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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자신이 제일 소중, 이세영이 독보적 사극여성캐릭터인 이유(‘옷소매’)
    동그란 세상 2021. 12. 2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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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소매’의 열광에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남다른 시선이 있다

    옷소매 붉은 끝동

    “이렇게나 저하를 연모하면서 후궁 되기는 왜 싫은 건데? 제조상궁마마님의 힘이 아니더라도 넌 후궁이 될 수 있어. 그저 저하께서 내미시는 손을 잡기만 하면.” 영조의 분노를 사 위기에 처한 이산(이준호)을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성덕임(이세영)에게 서상궁(장혜진)은 그런 말로 위로를 건넨다. 사실이다. 이미 이산은 성덕임을 마음에 두고 있고, 그 사실은 성덕임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서상궁의 말에 성덕임이 오히려 던지는 질문은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파격적이다.  

     

    “왜요? 왜 연모하면 후궁이 돼야 해요? 넌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후궁이 돼서 무슨 좋은 꼴을 본다고. 새로운 여인들이 날마다 줄줄이 굴비처럼 들어올 걸요? 모두가 내로라하는 사대부가의 여식일 거고 젊고 어여쁠 거고 그 꼴을 보면서도 입도 뻥긋 못하고 참고 살아야 되는데 그게 후궁 팔자인데 왜 그렇게 살아야 돼요? 저하가 소중해요. 하지만 전 제자신이 제일 소중해요. 그러니까 절대로 제 자신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지 않을 거예요. 제대로 가질 수 없는 거면 차라리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게 나으니까.”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성덕임의 이 대사는 어째서 이 사극이 현재의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하는가를 잘 드러낸다. 사실 이산과 성덕임의 이야기나 영조와의 갈등 같은 역사적 사실들은 이미 대중들에게도 친숙하다. MBC <이산>이 이미 이산과 의빈 성씨의 로맨스를 다룬 바 있고, 워낙 사도세자로부터 이어지는 영정조시대의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옷소매 붉은 끝동>이 다른 건 성덕임이라는 여성 캐릭터를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서다. 사극들이 여러 차례 재연한 것이지만, 궁녀들은 마치 왕의 간택을 받는 일이 팔자를 고치는 일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성덕임은 그 당연한 것처럼 치부되던 재연에 질문을 던진다. 성덕임은 후궁이 된다는 것의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런 현실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한다. 

     

    그것은 이산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뜻이다. 사랑보다 더 소중한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자각. 성덕임은 바로 이 자각 때문에 도드라지는 캐릭터고, 이 캐릭터는 다름 아닌 이 사극을 달리 만드는 동력이다. 그는 가만히 앉아 이산의 사랑만을 기다리며 간택을 바라는 존재가 아니고, 자기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이산은 물론 자신을 지키고 보다 동등한 위치에서 사랑까지 쟁취하려는 인물이다. 

     

    어느 비 오는 날 강아지를 키우려 하지 않는 이산에게 성덕임이 그 이유를 묻자, 이산은 “어려서 어미를 잃었는데 주인까지 잃게 되면 불쌍하니까”라고 답한다. 그것은 분란도 많고 해치려는 자들도 많은 궐에서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여기서 성덕임의 대꾸가 흥미롭다. “저하께서 승하하시면... 전.. 출궁당합니다. 하루아침에 밥줄이 끊기는데 불쌍하지 않습니까? 두 번 다시 오늘 같은 말씀 하지 마옵소서.” 물론 거기에는 지나치게 비관적인 이산에 대한 농이 섞여 있지만 성덕임은 그만큼 자신의 삶을 먼저 소중하게 여기는 캐릭터다. 

     

    연회에 생감과 게장이 올라온 일로 인해 대노한 영조(이덕화)가 이제 이산을 죽일 듯이 칼을 뽑아 들고 다가오는 그 위기의 상황 속에서, 이를 구원해줄 존재는 다름 아닌 성덕임이다. 성덕임은 과거 사도세자가 자신의 죽음 앞에서 영조로부터 받아낸 금등지사, 즉 끝까지 이산을 지켜주고 선위하겠다는 약속이 담긴 문서를 찾아내는 것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박상궁(차미경)이 보관했던 휘항에 생겨진 봉(峯)이라는 글자와 혜빈 자가(강말금)의 가락지에 새겨진 오(五) 그리고 덕임의 어깨에 새겨져 있던 명(明)이라는 글자를 풀어 금등지사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그건 아마도 대전의 용상에 있는 달과 해 그림 사이에 놓여진 봉우리 그림을 가리키는 건 아닐까 싶다.

     

    이산이 계속 처하게 되는 위기 속에서 성덕임은 자신의 능력(이야기 능력, 수수께끼를 푸는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며 <옷소매 붉은 끝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성덕임이라는 과거 사극 속 궁녀들과는 너무나 다른 여성 캐릭터를 세움으로써 가능해진 일이다. 이산을 사랑하지만, 그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여성 캐릭터. 그래서 훨씬 더 자기 주도적인 인물 덕분에 <옷소매 붉은 끝동>은 사극이지만 현재적인 공감대를 강력한 몰입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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