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 작가 드라마에는 왜 사회적 약자가 나올까

 

다시 돌아온 김지호라는 배우가 반가운 걸까. 아니면 그녀가 연기하는 <참 좋은 시절>의 강동옥이라는 캐릭터가 좋은 걸까.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한 때 최고의 인기를 끌던 여배우였지만 한동안 활동을 하지 않다 다시 돌아온 김지호는 분명 훨씬 원숙해진 연기를 선보였다. 7세 지능을 가진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나.

 

'참 좋은 시절(사진출처:KBS)'

숱한 상처를 갖고 있는 강동옥은 마치 유리처럼 투명하지만 또한 깨지기 쉬운 멘탈의 소유자다. 어린 시절 엄마가 식모살이하던 집 주인이었던 차해원(김희선)의 엄마 이명순(노경주)에게 다이아몬드를 훔쳤다는 누명을 쓴 데 이어, 옷가게에서 차해원의 언니인 차해주(진경)에게 또다시 자기 옷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게 된 강동옥은 두려움에 딸국질을 해대며 맨발로 거리로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온 가족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는 차해원까지 강동옥을 찾기 위해 나서는 모습이 그려진다. 결국 차해원은 과거에도 그녀가 벽장에 숨었었다는 것을 알고는 동네 가구점의 가구 속에 누워 잠들어 있는 강동옥을 찾아낸다. 이 드라마의 시퀀스는 강동옥이라는 사회적 약자가 굳이 가족의 구성원으로 들어와 있는 이유와 그것이 왜 중요한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경희 작가의 작품에는 유독 사회적 약자가 등장한다. 과거 <고맙습니다>는 대표적인 사례다. 거기에는 에이즈에 걸린 딸과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 그리고 미혼모인 여주인공이 등장했다. 결국 사회적 약자들이 모두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에서는 주인공 강마루(송중기)의 동생 강초코(이유비)가 그런 인물이다. 기흉과 혈구 탐식성 림프 조직구 증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그녀는 늘 강마루의 눈에 밟히는 인물이다.

 

왜 이런 사회적 약자가 등장할까. <참 좋은 시절>의 강동옥이라는 인물의 설정을 보면 그 이유가 드러난다. 그녀는 주인공 강동석의 쌍둥이 누나로 어린 시절에는 머리가 영특했지만 9살 되던 해 동석과 함께 사고가 났고 강노인(오현경)은 아들이라는 이유로 동석만 업고 백리 길을 뛰었다는 것. 그 결과 머리를 다친 동옥은 목숨을 구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7살 지능에 멈췄고 동석은 날개를 단 듯 뻗어나갔다는 것이다.

 

즉 동옥은 이제 검사가 되어 금의환향한 동석에게는 지울 수 없는 아픔이자 어떤 상황에서도 일순위가 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동옥은 늘 동석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인물이다. 어쩌면 자신의 성공이 동옥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 바로 이 부채의식은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누군가의 성공 뒤에는 보이지 않는 이들의 희생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동옥이라는 인물이 <참 좋은 시절>에서 중요한 건 그래서다. 드라마 속에는 악역의 역할을 하는 해주의 엄마나 언니 같은 인물도 있고, 또 같은 가족 내에서도 배다른 동희(택연)와 동석이 늘 날을 세우며 갈등하며, 또 동석과 그 가족들 사이의 기류 역시 데면데면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모든 갈등과 대립이 일시에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동옥에게 어떤 일이 터지는 순간이다. 그녀가 사라져버리자 온 가족과 동네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다니는 장면은 대립과 갈등 속에서도 이 드라마의 밑바탕에 깔린 훈훈한 온기를 그려낸다.

 

강풀이 그린 <바보> 같은 작품에서도 보이듯이 사회적 약자는 그래서 때로는 그 존재 자체로 타인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힘으로서 존재한다. 그들의 존재가 우리와 연결되어 있고 때로는 그들의 희생이 있어 우리네 삶이 살아진다는 것. <참 좋은 시절>의 동옥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연기하는 김지호의 역할이 돋보이는 건 바로 이런 드라마의 선한 의미와 따뜻한 정서를 그녀가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동옥은 이 때론 처절한 삶 속에서도 그 시절을 참 좋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인지도 모르겠다.

