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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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와 신인 개그맨들

D.H.Jung 2009. 2. 2.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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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신인발굴시스템, 문제는 없나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있다. 동명의 책을 통해 경제학자 우석훈이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88만원에서 119만원 사이의 임금을 받는 20대가 지금보다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 데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화려하게만 보이는 대중문화 속이라고 해서 이 ‘88만원 세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개그맨 지망생들, 또 개그맨이 되어서도 끝없이 경쟁적인 시스템 속에 노출되어야 하는 공채 개그맨들이 그들이다.

개그 지망생들은 도대체 얼마를 벌까
개그맨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겪어야 할까. 다른 방법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대학로 소극장 공연을 통해 경력을 쌓으면서, 공채 개그맨 시험에 도전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면 대학로 소극장에서 일하는 개그 지망생들은 얼마를 받을까. 공채로 뽑힌 개그맨들의 얘기를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딱히 정해진 금액이 없다고 한다. 배우는 입장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대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용돈을 주는 식이라고 한다. 대학로의 무대에 서는 신인 연극배우들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분명한 노동에 대해 용돈이라도 주는 것에 감지덕지해야 하는 그 상황이 정당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 노동자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의 입장에서 일했던 개그 지망생들은 바늘구멍 뚫기만큼 어렵다는 공채 개그맨에 합격하는 순간, 숨통이 그나마 트인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얼마를 받기에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일까. ‘개그 콘서트’의 경우 등급표라는 것이 있어서 회당 30만원에서 150만원까지를 받는데, 처음 시작하는 신인 개그맨은 30만원씩을 받는다. 이 프로그램에서 최고액인 150만원을 받는 개그맨은 세 명이라고 하며, 전체 평균은 중간 선인 70만원 선이라고 한다. 한 달에 네 번 출연한다면 회당 70만원을 받는 개그맨은 280만원 정도를 매달 버는 셈이니 괜찮은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하는 신인 개그맨은 월 120만원 정도로 상황은 여전히 조악한 편이다. 그런데 이것조차 숨통이 트일 정도라고 하니 공채가 되기 전, 이들의 상황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힘겨운 안정적인 시스템으로의 안착
잘나간다는 ‘개콘’이 이 정도니 타 방송사의 경우는 오죽할까. 이 신인 개그맨들은 조악한 벌이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꿈을 위해 아이디어 회의에 대본 연습으로 밤을 꼬박 세우기 일쑤다. 게다가 이들은 2년 계약직이다. 물론 계약이 끝나고도 특채의 형태로 남아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인지도를 확보한 경우에 한할 것이다. 이 불안하기 그지없는 신인 개그맨들의 상황의 문제는 이 살얼음판에서 적응한다고 해도, 그 생명이 그다지 길지 않다는 점이다. 무대 개그 속에 몇 년 정도만 있다보면 새로운 젊은 개그맨들에게 밀리게 된다. 즉 타 분야로 나가야 하는데, 매니지먼트사와의 계약은 따라서 개그맨들로서는 무대 개그의 틀을 벗어나 안정적인 시스템(토크쇼나 버라이어티쇼 같은)으로 들어가는 열쇠다.

하지만 작금의 토크쇼나 버라이어티쇼는 개그맨들보다는 가수나 배우들을 더 중용하는 추세다. 현재 무대개그를 통해 안정적인 시스템에 적응한 개그맨들은 이수근, 신봉선, 유세윤, 황현희 정도가 될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무대 개그의 틀을 벗어나 현재 쇼의 대세로 일컬어지는 토크쇼나 버라이어티쇼로 들어갔을 때, 얼마나 잘 적응해내느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대 개그에서 적응된 콩트 형태의 대본 개그는, 순발력을 강조하는 토크쇼나 버라이어티쇼에서는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금의 잘 나가는 이수근을 만든 것은, 그가 버라이어티쇼에 적응하는 1년 동안을 묵묵히 기다려준 ‘1박2일’의 공이 크다. 그만큼 새로운 적응기간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과연 ‘무대개그’가 현재 유일한 신인 개그맨 발굴시스템으로 적합한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88만원 세대의 문제는 그 용어적인 88만원이라는 실제적인 수치가 갖는 절박함보다, 그 젊은 새 일꾼들의 사회 적응 시스템이 가진 불안정함에 있다. 조악한 대우에도 기회는 없고, 기회를 얻는다 해도 안정적인 시스템에 안착하지 못하는 이 상황은 여러 모로 신인보다는 기성인을 기용해 좀더 안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려는 추세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불황의 상황에 그 이유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좀더 미래를 생각한다면 많은 장점을 가진 ‘무대개그’ 신인발굴시스템을 보완해줄 또 다른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