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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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종영 수목극, 그 뒤틀린 가족사의 힘

D.H.Jung 2009. 4. 2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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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과 아벨’, ‘미워도 다시 한번’, 가족의 힘 여전

종영한 수목극 ‘카인과 아벨’과 ‘미워도 다시 한번’은 장르적으로 보면 상이한 드라마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그 구조는 비슷하다. 두 드라마는 모두 그 중심에 뒤틀어진 가족사가 있으며, 그 가족 내에서 사랑 받기 위해 대결구도를 벌이는 인물들이 있고, 파국으로 치닫는 가족이 있으며, 결말에 이르러 본래 제자리를 찾아가는 가족이 있다. 결국 이 두 드라마는 스타일과 장르가 달랐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같았던 셈이다. 그것은 우리 드라마의 영원한 주제, 가족이었다.

‘카인과 아벨’의 엇갈린 가족사는 형이 동생을 죽이려 하고, 어머니(물론 친어머니는 아니지만)가 자식을 죽이려 하며, 형이 동생의 여자를 뺏으려 하고, 어머니가 자식의 유산을 가로채려하는 파국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부모 대에서부터 시작된 연원이 자식대로까지 반복되는 이 불운의 가족사는 저 제목이 말해주듯 꽤 오랜 전통(?)을 가진 본원적인 스토리 라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카인과 아벨’이라는 드라마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그 스토리가 가진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종영에 이르러 이 드라마가 전하는 메시지를 정리하면 ‘사랑 받기를 갈구하는 자들을 구원해주는 행복했던 기억’ 정도가 될 것이다. 이 드라마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나혜주(김해숙)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이선우가 결국 비뚤어지게 사랑을 갈구하는 이야기이고, 그 과정에서 사랑을 독차지해온 것처럼 보인 이초인(소지섭)이 사지에 내몰렸다가 살아 돌아와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리는 이야기다. 이초인의 마지막 진술로 보자면 이런 아픔들을 구원해주는 것은 누구나 하나쯤은 있는 ‘행복했던 기억’이 된다.

그간 접어두었던 기억의 문제는 이렇게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하면서 다소 성급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이렇게 제시되는 메시지는 사실 이 드라마가 가진 힘을 설명해주기에는 역부족이다. 메시지를 떼놓고 보면 이 드라마가 보여준 것은 파괴 직전까지 내몰리는 한 불행한 가족사라고 볼 수 있다. 해체되는 가족에 대한 집착, 가족 구성원으로 편입되려는 안간힘 같은 것이 이 드라마의 진짜 힘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핏줄과 가족에 대한 드라마의 집착은 왜 우리네 드라마에 파탄난 가족들이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우리네 드라마의 전형적인 핏줄 정서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1968년 정소영 감독이 동명의 원작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파국적인 가족이야기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스타일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반복된다. 그것은 이 드라마의 복잡한 가계도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명진그룹 회장인 한명인(최명길)은 남편 이정훈(박상원)사이에 아들 이민수(정겨운)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민수는 이정훈의 친아들이 아니고 한명인의 첫사랑의 소산이며 한편 이정훈과 내연관계에 있는 은혜정(전인화)은 그와의 사이에 딸 수진(한예인)을 두고 있는데, 사실은 숨겨진 딸 최윤희(박예진)가 하나 더 있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한 명씩 과거에 숨겨져 있던 가족과 관련된 인물들을 하나씩 불러들임으로써 극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그 첫 번째는 이정훈의 숨겨진 내연녀 은혜정이고 두 번째는 죽은 줄 알았던 한명인의 첫사랑이며, 세 번째는 은혜정의 숨겨진 딸 최윤희다. 실로 제목처럼 미워도 다시 한번 끄집어내 뒤틀렸던 가족사를 제자리로 돌리려는 욕망이 이 드라마가 굴러가는 진짜 힘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로부터 소환된 인물들은 끊임없이 현재 유지되어 있는 가족을 뒤흔든다. 과거와 현재의 충돌, 그로 인해 위기에 처하는 가족, 그리고 어떤 화해(어떻게든 되어야만 하는). 이것은 고전적인 가족극의 전형이다.

종영하는 두 드라마는 모두 공교롭게도 이처럼 뒤틀린 가족의 제자리 찾기를 보여준다. 그런데 결말에 이르러 이들 드라마들이 모두 어딘지 급하게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어쩌면 이들 드라마들의 힘이 끊임없이 파괴되어가는 가족의 모습(그래서 그걸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반대급부의 힘까지)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상 이들 드라마가 주목한 것은 그 끊임없이 파탄 일로를 달리는 가족들의 대결과정 그 자체이지, 어떤 제자리를 찾아가는 결말이나 메시지는 아니었던 셈이다. 어쨌든 우리에게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끈끈함은 이번 종영하는 이 두 드라마를 통해서도 입증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