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드라마들이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호연을 펼치고 있는 연기자들이 유난히도 돋보인 한 주였습니다.

역시 배종옥, 변신 김정민
SBS의 월화드라마,‘내 남자의 여자’는 극의 흐름을 김희애의 독한 연기가 끌어왔는데 이번 주에는 반격에 나선 배종옥의 연기가 돋보였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겪는 상처와 분노, 하지만 “그래도 용서해주세요”하는 아이의 애원에 흔들리는 엄마라는 복합적인 내면연기를 ‘역시 배종옥!’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소화해냈습니다. 배종옥은 과장되지 않고 또 그렇다고 너무 가라앉지도 않는 역할에 딱 맞는 연기력을 선보였습니다.
MBC의 ‘히트’는 전문성에 대한 비판여론 탓인지 분위기를 멜로에서 전문직쪽으로 바꾸려는 시도로 소강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새롭게 전면에 나선 김영두 역의 김정민이 가수답지 않은(?)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거칠고 강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는 멜로로 말랑말랑해진 ‘히트’에 조금은 강력계다운 강한 면모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성숙 공효진, 소름 주지훈
수목드라마에서 최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맙습니다’는 달라진 공효진, 장혁의 물오른 연기가 시청자들을 감동에 젖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전 드라마에서 조금은 되바라진 캐릭터를 보였던 공효진은 이 드라마에서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한 모성애 강한 미혼모역을 실감나게 소화해내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 장혁의 깊어진 연기와 서신애의 아이답지 않은 연기력, 그리고 자타가 공인하는 신구, 강부자의 연기력들이 맞물려 따뜻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데 강한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시청률은 낮아도 여전히 화제에 중심에 있는 ‘마왕’은 주지훈의 야누스적인 캐릭터에 찬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를 보이다가, 순간 순간 씩 웃을 때 입꼬리가 올라가며 보이는 악마적인 느낌은 시청자들을 전율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아픔을 떠올릴 때면 그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내면연기 역시 돋보이면서 이제 막 시작한 신인배우라고는 믿기기 어려운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캐릭터와 연기력이 드라마를 살린다
TV 프로그램의 성패가 된 리얼리티는 이제 드라마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리얼하냐는 것이 공감의 바로미터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캐릭터가 극의 중심으로 오면서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기자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과거 스토리 중심의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적당한(?) 연기력을 가진 외모출중한 배우들이 포진했던 반면, 최근에는 외모가 아닌 진정성이 느껴지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야말로 드라마를 살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착한 척하는 배우, 예쁜 척 하는 배우보다는 자신은 망가지더라도 극중 캐릭터를 100%로 살릴 수 있는 연기를 보이는 배우가 아름다운 시대입니다.
월화수목 드라마들이 중반을 치닫고 있는 지금이, 이제 제 궤도에 오른 연기자들의 명연기를 보는 맛이 가장 좋을 때입니다. 최고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내 남자의 여자’, ‘고맙습니다’ 뒤에는 연기자들의 호연이 빛나기 마련! 그러나 시청률과 상관없이 취향에 따라 그 다양한 맛에 취해보는 건 어떨까요.

재미로 보는 기대감 수치
▶ ‘내 남자의 여자’(기대감 80%) : 새로운 남자, 이종원이 등장하면서 배종옥의 갈등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배종옥과 김희애의 대결구도는 여전히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 ‘고맙습니다’(기대감 80%) : 연기로 보자면 이 드라마 만큼 기대감을 높이는 드라마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연기자들이 연기 9단의 모습을 보이는 드라마입니다. 공효진과 그 가족을 사이에 둔 장 혁과 신성록 간의 대결구도도 관전포인트입니다.
▶ ‘히트’(기대감 50%) : 아직까지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긴박감이 살아나지 않는 반면, 김정민의 역할이 얼마나 그걸 해줄지 기대가 되는 드라마입니다.
▶ ‘마왕’(기대감 50%) : 주지훈의 야누스적인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인간으로서의 강오수’와 ‘형사로서의 강오수’ 사이에서 갈등하는 엄태웅의 연기도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부족함을 따뜻함으로 채운 인물들

MBC 수목드라마, ‘고맙습니다’에는 캐릭터가 아닌 사람들이 보인다. 드라마에서 스토리를 극화하기 위해 캐릭터들은 어떤 한 부분이 극대화되어 그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천사표 캐릭터는 한없이 천사가 되고, 악역은 한없이 악역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 우리가 흔히 ‘진부한 선악구도’라고 말하는 설정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선악구도를 의도했다기보다는 드라마라는 또 하나의 세계 속에 스스로 움직이는(작가들은 어느 순간부터 저 스스로 인물들이 움직인다고 한다) 인물들을 드라마의 극적 구도라는 명목으로 억압한 결과인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고맙습니다’는 살아있는 인물들이 꿈틀대는 드라마이다. ‘악역 없는 드라마’는 극중 인물을 어느 캐릭터로 규정되는 한 측면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인물들을 다각도로 조명함으로써 어떨 때는 천사가 되고 어떨 때는 악역이 되는 살아있는 성격을 구축해 그 안에 저 스스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고맙습니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렇다.

