이의 대결에 집중한다. 

 

그런데 구경이와 케이의 대결은 어딘가 살벌하면서도 발랄하다. 둘은 대결하고 있지만 어딘가 연결되어 있는 관계처럼 보인다. 먼저 케이라는 연쇄살인마는 그 죽이는 대상이 특이하다. 세상에 그런 존재는 없겠지만 적어도 케이에게는 “죽여도 될 만한” 그런 인간들이 대상이다. 동물을 학대하거나 죽이는 인물들이나, 보험사기로 숨어 지내면서도 자기 욕망을 억누르지 못해 매춘을 하는 인물(물론 그보다 더한 짓은 회식 중 물에 빠진 동료를 보고만 있었다는 사실일 테지만)이다. 

 

과거의 어떤 아픈 경험 때문일 테지만 케이는 주변사람에 대한 애착이 집착일 정도로 강하고, 그래서 그들이 하는 “저런 놈은 죽어도 돼”라는 말을 실행에 옮겨주는 인물이다. 도대체 그 과거의 경험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구경이의 추적은 케이의 연쇄살인을 막으면서도 그 죽어 마땅한 놈들에 대한 응징에 대한 공감대와 더불어 그가 겪은 일들에 대한 공감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여성들을 중심으로 해서 풀어가는 이야기와, 그 대결구도 속에서 자연스럽게 끄집어내질 폭력적인 세상(남성 서사 스토리에서 자주 등장하는)에 대한 냉소가 더해져 독특한 드라마가 탄생했다. 여기에 <아무도 모른다>라는 작품으로 믿고 보는 연출력을 보여줬던 이정흠 감독의 감각적이고 독특한 연출에 신예 성초이 작가의 도발이 더해졌다. 무엇보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산소 같은 여자’ 따윈 잊어버리라 외치는 듯한 이영애에게 마음이 간다. <대장금> 이후 틀에 갇혀 있었던 이영애지만, 어쩐지 <구경이>의 이영애에게서는 기대가 가는 이유다. (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