멜로, 현대물보다 사극에서 빛나는 이유

멜로가 사극과 바람이 났다. 전통적으로 현대물과 조우하던 멜로드라마는 좀처럼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정통 멜로의 부활을 예고했던 ‘못된 사랑’은 출연진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틀에 박힌 설정과 스토리로 오히려 ‘못된 드라마’라는 오명을 쓰고있고, ‘불한당’은 애초에 기획했던 휴먼드라마보다는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보이면서 여전히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반면, 현대물들이 성공적으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멜로는 오히려 사극 속에서 더 빛나고 있다. ‘이산’의 이산(이서진)과 성송연(한지민) 그리고 효의왕후(박은혜)의 삼각 멜로가 그렇고, ‘쾌도 홍길동’의 홍길동(강지환)과 허이녹(성유리) 그리고 이창휘(장근석)의 삼각 멜로가 그렇다. 무엇보다도 이런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현대물에서 보여지는 멜로가 식상한 느낌을 주는 반면, 사극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멜로드라마는 왜 늘 식상하다 욕먹나
멜로드라마는 그 성격상 사랑을 중심에 두고 그 빗나감과 마주침을 연속적으로 만들어가면서 극을 발전시켜나간다. 중요한 것은 이 흐름 속에 웃음과 눈물을 교차시켜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공식 같은 것이 생겨버렸다. 특정한 상황 속에서 눈물이 터져 나온다는 것을 감지해버린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그 상황을 처음부터 만들어가거나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못된 사랑’의 처음 1,2회는 이것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나인정(이요원)의 몰락의 과정을 보여준 이 2회분에는 사실상 작품 전체가 앞으로 어떻게 굴러갈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모든 단서들이 놓여져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부분이 꽤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보여졌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이 예측된 흐름 위에 새로운 어떤 틀이 마련되지 않고 예측한 대로 흘러갔을 때, 드라마는 식상한 것이 되어버린다. ‘못된 사랑’이 가진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사실상 이런 문제는 대부분의 멜로가 가미된 현대물들이 안고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확보한 ‘뉴하트’같은 작품에도 마찬가지다. 이은성(지성)과 남혜석(김민정)의 멜로가 이미 의학드라마 속 멜로의 전통 속에서 익숙한 구도이기 때문에 ‘뉴하트’는 긴박한 병원이야기가 돌아갈 때는 참신함을 느끼다가(물론 이것이 ‘뉴하트’의 경우는 익숙한 스토리가 많다), 멜로로 돌아올 때는 무언가 축축 쳐지는 느낌에 빠져들게 된다. 멜로와 전문직의 봉합이 이루어졌을 때 ‘무늬만 전문직’이란 비아냥이 등장하게 되는 이유는 전문직의 디테일을 잘 못 살려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멜로 또한 천편일률적인 구도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사극 속의 멜로가 다른 이유
하지만 이러한 멜로도 사극을 만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먼저 몇 가지 제한점이 생겨난다. 사극은 기본적으로 멜로드라마 자체로는 만들어지기가 어렵다. 시청자들의 인식 자체가 사극은 역사적인 이야기의 재미를 가진 드라마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 이야기는 양념이 될지언정 본 재료는 어디까지나 역사적인 사건이 된다. 이러한 사극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는 제한점으로 인해 사극의 멜로는 스토리와 함께 굴러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산’의 성송연과 이산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가 이를 정확하게 잘 보여준다. 이 둘은 신분상의 거리만큼이나 서로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니 그 사랑의 감정을 전하기 위해서 보여지는 것들은 직접적인 대사보다는 사건 속에서 인물의 행동으로 처리된다. 이산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면서 미거한 힘이지만 그 일을 해결하려 성송연이 뛰어다닐 때 그 멜로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또한 성송연이 이국 땅으로 떠났을 때, 이산이 말을 달려 그녀를 쫓아간다거나, 그 먼 길을 오로지 이산만을 생각하며 걷는 성송연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사랑의 강도를 전한다. 그 둘은 서로 만나지 않아도 멜로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막상 만난다 하더라도 신분상의 차이가 있기에 하는 대사 또한 우회적이다. 성송연이 돌아와 죽을 고비를 넘겨 깨어났을 때, 이산이 그녀에게 말하는 “네가 가고 나는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더냐”는 대사는 직설어법이 아닌 간접어법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점은 ‘쾌도 홍길동’에서 홍길동과 허이녹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코믹이라는 장르적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직접적으로 서로를 향해 애정행각을 벌이는 낯간지러운 대사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홍길동이 허이녹에게 ‘멍청이’이라고 말할 때, 먼 길 떠나는 길에 어머님의 무덤가 흙을 조잡하게 수놓은 주머니에 허이녹이 퍼담아 줄 때 그 사랑의 마음이 전해진다.

