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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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에 쏟아지는 폭발적인 찬사, 왜?

D.H.Jung 2009. 1. 3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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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실종의 시대, 노동의 가치를 말하다

개봉 15일만에 5만 명의 관객을 넘어선 ‘워낭소리’. 독립다큐영화로서 단 7개관 개봉으로 시작한 이 영화가 32개관으로 극장을 늘려가며 관객들의 폭발적인 찬사를 받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항간에는 2007년 10개관 개봉에서 시작해 점점 개봉관을 늘려가며 22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은 ‘원스’ 성공과 비교하며, 그 흥행속도가 오히려 ‘원스’보다 빠르다는 장밋빛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극영화가 아닌 다큐영화로서 ‘워낭소리’가 거두고 있는 이 놀라운 성적은 ‘원스’의 기염을 넘어서는 면이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영화에 이다지도 폭발적인 반응을 만드는 것일까.

사라져 버린 부리는 소, 달라진 소의 실존
‘워낭소리’에서 최원균 할아버지(80)는 이미 노쇠해버린 소를 대체할 젊은 소를 찾기 위해 소 시장을 찾아간다. 할아버지는 사람들에게 “부리는 소 있어?”하고 묻지만 그들은 그런 할아버지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부리는 소’, 즉 일하는 목적으로 기르는 소는 이제 거의 없기 때문이다. 후에 소가 일을 할 수 없게 된 소를 팔기 위해 소 시장에 나온 할아버지가 5백만 원 정도로 소의 가치를 매기자, 모두가 껄껄 웃으며 “그런 가격으론 못 팔아요. 일만 한 소는 고기가 질겨서 못 먹어요.”라고 말한다.

시장에서 소의 가치는 ‘일’이 아니라 고기가 되는 ‘중량’으로 판단되는 이 상황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보여주려는 노동 실종 시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의 달라진 실존이 드러나는 이 대목과 함께 영화는 시종일관 할아버지와 소가 함께 농사짓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남들이 기계로 모를 심고 농약으로 해충을 잡고, 기계로 수확할 때 할아버지는 무모하리 만큼 그 모든 일을 소와 자신의 손으로 해나간다. 말 그대로 ‘소처럼 일하는’ 이들을 보며 이삼순 할머니(77)는 연실 혀를 끌끌 차며 달라진 세상 속에서 여전히 소를 고집하는 농사를 짓는 소를 닮아버린 할아버지와 소를 안타까워한다.

최원균 할아버지의 ‘소를 이용한 농사’는 단지 ‘소’라는 자리에 ‘트랙터’나 ‘농약’ 같은 단어를 단순히 대치하는 것으로 바뀔 수 있는 그런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소를 이용한 농사’란 그 소와 함께 밭을 가는 사람이 있어야 함을 뜻하고, 그 소가 먹을 꼴을 유지하기 위해 농약을 치지 않는 농사를 지어야 함을 의미한다. 소와 함께 지내야할 우사가 있어야 하고, 병이 들면 수의사를 불러 고쳐주기도 해야 하는 그런 농사를 말한다. ‘일하는 소’는 대상이나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사라진 소, 사라진 노동, 사라진 아버지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옆을 할아버지를 태운 수레를 끌고 위태롭게 걸어가는 소, 트랙터가 질주하며 순식간에 일을 해버리는 논 한 옆에서 힘겹게 농사를 짓는 할아버지와 소. 이 풍경을 찾는 일은 의도적으로 그 대상을 찾아 헤맨 이충렬 감독에게도 그다지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전국을 거의 뒤지다시피 해서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들을 찾아냈다는 이 일화는 작금의 사라져버린 일하는 소의 달라진 실존을 증언해준다.

사라진 소가 의미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라진 노동이다. 이제 노동이라고 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 대부분이 되어버린 시대에, 이 일하는 소가 전하는 사라진 노동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이 일하는 소의 죽음과 그 소가 죽기 전에 할아버지에게 선물처럼 남겨놓은 엄청난 양의 노동 앞에 현대인들의 무장해제되는 것은, 약삭빠르고 영리해진 세상 속에서 이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한 소가 전하는 노동의 신성함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신성한 사라진 노동의 끝자락에서 어렴풋이 고개를 드는 얼굴이 바로 우리네 아버지들의 얼굴이다. 그 노동은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들이 해왔으나 이제는 시대에 의해 거세되어 폄하되어버린 과거의 가치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소와 할아버지의 실존을 다룬 이 영화는 우리네 아버지들의 실존이기도 하다. ‘워낭소리’에 쏟아지는 폭발적인 찬사는 불황의 된서리를 맞아 점점 더 영악해지기만 해가는 사회 속에서 바로 이 오래 전 사라져버린 아버지들이 해온 정직한 노동이 전하는 감동에 현대인들의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죽어 사라진 소를 바람이 흔드는 워낭소리를 통해 할아버지가 추억하듯이, 영화관을 나서면서도 귓가에 끊임없이 울리는 ‘워낭소리’가 대중들의 입을 타고 귀로 흘러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