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가 된 '타짜'의 실패가 말해주는 것
'타짜'가 드라마화 된다고 했을 때, 흔히들 '흥행 보증수표'란 말을 인용해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가 시작되자 이 기대감은 더 큰 실망감으로 돌아왔다. 보증수표가 부도수표가 된 것. 허영만의 만화로 이미 세간의 이목을 받았고,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흥행에 성공한 '타짜'는 왜 드라마에 와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걸까.
성공한 원작의 리메이크 작품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컨텐츠를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타짜'라는 컨텐츠의 핵심적인 차별점은 이것이 기존 무수히 많이 쏟아져 나왔던 도박 컨텐츠와는 결을 달리한다는 점이다. 도박 컨텐츠가 주로 도박이라는 게임이 주는 긴박감을 중심에 놓고 그 욕망을 보는 이에게 전이시킨다면, '타짜'는 도박 그 아래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속고 속이는 인간군상에 더 집중한다. '타짜'라는 용어는 단지 도박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누군가를 도박기술로 속이는 자라는 의미가 더 크다.
'타짜', 무협지의 구조를 선택하다
그러나 드라마 '타짜'가 재해석한 것은 '도박(기술)을 통한 복수극'이다. 드라마 '타짜'를 컨텐츠의 내용과 상관없이 구조로만 분석해보면 거의 무협지의 구조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한 선악구도가 있고, 그 선악의 꼭대기는 대스승(평경장)이, 그리고 그 아래 동문수학하던 두 인물(작두와 아귀)이 있다. 엄청난 기술을 전수받았지만 둘은 선과 악으로 나뉘어 싸우게 되고 그 사이에 작두의 친구인 고니(장혁)의 아버지가 죽음을 당한다.
아버지의 원수이자 작두의 라이벌인 아귀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니는 대스승을 찾아가 기술을 전수받는다. 대스승의 딸은 고니를 좋아하게 되고,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여인 난숙(한예슬)은 아귀 밑에 잡혀 있다가 고니를 다시 만나 사랑을 이어간다. 그리고 고니와 친구 영민(김민준) 역시 작두와 아귀처럼 친구에서 선과 악으로 갈라져 싸우게 된다. 여기서 '타짜'의 기술을 무공으로 바꾸면 이 구조는 무협지의 그것과 똑같아지게 된다.
원작 '타짜'의 메타적 관점에서 내려다 본 도박의 세계가 이 무협지의 구조로 들어가게 되면 스토리는 단순화되고 이야기의 울림은 사라진다. 선도 없고 악도 없는 속고 속이는 타짜들의 세계란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는 그 자체로 우리네 삶의 축소판으로 읽혀진다. 도박이라는 소재가 갖고 있는 태생적인 매력을 따라가다 보면 뒤통수를 치는 삶의 단면을 거기서 발견하게 되는 것, 이것이 원작 '타짜'가 가진 힘이다.
아무리 좋은 패도 선택을 잘못하면 이길 수 없다
영화 '타짜'는 바로 이 적도 아군도 없는 무자비한 세계를 잘 구현해냈다. 아귀는 보는 이들의 소름을 절로 돋게 만들었고, 정마담은 어디로 붙을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속내를 갖고 있었다. 고니 역시 선악 개념이나 복수의 개념을 넘어서 이 도박이라는 게임 위에서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가에 충실한 욕망의 대변자였다. 하지만 드라마 '타짜'는 이 무자비한 세계를 선과 악으로 딱 갈라서 정리를 해버린다. 선악구도는 복수극을 지향하게 만든다. 누가 누구를 복수할 것인가. 누가 잘한 것이고 누가 잘못한 것인가. 타짜 아니 '타짜들이 우글대는 우리네 현실 세계' 위에서 그 구분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드라마 '타짜'의 제작진들은 이 매력적인 패를 들고도 왜 이런 패착을 한 것일까. 영화와는 다른 해석을 하려 한 것일까. 혹 TV를 통해 방영되는 드라마라는 장르적 한계가 굳이 권선징악이라는 단순구조를 요구했던 것일까. 좋은 재료와 훌륭한 연기자들을 가져다놓고도 만족스런 결과를 내지 못한 데는, 무엇보다도 기획과 대본에서 치밀하지 못했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그 명쾌한 선악구도에 빠져들던 무협지의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알면 알수록 더 미궁에 빠져드는 복합적인 구도들에 매료되는 리얼리티의 시대다. 무협지 구조를 차용한 '타짜'의 실패가 시사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원작이라도 흥행의 보증수표는 없다는 것이다. 잘못된 선택(재해석)은 실패를 부른다. 이것은 우리네 경쟁관계의 축소판으로 해석되는 진짜 '타짜'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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