무엇보다도 사극이 멜로를 제대로 품어줄 수 있는 것은 멜로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운명적인 사랑이 현대의 가치관으로는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사극은 그 시점을 과거로 돌려 운명적 사랑의 시대에 맞춰준다. 물론 지금의 가치에는 맞지 않지만 어느 정도는 ‘사극이니까’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멜로, 그 진화의 길들
이러한 사극과 멜로가 만나는 것은 멜로드라마의 입장에서 보면 또 하나의 진화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멜로드라마가 처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운명적인 사랑에 호소하는 순전한 멜로드라마에 공감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멜로드라마는 그 순혈주의를 고집하지 않고 타 장르와 몸을 섞는 실험이 필요하며 그것은 사극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면 이것은 사극만 가능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멜로드라마가 현대물로서 진화의 몸부림과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이른바 휴먼드라마이다. 작년 ‘고맙습니다’가 그 첫 번째 길을 열었고, 그 이후 ‘인순이는 예쁘다’가 그 계보를 이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불한당’ 역시 휴먼드라마를 표방했지만 그 진화의 계보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휴먼드라마가 가진 가능성은 멜로드라마의 구도가 가진 남과 여의 만남을 사회적인 이슈로까지 확장시켜나간다는 점이다. ‘고맙습니다’의 영신(공효진)과 기서, 그리고 ‘인순이는 예쁘다’의 인순이(김현주)와 상우(김민준)의 만남은 멜로드라마로서의 남녀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몰이해와 편견을 넘어서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멜로드라마는 미스테리와 몸을 섞어 전혀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사랑을 넘어 사람을 포착하는 멜로드라마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사극이 끝없이 진화의 길을 걸어오는 것처럼, 장르드라마가 늘 새로운 도전을 하려 하는 것처럼 이제 멜로드라마도 변화하지 않으면, 실험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그것이 장르적인 퓨전이든 아니면 전혀 새로운 방식이든지 간에 분명한 점은 멜로드라마도 진화해야 산다는 것이다.

연기자에게 필요한 것, 출연료 아닌 좋은 작품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입장이어서 일까. 드라마의 성패에 따라 가장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건 작가나 연출자가 아니라 연기자다. 그러나 연기자가 아무리 훌륭한 연기력을 갖추고 있어도 작품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연기는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연기력이 조금 부족하다 하더라도 작품의 캐릭터가 워낙 좋으면 그 연기자는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2007년도 드라마들에서도 그런 단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연기자들을 살렸던 드라마, 또 연기자들을 울렸던 드라마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연기자의 연기력을 극대화시킨 드라마들
그간의 부진을 씻고 정상의 궤도로 연기자들을 올려놓은 작품들이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커피프린스 1호점’. 이 작품에 출연한 윤은혜, 공유, 이선균, 채정안은 모두 과거의 아픈 기억 하나씩을 갖고 있는 연기자들이다. 윤은혜는 ‘궁’, ‘포도밭 그 사나이’를 통해서 연기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지만 늘 따라다니는 건 연기력 논란이었다. 공유 역시 ‘어느 멋진 날’ 같은 작품에 등장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끌지는 못했고, 이선균은 ‘하얀거탑’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약한 배역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채정안은 ‘해신’ 등을 통해 연기를 선보였지만 오랜 공백 끝의 복귀였다. 그러니 이 작품 하나는 이 네 명의 연기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다.

