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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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고현정이 코현정이 되기까지

D.H.Jung 2009. 1. 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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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라는 이름의 거추장스런 옷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고현정은 지금까지 이 토크쇼에 출연했던 여타의 게스트들과는 달랐다. 대부분의 게스트들이 독한 무릎팍 도사의 당혹스런 질문에 잔뜩 긴장하고 답변을 준비하는 자세를 보였다면, 고현정은 거의 무방비상태의 허허실실함을 보였다. ‘무릎팍 도사’라는 대결구도의 토크쇼에서 강호동이 날리는 펀치에 대해 고현정은 맞 받아치는 인파이터가 아니라 받아주는 척 피하며 상대방의 힘을 빼다가 어느 순간에는 벌처럼 날카로운 펀치를 날리는 마치 알리 같은 스타일의 토크를 구사했다.

먼저 친구인 이미연이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것에 대해 얘기하면서 고현정은 “짜증나게 예쁘게 나온다”는 표현을 썼다. 어딘지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짜증난다”는 말은 홍상수 감독이 연출한 ‘해변의 여인’에서 그녀가 쏟아냈던 일련의 거친 대사들을 떠올리게 한다. “차가 귀엽네요”라는 말에 “똥차예요”라고 말하고, “키가 크다”는 말에 “잘라버리고 싶어요”라는 말했던 그녀는 그 때부터 이미 자신을 코르셋처럼 옥죄이며 숨막히게 만드는 신비주의를 벗어버리려 작정한 바 있다.

“짜증난다”는 말 한 마디로 기대했던 신비의 탈을 벗어버린 고현정은 스스로 예능 프로그램을 찾아서 보며, “저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쐬기를 박듯, “저 웃겨요”하고 스스로를 우스운 사람이라 표현했다. 재미있는 것은 중간에 강호동이 고현정하면 떠오르는 인물로 ‘모래시계’의 최민수를 거론했을 때 그녀가 보여준 모습이다. 그녀는 추운 겨울 촬영에서 눈물과 함께 흐르던 콧물을 최민수가 닦아주었다고 말하면서 그에게 화면을 보면서 “좀 쉽게 가요”라고 말했다.

이 말은 어찌 보면 신비주의를 본의 아니게 갖게 된 두 스타의 다른 두 길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은 여전히 카리스마의 지존으로 이미지 메이킹되어 여전히 그 이미지 속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최민수에게, 자신이 주목받은 건 결혼과 이혼이라고 스스로 밝히듯 그냥 대중들의 시선을 인정해버리는 그 허허실실함이 어쩌면 해법이 될 것이라고 전하는 조언이 아닐까.

콧물 얘기는 술자리 습관이라고 밝힌 ‘벽 타기(?)’로 이어졌고, ‘무릎팍 도사’는 고현정의 탈신비주의를 향한 안간힘을 돕기라도 하겠다는 듯, 연실 코를 푸는 고현정이란 이미지를 끄집어내, “더러워서 방송 못하겠어요”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던지는 과감성을 보였다. 대중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기대 이상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고현정에게 그것은 오히려 그토록 무릎팍 도사를 통해 듣기를 원하던 말이었을 지도 모른다.

조인성, 천정명과 난 스캔들 이야기에서도 그녀는 달변이었다. 자신이 “결혼하자”고 했다는 폭탄 발언을 던진 후에, 그 말을 농담조로 순식간에 바꾸었다. 그리고 조인성은 그 말에 “난 쉬운 여자 싫어요”라고 답했고, 천정명은 “아빠한테 물어봐야 되요”라고 말했다는 걸 덧부여 그들에 대한 배려 또한 잊지 않았다.

고현정은 이제 더 능수능란해졌고, 여유가 생긴 모습으로 돌아왔다. 젊은 시절의 우아하고 청순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해변의 여인’의 깨는 여자를 거쳐 ‘여우야 뭐하니’의 노처녀, ‘히트’의 맹렬 형사로 자신의 고정된 이미지를 깨는 작업을 해왔다. ‘무릎팍 도사’의 출연은 그 작업이 이제 어느 정도는 일단락되었다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고현정에서 코현정으로 다가온 그녀. 단지 스타라는 버거운 이미지를 벗어 던진 그녀의 연기자로서의 새 길이 자못 기대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