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우’ 의식이 드라마를 망친다
‘무릎팍 도사’의 신년 첫 게스트로 출연한 이순재는 우리네 드라마의 산 증인답게 거침없이 우리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75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롱런 비결로 그는 “특별대우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고, ‘거침없이 하이킥’을 찍던 시절에 베테랑 연기자이면서도 나문희와 늦게까지 대사의 톤을 맞췄던 일들을 회고하며, 각자 밴을 따로 타고 와서는 대사도 맞춰보지 않고 연기를 하고 또 끝나면 먼저 내빼버리는 작금의 젊은 연기자들을 꼬집었다. 그가 한 감동적이기까지 한 몇 마디는 그러나 그저 감동으로만 머물기에는 현 우리 드라마가 처한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 크다.
제작사와 배우의 특별대우
이순재는 ‘이산’ 촬영 당시 통상 저녁 7시부터 시작되는 스케줄로 밤샘촬영을 하면서도 특별대우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작년 드라마 제작사 협회가 박신양 제재를 통해 불거져 나왔던, ‘쩐의 전쟁’ 번외편 촬영에 대한 박신양의 요구조건들과는 상반되는 이야기다. 박신양은 당시 시간을 나눠놓고 밤 촬영이 될 때는 프리미엄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배우의 최상 컨디션을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그 엄청난 프리미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본래 박신양이 늘 주장하는 배우가 가져야 하는 최상의 조건에 대한 요구사항과 제작사들과는 늘 마찰이 있어왔던 게 사실. 드라마 제작사 협회의 박신양 제재는 그저 현 드라마의 침체가 고액 출연료를 받는 몇몇 배우들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 제작사 협회의 내부문건에서 드러난 한류스타들에 대한 ‘특별대우’를 보면 이러한 박신양과의 불편한 관계와 한류스타가 아닌 점 등이 작용했다는 혐의를 지우기는 어려울 듯 보인다. 결국 이 특별대우의 문제는 어느 한 쪽의 문제가 아니라 배우와 제작사가 공조한 것이란 점이다.
특별대우 의식이 망치는 드라마 팀웍
이순재는 “대사도 맞춰보지 않고 촬영하고 끝나면 먼저 내빼버리는” 젊은 연기자들을 나무라면서 “드라마는 팀웍”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작금에 벌어진 ‘에덴의 동쪽’ 이다해 하차의 문제를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이다해 스스로 이 문제는 송승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증언했지만, 지금도 ‘송승헌을 위한 드라마’라는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이동철(송승헌)이란 캐릭터를 위해 연기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다해 하차는 이렇게 한 인물에 집중된 드라마에서 불거져 나온 문제의 하나다.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의 변화는 연기자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 문제 역시 이순재가 언급한 ‘특별대우’의 문제로 연결된다. 배우가 요구하고 제작사가 용인하는 이 특별대우 속에서 드라마 제작의 팀웍은 만들어지기가 어렵다. 이처럼 팀웍을 깨는 특별대우의 문제는 함께 일하는 배우들을 맥 빠지게 만들기도 하지만 또한 작품 자체를 망가뜨리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밀어주기식 시상식의 문제
한편 이순재는 그토록 오랜 세월 우리 드라마의 중심에 있었으면서도 대상 한 번 타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토로하기보다는 “자신은 이미 작품을 통해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해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우리 드라마계의 기둥이랄 수 있는 이순재가 연기대상 하나를 타지 못한 현실은 작년 연말 연기대상에서 벌어진 '에덴의 동쪽' 밀어주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또 다른 특별대우의 시상식 버전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김명민과 함께 송승헌을 공동수상자로 넣은 것에 대해서 한류스타에 대한 특별대우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드라마 제작사 협회가 문건을 통해 보여준 한류스타에 프리미엄을 허용하는 상황은 그 시상식 대상의 공동수상 장면이 그대로 재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건에 따르면 김명민은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프리미엄을 요구할 수 없는 반면, 송승헌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묵인하고 있다. 이순재의 대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한 치의 아쉬움도 없다”는 말은 거꾸로 시상식의 무의미함을 의미한 것처럼 들린다.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이순재의 말들은 이처럼 현재 우리네 드라마가 처한 문제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한류의 부상 이후에 드러난 특별대우로 생겨난 거품의 문제다. 이 특별대우는 그러나 배우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그것을 허용한 제작사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순재의 일침은 작금의 드라마 종사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옛글들 > 명랑TV'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심만만2’, 재탕 아닌 진화로 남으려면 (0) | 2009.01.20 |
---|---|
SBS 예능, 가족 코드에 거는 이유 (0) | 2009.01.19 |
‘...뿐이고’ 세상을 고발합니다 (0) | 2009.01.12 |
바늘방석 시대, 멍석 깔아주는 ‘해피투게더’ (0) | 2009.01.09 |
장동건, 박중훈의 시대, 박찬호, 강호동의 시대 (1) | 2009.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