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까지 사로잡는 ‘벼랑 위의 포뇨’, ‘볼트’
이제 애니메이션을 애들 것으로 치부하던 시대는 지났다. 아이들에게 연말연시 영화 보여주겠다고 가서는 제가 신나서 웃고 또 감동 받아 우는 모습은 더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최근 개봉한 두 편의 애니메이션, ‘벼랑 위의 포뇨’와 ‘볼트’. 무엇이 어른들까지 웃기고 울렸을까.
물고기 포뇨, 인어 포뇨, 사람인 포뇨도 다 좋아요!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환호하게 만드는 ‘벼랑 위의 포뇨’. 아이들은 그 귀여운 물고기소녀 포뇨와 소년 소스케의 얼굴 표정, 몸짓, 말투 하나하나에 매료된다. 이것은 마치 아이들이 처음으로 작은 물고기를 어항에 키웠을 때, 가지게 되는 수많은 감정들, 즉 호기심과 애착 그리고 책임감 같은 것을 이 애니메이션이 포뇨라는 캐릭터로 구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세계 속에서 물고기는 때론 사람처럼 말을 하고, 때론 사람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이것은 미지의 세계가 많은 아이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의 세계이자, 아직까지 이해관계 자체가 없는 순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보고 어른들이 난감해 할 때, 아이들은 그것을 그대로 껴안는다. 물고기인 포뇨가 지상으로 등장할 때, 휘몰아치는 파도는 어른들에게는 두려움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설렘이기도 하다. 포뇨가 소스케에게 달려가는 그 설렘. 특별한 말도 필요 없이 달려가 안기는 것만으로 충분한.
소스케가 좋아 무조건 육지로 달려나온 포뇨와, 물고기든, 인어든,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저 포뇨가 좋다고 말하는 소스케. 그 순수의 세계는 그래서 지나치게 이해관계로만 얽혀 살아가는 어른들의 가슴을 울린다. 이것은 한번 더 생각해보면 인종과 국가와 종교와 언어 같은 것으로 서로를 구획하며 심지어 전쟁까지 일삼는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정중한 경고이기도 하다. 하물며 아이들도 이럴진대, 다 큰 어른이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는 경고. 그것이 또 한번 아프게 어른들의 가슴을 울리게 만든다.
내 슈퍼 멍멍으로 널 박살내주마!
‘볼트’는 합병된 디즈니-픽사의 저력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일단 아이들이 환호할만한 애완견, 그것도 초능력으로 악당들을 물리치는 슈퍼견이 주인공이니 다소 복잡할 수 있는 스토리도 단박에 잡아당기는 흡입력이 만들어진다. 영화 초반 마치 매트릭스를 연상케 하는 슈퍼견 볼트와 그 주인 페니가 적들과 벌이는 한판 대결은 아이들용 애니메이션이라지만 어른들까지 짜릿한 액션의 쾌감을 느끼게 해준다. 볼트의 슈퍼 멍멍(폼을 잡고 멍멍 짖는 것) 하나면 수백 대의 자동차와 헬기가 마치 폭풍에 휘말린 듯 날아가 버리니 말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그저 개가 주인공인 슈퍼히어로 영화를 따라가지 않는다. 슈퍼견 볼트가 사실은 영화 주인공이며, 영화의 리얼리티르 살리기 위해 영화 세트장을 한번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트루먼쇼’의 아이들 버전으로 바뀐다. 이로써 영화는 환상 속의 삶에서 실제의 삶으로 내동댕이쳐진 볼트가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조금은 우울한 일이긴 하지만, 이것은 어린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가졌던 환상의 세계가 조금씩 깨져나가면서 현실의 세계로 안착하는 그 순간을 포착한다. 하늘을 난다거나, 엄청난 속도로 달린다거나, 소리 한 번 지르는 것으로 모든 것을 날려버리는 슈퍼히어로물들이 여전히 어른들에게도 꿈꾸게 만드는 그 환상의 세계. 하지만 영화는 바로 그 꿈을 꾸고 있어 현실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유쾌함을 내내 유지함으로써 그걸 보는 어른들의 마음까지 울린다. ‘슈퍼멍멍’은 환상일 뿐이지만, 바로 그 슈퍼멍멍 같은 꿈이 있어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이란, 현실의 세계 속에 매몰되어 살고 있던 어른들에게 그 반짝였던 환상과 꿈의 세계를 흐뭇하게 떠올리게 만든다.
애들 영화라고? 근데 왜 웃고 울었을까.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것이 아이들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세상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며 지나쳐왔던 그 아이들 시절의 꿈들이 거기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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