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현장에서의 재미는 의미가 담보되어야 한다
‘체험 삶의 현장’이 2001년부터 무려 7년이 넘게 장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 첫 번째는 이 프로그램만이 갖는 독특한 재미에 있다. ‘삶의 현장’은 여행지와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그것은 시골이 될 수도 있고 도시가 될 수도 있다. 즉 장소를 불문하고 땀흘리는 일터가 바로 그 현장이 된다. 예를 들면 병어잡이를 하러 배를 타는 어부들의 현장이나, 동물원 사육사들의 현장 같은 것이다.
‘체험 삶의 현장’이 장수할 수 있는 이유
이런 체험은 일반인들이 여행 같은 것을 통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를 대리하여 체험하게 되는 출연자들 역시 마찬가지. 시청자들이 흔히 체험할 수 있는 보통 여행지와 체험하기 어려운 삶의 현장 그 중간을 이어주는 그 자리에 ‘체험 삶의 현장’만이 가진 재미가 존재한다. 게다가 그 체험을 하기 위해 마음껏 망가지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그 재미를 배가시킨다.
하지만 이런 재미만을 추구했다면 그 오랜 시간동안 프로그램이 장수할 수 있었을까. 만일 그랬다면 혹자들은 일터에서 민폐만 끼치는 이 프로그램을 외면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진짜 장수할 수 있었던 힘은 그 공공성에 있다. 체험을 통해 얻은 일당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는 시스템이 있었기에 그 민폐(?)는 용인될 수 있었던 것. 이처럼 특정 지역을 프로그램 속에 넣는 과정에는 그 대민 접촉이 갖는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노력이 존재한다. 재미와 민폐의 차이는 아주 작은 것에서 비롯되지만 그 파장은 엄청나다.
‘무한도전’에 의해 시도되고 ‘1박2일’에 의해 정착된 여행 버라이어티는 이제 ‘패밀리가 떴다’로 완성되어가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이들 여행 버라이어티는 점점 재미에 더 열을 쏟고 있다. 오락 프로그램이니 재미에 대한 추구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대민 접촉이 일어날 수 있는 이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이 재미에만 몰두하는 건 여러모로 그 생명을 단축시킬 우려가 있다. 촬영은 그 촬영지의 주민들에게는 환영받기도 하면서 동시에 비난받기도 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버라이어티, 그 재미와 민폐 사이
여행 버라이어티로서 오락 프로그램이 추구해야할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그 여행지 즉 촬영지의 민폐를 상쇄하는 방법으로 ‘1박2일’이 초반부에 했던 것들은 ‘오지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었다. 즉 독도나 가거도 같은 오지에 사는 분들을 조명해주고 현지인들에 대해 따뜻한 정을 나누는 이벤트를 벌이는 식이다. 이것은 민폐를 넘어서 어떤 감동으로까지 이어줄 수 있는 이 프로그램만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백두산을 가던 에피소드 같은 거대담론에서부터 ‘1박2일’이 가진 소박한 느낌이 점점 지워졌고, 또한 캐릭터가 정착되면서 이야기가 자꾸 캐릭터에 매몰되는 형태를 띄게 되었다. 즉 장소가 주는 의미가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그 상황에서도 ‘1박2일’은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대민 접촉을 계속해서 시도했다. 프로그램에 대한 공공성에서 비롯되는 공감을 바탕으로 깔고 있던 ‘1박2일’로서는 그것이 많이 상쇄된 이 시점에서의 대민 접촉은 오히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터진 것이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한편 ‘패밀리가 떴다’는 애초부터 ‘1박2일’같은 공공성 자체가 희박했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여행 보내드리고 그 집을 하루 봐주는 것이 어쩌면 공공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비춰질 수는 있지만 사실상 ‘패밀리가 떴다’는 장소를 빌려 하룻밤 재미있게 노는 프로그램이다. 자칫 민폐가 될 수 있는 이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패밀리가 떴다’가 하는 것은 대민 접촉을 되도록 피하는 것이다.
거의 장소로 정해진 시골집 안에서 게임을 벌이고, 또 개울이나 논두렁에 가서도 거의 현지인들과의 접촉을 통한 재미는 끌어내지 않는다. 추석 특집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호박죽을 나눠주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 외에 그다지 현지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집 주인 어르신들을 초반부에 만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보는 것이 거의 유일한 대민 접촉이다. 대신 ‘패밀리가 떴다’는 자신들 패밀리 내부의 관계와 접촉이 주를 이룬다.
일터에서 하는 게임, 괜찮을까
하지만 ‘패밀리가 떴다’가 하는 체험은 저 ‘체험 삶의 현장’의 체험과 유사한 점이 많다. 해넘이 마을의 갯벌로 나가 대나리 그물로 하는 물고기잡이 체험 같은 것은 일반인들이 경험하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그것은 여행지라기보다는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짧은 체험을 해보고 결국 오리발을 발에 끼고 본래 모습인 게임을 하는 그 갯벌은 현지인들에게는 일터가 되는 셈이다. 그 노동의 현장에 있는 패밀리들은 노동과는 유리되어 있다.
그 특별한 체험은 저 ‘체험 삶의 현장’이 그러한 것처럼 일반인들이 경험할 수 없는 재미를 주지만 이것은 관점 자체가 현지인이 아닌 외부인에 맞춰져 있다는 약점이 있다. 그들이 연예인이고 또 방송 촬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빼놓고 같은 상황을 일반인이 했다고 생각해보면 한 쪽에서 땀흘리며 일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게임을 하고 있는 이 상황이 그다지 현지인들에게 좋게 보일 리는 없다.
흔히들 버라이어티쇼 같은 오락 프로그램을 가지고 의미 운운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오락 프로그램이 의미를 찾지 못하면 그 재미는 타인의 피해를 대가로 치르는 경우가 생긴다. 현지인들의 생계가 달린 삶의 현장에 의미는 없이 재미만을 찾아가는 여행은, 마치 그런 삶의 현장을 밀어내고 그 위에 세워지는 도시인들의 현란한 재미공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지금의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이 장수하기 위해서는 재미는 물론이고 그 의미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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