윤은혜에게 ‘커피프린스 1호점’이 있었다면 이준기에게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 있었다. ‘왕의 남자’로 일약 천만 관객의 배우가 된 그 지점에서 연기 첫걸음을 내딛던 이준기가 가진 부담감은 실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 하지만 이 작품은 이준기의 다양한 연기의 결을 보여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상황에 따라 수없이 변해가는 캐릭터의 성격을 이준기는 큰 무리 없이 무난하게 연기함으로서 스타에서 연기자로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고맙습니다’. 이 작품은 공효진의 진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장혁의 연기자 복귀를 성공적으로 치르게 해주었다. 이밖에도 ‘하얀거탑’의 김명민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연기자 본능을 과시했고, ‘외과의사 봉달희’가 발견한 이요원과 버럭범수 이범수 또한 2007년 드라마가 주목한 배우였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확실한 자신만의 아우라를 보여준 ‘마왕’의 주지훈, ‘인순이는 예쁘다’의 김현주 또한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연기력과 상관없이 연기자를 울린 드라마들
반면 작품을 잘못 만나 연기자가 연기력을 보일 수 없었던 드라마들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로비스트’가 될 것이다. 이 드라마는 캐스팅만 보면 실로 최고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연기자들이 포진된 작품이다. 먼저 주연을 맡은 송일국은 ‘주몽’으로 굳건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 상대역의 장진영 역시 영화 ‘소름’으로 연기력의 가능성을 보이고,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30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인기여우상을 거머쥐면서 연기자로서 발돋움한 재원이다. 여기에 언제 등장해도 든든한 드라마의 기둥 역할을 해주는 허준호와 백발의 카리스마 연기까지 변신한 김미숙까지 동원됐지만 결과는 어이없게도 참패였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에어시티’를 들 수 있겠다. ‘에어시티’는 이정재와 최지우 같은 이른바 한류 스타들이 브라운관에 복귀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이슈가 될 정도의 대작 드라마였지만 역시 어이없는 참패를 맞았다. 공항이라는 관심을 끄는 소재는 전혀 작품의 스토리와 연관을 갖지 못하고 심지어는 공항 홍보 드라마냐는 비아냥까지 받았으며, 한류스타들에게마저 연기력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게 하는 굴욕을 안겨주기도 했다.

한편 ‘강남엄마 따라잡기’의 하희라 같은 경우는 작품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으나 캐릭터가 살지 않아 주목을 못 받은 경우다. 반면 ‘아이 앰 샘’의 양동근은 좋은 연기에도 시청률 틈바구니에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고 또한 작년 ‘마이걸’로 주목받았던 이다해는 ‘헬로 애기씨’라는 조금은 시대 트렌드에 뒤떨어지는 작품을 만나 외면 받았다. 어떤 경우든 역시 아무리 발군의 연기자라 해도 결국엔 좋은 작품 속에서만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2007년 연기자들을 울리고 살린 드라마들이 말해주는 것은 작품 없이 연기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연기자들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실상 출연료가 아니라 좋은 작품인 셈이다. 내년에는 훌륭한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와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연기자들이 더 풍성하기를 기원한다.

여행명소가 된 촬영지들, 문제는 없나

평범해 보이기 이를 데 없는 정자. 하지만 뭐가 새로운 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이유는 하나. 그 곳이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 영신(공효진)과 기서(장혁)가 첫 키스를 한 장소란다. 또 다른 풍경 하나. 인터넷 영월군의 관광소개(http://ywtour.com)에 들어가면 영화 ‘라디오 스타’의 촬영지만을 모은 지도가 있다. 그 지도를 보면 재미있는 것이 이른바 명소라는 곳의 이름들이다. ‘영빈관’, ‘청록다방’, ‘청령포모텔’등등. 영화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중국집, 다방, 모텔이 관광 코스가 된 것이다.

