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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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드라마

정우성이 선택한 멜로, 말로는 다 못할 사랑의 시작

D.H.Jung 2023. 12. 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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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말해줘’, 정우성이 11년만에 선택한 멜로 뭐가 다를까

사랑한다고 말해줘

산 속 외딴 곳에 있는 집. 정적 속에 산새 몇 마리의 지저귐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그 곳에 고독의 표상처럼 서 있는 그 집을 차진우(정우성)는 사진에 담는다. 마치 그렇게 침묵과 고요 속에 외롭게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담아내듯이.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이 남자의 특별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 

 

제주공항에 도착해 바닷가 촬영장을 찾은 정모은(신현빈)은 ‘여자4번’으로 불리는 무명배우다. 스튜어디스였지만 배우의 꿈을 시작한 그 선택은 쉽지 않다. 연기가 어색하다며 제주까지 온 그녀를 감독은 다른 배우로 바꾸겠단다. 그러면서 그녀가 배역을 위해 고심해서 산 스카프는 마음에 든다며 팔라고 한다. 정모은이 마주하고 있는 세상은 무례한 말들로 가득하다. 

 

그 바닷가를 찾았다가 우연히 정모은을 멀리서 보게된 차진우는 그녀를 사진에 담는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차진우의 시선에는,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들어온다. 그래서 무슨 사연인지 제주를 찾아 하염없이 바다만 보고 앉아 있다 결국 죽어버린 한 남자를 벽화로 남긴다. 그 남자는 그렇게 외로운 모습 그대로 벽화 속에 남았다. 그 벽화를 보게 된 정모은은 거기에 포스트잇으로 메모를 남긴다. 

 

말이 있는 세계와 말이 없는 세계. 말로 하는 소통이 더 잘 될 것 같고, 침묵은 불통일 것 같지만 실은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정모은이 마주한 세계가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세계가 무심코 던지는 무례한 말들 속에서 상처받는다. 반면, 차진우가 그린 말없는 고요의 벽화를 보며 알 수 없는 위로 같은 걸 받는다. 갑자기 벌어진 화재 사고 속에서 저마다 빠져나가라며 아우성을 치지만, 정모은은 그런 ‘말’ 대신 듣지 못하는 차진우를 구해 함께 나가야 한다는 ‘마음’에 발길을 돌린다.  

 

정모은이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차진우가 전하는 감사의 표시는 말이 아니라 스케치북에 한 자씩 눌러쓴 글귀라 더 마음을 움직인다.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도와주셔서 그리고 무사해주셔서.’ 듣지 못하는 이와 듣는 이가 서로 다른 세계에 놓여 있다는 건 먼저 마음이 움직이면 그리 불편한 일만은 아니다. 꼬르륵 소리에 배를 만지자, 이를 오해해 ‘아파요’라고 적은 차진우의 글에 정모은이 ‘고파요’라고 정정해줌으로써 피어나는 웃음처럼 말이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씩 열리면서 이들은 상대가 살고 있는 다른 세계를 알고 싶어진다. 식당이 모두 문을 닫아 차진우는 자신의 캠핑카로 정모은을 초대한다. 함께 라면을 끓여먹는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자 비를 피해 앉은 정모은은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는데, 그 와중에도 차분한 차진우를 보고는 자신도 귀를 막아 본다. 그가 사는 세계가 궁금한 것. 그녀는 나직이 말한다. “소리없이 내리는 비도 나쁘지 않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청각 장애를 가진 차진우와 배우로서의 꿈을 키워가는 정모은을 통해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이들이 과연 서로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고 또 사랑할 수 있는가를 멜로라는 장르적 틀을 통해 묻는다. 그런데 여기에는 무수한 가시 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래서 무시로 상처받고 상처주는 세상이 밑그림으로 깔려 있다. 정모은이 차진우가 마주하고 있는 ‘침묵과 고요의 세계’를 궁금해하게 되는 이유다. 물론 그건 차진우에겐 고독이겠지만. 

 

서울로 돌아온 차진우는 한 아트센터에서 청각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을 수어로 하지만 이들의 손으로 하는 대화는 화기애애하다. 반면 배역 캐스팅을 위해 심사위원들 앞에서 연기를 선보인 정모은은 가시 같은 말들에 상처받는다. “열심히 한 티가 나요. 근데 우리가 연기 보자고 했지 암기 실력 보자고 했나 열심히 하는 사람은 뭐랄까 난 재미가 없어.” 그러자 정모은은 “제가 부족할 수는 있지만 열심히 한 게 잘못 된 건가요?”하고 되묻는다. 하지만 결과로만 판단하는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에서 성희롱에 가까운 말까지 듣게 된다. “아니 승무원 출신이면 좀 타이트한 유니폼이라도 좀 입고 와 가지고 어필이라도 좀 하지 이게 뭐예요.” 

 

‘거리의 이방인 옆에 잠시 머물다 갑니다. 부디 지금은 외롭지 않길.’ 제주 어느 바닷가에서 외롭게 죽어간 사내를 그린 벽화에 정모은은 그런 포스트잇을 남겼다. 그 포스트잇에 화답하듯 차진우는 그녀의 그림을 그려 ‘배우님께’라는 글귀를 남긴 스케치북을 건넸다. 정모은은 그 글귀를 떠올리며 혼자 생각한다. ‘나, 배우라는 말 처음 들어봐요. 보조출연, 단역, 엑스트라 뭐 그렇게들 말하니까.’ 말보다 소리없이 마음을 담은 글 하나가 더 마음을 움직인다. 

 

정우성이 11년만에 하는 멜로는 이처럼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사랑 혹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말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에서 살아왔지만, 이제 그 서로 다른 세계를 향해 마음이 움직인다. 우연히 서울 한 복판에서 만난 자리에서 여자는 ‘열심히’ 연습한 수어로 남자의 세계를 향해 들어온다. 남자는 침묵 속에서 말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히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엔 노력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를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다고 준비한 말을 천천히 한 뒤엔 웃었다. 가벼운 인사 몇 마디에 무슨 생각이 그리도 많냐는 듯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그건  소리없는 사랑의 시작이었다.(사진:E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