강한 모성애를 가진 미혼모, 영신
영신(공효진)은 어딘지 답답한 구석이 있는 미혼모이다. 자신에게 섬을 떠나라고 하고, 또 이상한 남자를 소개시켜주면서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석현모(강부자)는 분명한 가해자지만 그런 그녀에게 영신은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봄이(서신애)와 미스터리(신구)를 위해서는 한없이 강해지는 면모를 보인다. 그것은 강력한 모성애다. 몸살을 앓으면서도 가출한 딸을 찾아 나선 영신이 꾸역꾸역 밥을 먹는 장면이 공감을 주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제 정신을 차린 영신이 옷과 신발을 새로 사 신고 민기서 앞에 나와 “이제 봄이 엄마 같아요?”라고 묻는 대사는 그녀의 모성애를 강하게 드러낸다.

미혼모가 강한 모성애를 보여준다는 설정은 영신이란 인물을 살아있게 만든다. 모성애가 부여되자 그녀는 미혼모라는 굴레 속에 갇히지도 않고 또 그 자체를 부정하지도 않는 인물이 된다. 하지만 드라마는 강한 모성애로서의 그녀를 그저 긍정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모성애는 때론 자신을 부정하는 희생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 그녀는 “전 여자가 아니에요. 봄이 엄마일 뿐이에요”라고 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삶에 의미가 없지만 생명을 살리는 의사, 민기서
반쯤 감은 눈이 초점을 허공에 두고 읊조리듯 말하는 민기서라는 인물은 까칠함의 대명사이지만 그 까칠함은 종종 따뜻한 마음을 숨기는 은폐물로 활용된다. 이 인물 속에는 유달리 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하고 있다. 환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버지가 선택한 안락사로 인해 당한 가족의 고통을 옆에서 본 민기서로서는 환자는 환자일 뿐이라는 냉정함으로 의사 생활을 해왔다. 그런데 그것을 깨준 것은 차지민(최강희)의 죽음이었다. 그녀는 환자이자 자신의 연인이었던 것. 이로써 그의 마음 속에는 환자에 대한 냉정과 열정이 공존하게 된다.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절대로 의사 짓 안 하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푸른도로 들어오면서 죽음 앞에 놓인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삶을 포기한 듯한 민기서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린다는 설정은 아이러니다. 영신의 집에 하숙하는 그가 저 자신은 대충 살아가면서도 곤경에 처한 영신네 가족들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이를 부정하고 아이를 그리워하는 석현
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석현(신성록)은 그 사실을 부정한다. 민기서의 “넌 도대체 뭐냐?”는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민기서는 그런 자신이 당황스럽고 미워진다. 지나가는 아이와 아빠의 얼굴을 보면서 거기에 봄이와 자신을 끼워 넣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런 그를 가로막는 것은 현실이다. 현실의 그가 가진 것들이 아이를 인정하고 영신을 맞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석현이 사장이자 민기서의 어머니인 강혜정(홍여진)에게 찾아가 푸른도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겠다며 그 이유로 “다 시시하고 무의미해졌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그것은 강혜정의 말대로 민기서가 푸른도 보건소에서 일하겠다면 떠날 때 했던 말과 같은 것이다. 비즈니스 자체를 시작한 그가 그 비즈니스에서 손을 떼는 상황은 그간에 석현이란 인물 속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방증한다. 우리는 석현을 통해 엘리트의 전형처럼 보이는 인물 속에도 남겨져 있는 따뜻한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이밖에도 이 드라마 속에서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는 인물들이 많다. 보건소 의사인 오종수(류승수)는 돌팔이로 매도되면서 자학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던 인물이지만 푸른도에서 봄이로 촉발된 에이즈에 대한 편견 앞에 온몸을 던지는 능동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늘 영신네 집 사람들을 못 잡아먹어 안달하던 석현모는 봄이의 에이즈가 잘만 관리하면 오래 살 수 있다는 말에 패물을 끄집어내며 “일단 살리고 봐야된다”고 말한다. 욕심과 소유욕에만 불타던 박씨(김하균)는 봄이를 껴안고 자신보다 오래 살아달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들이 한 인물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것은 그 인물을 보는 시선이 아이의 그것처럼 편견이 없기 때문이다. 봄이가 에이즈라는 사실에 난리법석인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아무런 편견이 없다. 아이들의 시선 속에서 에이즈라는 병은 그저 병일 뿐, 질시와 배척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마치 에이즈라는 병에 걸린 듯 위협적으로 혹은 배타적으로 보이는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아이의 시선으로 보여지면서 ‘완벽하지 않은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기서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 바로 따뜻한 인간의 가능성으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미혼모지만 모성애가 강한 것이 아니라 미혼모이기 때문에 모성애가 강해진 것이고, 삶의 의미가 없으면서도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아니라 삶의 의미가 없어진 연후에야 오히려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며, 아이를 부정한 후에야 아이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영신네 가족이 가진 온갖 부족함은 작가의 시선으로는 가능성이다. 그 부족함을 따뜻하게 채워줄 많은 살아있는 인물들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란 제목은 바로 그 부족함을 채워준 인물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인사이자, 부족하기에 꽃보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헌사이다.