과거 7,80년대의 여행이 관광이었다면, 90년대 이후의 여행은 체험이었다. 그리고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아 여행도 문화라는 겉옷을 걸쳐 입었다. 영화, 드라마 속의 공간을 찾아가는 이른바 문화여행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문화라는 그림자만 어른거려도 일단 고개부터 돌린다. 물론 문화를 모른다면 그 곳은 아무 것도 아닌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다. 그 평범한 장소에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많은 이야기들을.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드라마는 세트장을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며, 드라마는 끝나도 세트장을 남긴다. 나주시는 MBC드라마 ‘주몽’의 4만2천 평 규모 오픈 세트장 건립에 약 80억 원을 투자했다. 지난 3월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이 세트장을 삼한지 테마파크로 유료화한 뒤 50여 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고 그로 인해 14억 원의 직접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눈에 보이는 수익일 뿐, 직접 관광객이 지역에 소비하는 비용과 지역 홍보 및 나주의 이미지 개선 등 보이지 않는 수익을 포함하면 연간 600억 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가져온다고 시는 추산하고 있다.

이러한 드라마 촬영지의 테마파크화를 만든 것은 드라마 ‘태조 왕건’. 30억 원을 들인 이 테마파크가 성공을 거둔 이후, 드라마 ‘해신’은 하나의 성공사례가 되었다. 완도는 해신 세트장을 유치해 2005년도 관광객 500만 명을 유치했으며 이로써 1600억 원의 지역경제파급효과를 거둔 공로가 인정되어 최근 제12회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에서 문화관광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최근 고구려 드라마들의 부흥과 함께 세트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속초에 지어진 ‘대조영’ 세트장이 70억 원, 문경에 지어진 ‘연개소문’ 세트장 역시 60억 원을 들였다. 현재 가장 큰 테마파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태왕사신기’의 제주도 청암영상테마파크로 약 190억 원을 들여 제작되고 있다. 휴가철을 앞둔 지금 벌써부터 이 지역은 사람들의 관심으로 들썩이고 있다.

문화가 있는 여행은 좋지만, 문제는 없나
한편 영화의 경우, 그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라디오 스타’ 촬영지인 영월이 될 것이다. 이 인구 4만의 시골은 영화 촬영 이후, 연간 12만 명 이상이 찾는 명소가 되었고, 2006년만 따진다면 지역 경제 유발효과가 92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지자체의 촬영지 혹은 세트장 유치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지자체 입장에서 보면 관광 수입은 물론 홍보 효과를 바라볼 수 있게 하고, 방송사 입장에선 광고 이외의 별도수익을 올릴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도 잘 지어진 세트장은 보다 높은 완성도의 드라마나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특히 테마파크를 겨냥해 짓는 대형 드라마 세트장의 경우에는 그 실효성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규모가 점점 비대해져가고 있는 반면, 실제로 그만큼의 수익 창출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때론 지자체장들의 치적을 위한 무분별한 유치경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테마파크의 부실화를 양산할 수 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지역주민과 그 지역을 찾는 관광객에게 돌아간다.

문화는 장소를 향기롭게 해준다
테마파크를 겨냥해 대형 세트장을 지었다면 드라마가 종영하거나, 영화 상영이 끝났을 경우를 생각해서 향후 대책을 마련해두어야 한다. 드라마나 영화의 인기에 기대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심지어 폐가가 되어버리는 경우를 맞이할 수 있다. 제천의 청풍문화재단지는 ‘태조왕건’의 성공으로 2002년 34만 명, 2003년 37만 명이 찾았으나 그 후 특별한 관광상품을 개발해내지 못해 현재는 7만 명 정도로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어진 상태다.

문화의 시대, 문화가 여행의 한 축으로 등장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거대한 세트장이 전시행정의 하나로 읽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준비는 물론이고 사후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딱히 블록버스터나 마케팅이 아니라도 문화는 그 장소를 더 향기롭게 해준다. 새로운 세트장을 짓지 않고 그 동네의 일상을 고스란히 찍어내 오지 중의 오지인 증도라는 섬을 명소로 만든 ‘고맙습니다’ 같은 드라마나, 변방 주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겨낸 ‘라디오 스타’가 소중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 교보생명 사외보 <다솜이 친구>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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