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소재 클래식, 우리 식으로 풀어내
현대극이 사극을 넘었다. ‘주몽’이후, 현대극과의 경쟁에서 연전연승하던 사극불패 신화가 깨졌다. 그것도 고구려 사극의 연장선상에 있는 대작 ‘바람의 나라’와 퓨전사극의 새로운 역사를 열 ‘바람의 화원’과 동시에 맞붙은 결과이다.
물론 ‘바람의 화원’은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베토벤 바이러스’의 완승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본래 초반부터 강세를 보이기 마련인 사극의 시청률 경향을 봤을 때, 이제 11%대를 넘기고 있는 ‘바람의 화원’이 17%대를 향해 가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상승곡선을 꺾기는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시청률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현대극의 부활을 알리는 하나의 지표로서 ‘베토벤 바이러스’의 가치를 논하기 위해 시청률을 거론했을 뿐이다. 작품의 완성도만을 두고봐도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는 그동안 침체를 겪었던 현대극의 부활을 예고하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틀에 박힌 삼각관계나 신데렐라 이야기, 늘 있던 재벌가 스토리 같은 옛 드라마의 흔적을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거의 발견하기가 힘들다. 소재 자체가 드라마로서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클래식을 다루고 있고, 스토리 또한 지금껏 봐왔던 여느 드라마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사실 이 작품은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일본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만일 그 정도에 머물렀다면 이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독특한 ‘베토벤 바이러스’만의 클래식에 대한 재해석이 들어가 있다. 클래식이라 하면 떠오르는 어딘지 상류층의 문화 같은 이미지의 편견을 이 드라마는 보기 좋게 깨고 있다.
그것은 이 ‘베토벤 바이러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음대를 졸업했지만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로 “다음에, 다음에”하다가 어느덧 아줌마가 되어버린 정희연(송옥숙). 누군가 “아줌마!”하고 부를 때 그녀는 “제 이름은 정희연이에요.”하고 말한다. 익명의 아줌마보다는 정희연이라는 첼리스트로서의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년 간의 공백을 안고 나간 자리에서 악명 높은 지휘자 강마에(김명민)는 그녀를 “똥 덩어리”라 부르며 인간적인 모멸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그 똥 덩어리는 자신의 한계를 넘고 정희연이라는 자기 이름에 책임을 지는 연주를 해낸다. 똥 덩어리로 살아왔던 그녀가 사실은 자신이 금 덩어리였다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이다.
오케스트라가 하고 싶어 모인 인물들은 대개가 정희연 같은 보통 사람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공무원으로 살아가며 귀가 먹기 전에 오케스트라를 한 번 더 하고 싶은 두루미(이지아), 서울시향을 정년퇴직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연주 기회를 얻지 못하는 김갑용(이순재), 밤무대 연주자 배용기(박철민), 재능은 있어도 돈이 없어 음악공부를 못하는 하이든(쥬니) 등등. 강마에 식으로 표현한다면 클래식이라는 고급스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이렇게 보통 사람의 눈높이로 인물들을 배치하고, 그들 앞에 우리가 흔히 클래식이라면 느끼는 위압적인 선입견으로서의 강마에를 세워놓은 이 드라마는 결국 이들이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그 길을 향해 달려간다. 바로 이 부분에서 시청자들은 자신의 잊고 있던 꿈을 이들 보통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다시 발견하는 공감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클래식이라는 음악 자체가 갖는 새로운 감동의 오브제가 그 경험을 증폭시키고, 기성배우보다는 신인들(혹은 드라마에 한동안 보지 못했던)이 대거 포진된 신선한 연기자들의 연기가 드라마라는 악기를 신명나게 연주해준다. 무엇보다 김명민이라는 연기자의 힘은 다른 연기자들의 연기를 빨아들일 만큼 강력한 블랙홀로서 드라마 전체를 이끌어간다.
사실상 사극의 성장은 퓨전사극이라는 새로운 틀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지만, 동시에 현대극, 그 중에서도 트렌디 드라마의 몰락과도 연관이 있다. 하지만 ‘베토벤 바이러스’는 현대극이 늘 받아왔던 이 선입견, 즉 트렌디의 그림자를 거의 벗겨내고 있다. 작년 현대극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커피 프린스 1호점’에 이어 ‘베토벤 바이러스’가 어디까지 현대극의 지평을 넓혀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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