이번 주는 월화 ‘내 남자의 여자’의 강품이 유난히도 강했던 한 주였습니다.

역시 김수현인가
김수현 작가의 독한 대본을 바탕으로 김희애의 독한 연기에 맞선 배종옥의 연기가 빛을 발하면서 시청률은 20%를 넘어 월화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히트’의 부진이 또 한 몫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애초에 전문직 드라마라는 어려운 선택을 했던 것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차라리 멜로 드라마를 표방했다면 이런 어려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정우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캐릭터들의 멜로 라인이 압권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들은 전문직 드라마에 어울리지 않는 차수경이란 캐릭터와 그 연기를 하는 고현정으로 떨어진 시청률을 그나마, 하정우씨의 멜로가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입니다.

한 주가 시작하는 월화에 독한 드라마로 풀어내며 이 악물고 일을 하다가 수목이 되면 슬슬 따뜻한 햇살이 간절해지기 마련, 이 욕구를 맞춰주듯 ‘고맙습니다’는 수목에 활짝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공효진과 서신애의 연기에 그들을 보호해주는 두 수호천사, 장 혁과 신성록의 따뜻한 연기는 월화에 맺힌 독기를 쪽 빼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한가인을 빼고는 트렌디한 설정으로 지속되고 있는 ‘마녀유희’의 전선에는 한 자릿수 시청률로 전락하는 등 점점 먹구름이 끼어가고 있습니다. 한편 아예 시청률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고 항변하듯 ‘마왕’은 꿋꿋이 자신의 노선을 밟아가며 매니아드라마로서의 명품드라마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주말드라마는?
주말 드라마는 별다른 진전 없이 대조영과 설인귀의 엎치락뒤치락 두뇌게임이 돋보이는 ‘대조영’의 선전이 눈에 뜨입니다. 부기원의 미친 행세가 사실 연기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만 언제까지 이런 작은 음모들로 극이 진행될 수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연개소문’은 유동근이란 굵직한 배우가 등장하면서 무언가 변수를 가질 것을 기대했지만 아직까지는 기대 이하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연개소문 역의 유동근과 당태종 이세민 역의 서인석의 본격 대결이 이루어지면 조금 약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편 동시간 대의 ‘케세라세라’는 ‘하얀거탑’의 뒷자리에 잘못 앉아 호평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떨어지는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아줌마를 잡아라
월화의 강자였던 ‘주몽’의 종영 이후, 춘추전국시대를 맞아 급변했던 드라마 기상은 이제 안정된 날씨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주몽’, ‘하얀거탑’으로 젊은 시청층의 기대감을 한층 높여놓았던 MBC는 그 기대감을 채워주지 못해 시청률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고, SBS는 좀더 강한 강도의 자극을 김수현이라는 작가를 통해 풀어내면서 전통적인 아줌마 시청층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KBS는 시청률과는 무관한 듯 제 행보를 유지하면서 전통적으로 보여왔던 사극의 강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재미로 보는 기대감 수치
▶ ‘내 남자의 여자’(기대감 90%) : 이제 등장할 배종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그녀에게 빙의된 시청자들은 그녀의 곧 이어질 반격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입니다.
▶ ‘고맙습니다’(기대감 90%) : 공효진과 그 가족을 사이에 둔 장 혁과 신성록 간의 애정공세가 본격화되면서 훈풍을 몰고 올 가능성이 짙습니다.
▶ ‘대조영’(기대감 70%) : 부기원의 변신, 하지만 여기에 속지 않을 대조영의 모습에서 기대가 되지만 그 다음은 또 누구의 반복이냐가 기대감을 낮추는 요인입니다.
▶ ‘히트’(기대감 60%) : 하정우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기대감 자체. 그러나 전문직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은 갈수록 저하될 전망입니다.
▶ ‘마왕’(기대감 50%) : 시청률은 낮지만 죽 보아왔던 시청자라면 기대감 100%를 가질 수 있는 이야기 전개. 세 번 째 희생자는 어떻게 죽게 될 것인가가 관심의 요인입니다.

