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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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미완의‘카인과 아벨’, 명연기가 채웠다

D.H.Jung 2009. 4. 2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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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과 아벨’의 명연기, 아쉬운 스토리

‘카인과 아벨’이 다루는 장르적 소재들은 실로 다양하다. 병원 내에서 의사인 형 이선우(신현준)와 동생 이초인(소지섭)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의드의 새로운 계보를 잇고 있으며, 중국에서부터 국내에 이르기까지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돌아온 이초인의 복수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액션활극과 복수극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이선우와 김서연(채정안), 이초인과 오영지(한지민), 이렇게 네 사람의 관계만 떼어놓고 보면 전형적인 삼각 사각의 트렌디 멜로를 연상시키고, 이초인과 이선우의 대결과정에서는 심지어 공포극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많은 장르적 소재들이 잘 봉합되어 어떤 시너지를 이루었는가 생각해보면 많은 의문이 들게 된다. 너무 많은 익숙한 소재들이 나열되어 있어 어느 한 가지에 오히려 집중을 못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이 드라마에서 기억의 문제는 이초인의 기억상실, 이선우의 뇌종양 재발, 코도마로 병상에 누워있는 이선우의 아버지 이종민(장용) 원장에 이르기까지 실로 중요한 모티브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장르적 재미를 위한 소재에 머문 느낌이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드라마가 지나치게 멜로로 빠져든 혐의가 짙고, 팽팽한 대결구도의 해결과정에 있어서는 너무 밋밋한 인상도 버릴 수 없다. 이초인을 암살하려 쫓아다니던 이선우의 하수인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최대의 악역으로 부상된 최치수(백승현)가 경찰에 허무하게(?) 잡히는 그 순간, 드라마의 힘이 급격히 빠져버린 건 그 때문이다. 이초인이 모든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상황에서 대결구도는 팽팽함을 잃어버렸다. 이 무너진 균형은 심리적으로 이초인의 복수극을 지나친 것으로까지 느껴지게 만든다. 물론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어떤 화해를 이룰 것이 분명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꽤 힘이 있게 진행된 것은 전적으로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다. 너무 많은 장르적 틀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 틀 위에 서 있는 캐릭터들도 그 성격이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각각의 역할들을 보면 그 하나 하나가 절대로 쉽지 않은 연기의 난제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초인은 가장 사랑하던 형에게 버림받는 인물인데다 기억상실까지 겪는 인물이고 게다가 가족이라 생각해온 이들에게 의중을 속이면서 복수극을 펼쳐야 하는 이름처럼 초인적인 연기를 해야 하는 캐릭터다.

이선우 역시 자칫 이해될 수 없는 사랑하던 동생을 사지로 몰아가는 욕망의 심리를 납득시켜야 하는 역할이다. 게다가 그는 뇌종양이 재발해 발작을 일으키는 연기도 해내야 한다. 김서연은 동생과 형 사이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인물이고 오영지는 탈북자로서의 강인하면서도 연약한 캐릭터로 특유의 사투리 연기가 난제로 다가오는 인물이다. 이선우의 어머니인 나혜주(김해숙)는 더 납득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녀는 어머니로서도 아내로서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악역을 해야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겨운 캐릭터는 이종민 원장일 것이다. 그는 드라마 내내 병상에 누워 손가락 하나만으로 연기를 해내야 했다.

이처럼 ‘카인과 아벨’의 캐릭터들은 스토리가 만들어놓은 너무 많은 장르적 설정 때문에 모두 어떤 광기의 연기를 보여야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렇지만 놀라운 것은 이 발군의 연기자들이 이 미완의 스토리를 충분히 채워줄 만큼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때론 연기가, 부족한 캐릭터를 살아 움직이게 만들어 결국 드라마 자체를 살리기도 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비중 있는 역할이 아니었던 최치수에 대한 호평은 그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카인과 아벨’, 의욕에 비해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지만 그 아쉬움을 우리는 연기자들에게서 충분히 보상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