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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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하나로 세계를 정복한 살인자, ‘향수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2007. 3. 14. 11:24
이성을 비웃는 본능, ‘향수’ 영화의 첫 장면. 감옥, 그림자처럼 어둠 속에 서 있는 그르누이(벤 위쇼)가 앞으로 나온다. 그러자 코 하나만 달랑 빛 속으로 튀어나온다. 어둠의 섬 위로 떠오른 그르누이의 코. 이 간단한 장면 하나는 그러나 영화 전체의 이야기를 모두 압축하는 힘을 갖고 있다. 거기에는 이 영화가 다루려 하는 후각과 시각, 어둠과 빛, 이성과 본능에 대한 상징이 숨겨져 있다. 어둠과 빛이 의미하는 것 그것은 영화가 앞으로 다룰 이야기가 바로 코, 후각에 대한 것이라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먼저 봐야 할 것은 이 첫 장면에서 보이는 어둠과 빛의 대비다. 어둠 속에 없는 듯 서 있는 그르누이는 영화 전체에서 드러나듯 그림자 같은 존재. 늘 거기 있지만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어떤 존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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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TV의 아이콘이 되다옛글들/드라마 곱씹기 2007. 3. 12. 09:30
아이콘화된 이름으로 규정되는 연예인들 버럭범수, 야망준혁, 야동순재, 애교문희, 내숭달희, 사육해미... 요즘은 이름 두 자와 그 성격을 규정하는 글자를 붙인 ‘아이콘화된 이름’이 대세다. 드라마와 시트콤을 기억해내는데 우리는 굳이 그 긴 제목을 생각해낼 필요가 없다. ‘하얀거탑’대신 야망준혁을, ‘외과의사 봉달희’대신 버럭범수를, ‘거침없이 하이킥’대신 야동순재를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제목보다 더 구체적으로 드라마나 시트콤의 특징을 드러내주기도 한다. 야망준혁에서 떠올려지는 야망을 향해 질주하는 준혁의 모습이나 버럭범수에서 봉달희를 향해 버럭대며 사랑을 표현하는 범수의 모습은 이들 드라마가 현재 보여주고 있는 재미요소를 좀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이름들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고 입에 잘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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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혁, 이 시대 샐러리맨의 자화상옛글들/명랑TV 2007. 3. 11. 02:01
장준혁을 위한 변명 ‘하얀거탑’은 결국 환타지보다 현실을 선택했다. 장준혁(김명민)에 대해 쏟아지는 애정의 근원은 바로 그가 우리네 3,40대 샐러리맨들의 자화상을 담고 있기 때문. 성공을 위해 밤낮 없이 달리던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픽 쓰러지는 장면들은 이제 낯선 장면이 아니다. “장준혁을 살려내라”는 거센 요구는 바로 그런 현실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시청자들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이다. 그렇다면 장준혁이 달려온 길은 이 시대 샐러리맨들의 자화상을 어떻게 대변했을까. 장준혁도 이주완(이정길) 과장이 딴 맘을 먹기 전까지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개원의도 아니고 종합병원에서 그것도 모두가 기피하는 외과에서 10여 년을 숨죽여가며 주는 봉급 받아가며 살아온 샐러리맨. 실력은 최고지만 조직의 생리가 어디 실력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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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드라마, 디테일로 현실을 말하다옛글들/명랑TV 2007. 3. 9. 23:07
전문직 드라마의 이유 있는 선전 값비싼 스포츠카에서 내려 조금은 풀어진 듯한 모습으로 건물로 들어서는 남자. 그를 전날 길거리에 우연히 만났던 말단 여직원(하지만 늘 굳건하고 씩씩한 우리의 여주인공!)이 막 회사로 들어서는 남자에게 다짜고짜 말을 건다. 옆에서 수행하던 비서들이 제지하면서 여자는 그가 이 회사 총수의 아들이라는 걸 알게된다…. 식상한 트렌디 드라마의 전형적인 구조. 한 때는 한류의 한 공식처럼 통용되던 이 구조는 작년 한 해 시청자들에게 철저히 냉대를 받았다. 이로서 제작자들은 알게 되었다. 적당한 삼각 사각구도의 멜로 라인과 몇몇 스타들을 캐스팅하면 무조건 된다는 안이한 방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올해 들어 새롭게 선보인 것이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 요즘 한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