‘내 남자의 여자’ vs ‘고맙습니다’

주중 드라마의 향배가 정해져가고 있다. 월화는 김수현 작가 특유의 입담으로 승부하는 ‘내 남자의 여자’, 수목은 이경희 작가가 전하는 훈훈한 진심으로 승부하는 ‘고맙습니다’이다. 한쪽은 말많은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수다를 자극하고, 다른 한쪽은 말없이 울게 하는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달군다. 미드 열풍을 타고 온 전문직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지만 그 기대치에 맞는 드라마가 부재한 상황, 이 두 드라마는 전혀 다른 상반된 코드를 가지고 주중의 밤을 뜨겁게 만들고 있다. ‘수다와 손수건’, 당신이 좋아하는 드라마는 무엇인가.

분노 vs 눈물
‘내 남자의 여자’는 여성들 속에 잠재되어 있던 분노를 끄집어내 폭발시키는 드라마다. 이것은 모든 불륜드라마가 갖는 기본전략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불륜드라마가 그 분노를 자해하듯 여성 속에 가두고 속으로 터뜨렸다면, ‘내 남자의 여자’는 거침없이 끄집어내 밖으로 터뜨린다는 데 있다. 죽이고 싶을 정도의 분노가 가진 두 얼굴은, 안으로 터질 때 자학 혹은 자살이 되며, 밖으로 터뜨릴 때 가해 혹은 살인이 된다. 그러니 불륜드라마가 가진 자극성은 바로 극중 은수(하유미)가 입만 열면 버릇처럼 쏟아져 나오는 욕설, “찢어 죽일” 정도의 강도를 숨기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폭력물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과 유사하다. 무언가 내 안에 잠재된 불만과 분노를 애꿎은 기물을 파손하고 폭파시키는 장면을 통해 풀어내는 것. 그러나 폭력물에 바로 내 옆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공감을 끌어내는 설정이 들어가면 그 강도는 더 강해진다. ‘내 남자의 여자’는 바로 그런 설정을 불륜을 통해 만들어놓고 분노와 카타르시스를 반복하는 심리적인 폭력물이다. 여기에는 그간 남자라는 속물들에 의해 쌓여온 분노를 ‘무시’라는 형태로 복수하고는, 곧바로 ‘가정 있는 여자’와 ‘그 가정을 파괴하려는 여자’라는 구도를 만들어 대결구도에 들어간다. 주먹이 오가고 프라이팬이 날아드는 걸  보고 속시원하다고 느낀 시청자라면 이 대결구도에서 오는 해소감을 맛본 것이다.

반면, ‘고맙습니다’는 분노보다는 눈물을 무기로 끄집어낸다. 그런데 이 눈물은 그저 강한 설정에 의해 억지로 짜내는 그런 종류가 아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대결의식과 그 해결방법을 보면 드러난다. 드라마는 에이즈에 감염된 딸 봄(서신애)과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신구)를 모시고 살아가는 영신(공효진)과 세상의 편견과의 대결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캐릭터가 그 세상의 편견을 대변하는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석현(신성록)과 민기서(장혁)의 관계는 영신과 푸른도의 개발을 두고 묘한 대결구도를 가지면서도 서로 형제 같은 느낌을 준다. 박씨(김하균)와 석현모(강부자) 같은 모자란 듯한 섬사람들은 그 부족함이 때론 편견으로 드러나지만 그것은 모르기 때문일 뿐, 악함은 아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세상의 편견들 앞에서 영신이 하는 방식은 저 ‘내 남자의 여자’가 보여주는 ‘분노의 폭발’이 아니다. 그녀는 고작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끊임없이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는다. 심지어 에이즈라는 사실이 밝혀져 자신의 딸을 피하는 푸른도 사람들에게 분노를 표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푸른도 사람들에게 “잘못했다”고 말하며, 그래도 딸 봄이와 할아버지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려 노력하면서 이런 작은 행복감에도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장면들을 목격하는 시청자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은 작가가 이 가족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한다. 그것은 도처에 그 가족을 도우려는 인물들, 예를 들면 보건소 사람들이나 민기서, 석현, 서은희(김성은), 두섭모(전원주) 같은 인물들의 시선으로 처리된다.

직설화법 vs 간접화법
분노를 터뜨리는 방식으로서 ‘내 남자의 여자’는 직설화법을 선택한다. 욕은 차라리 순한 편이다. 대화내용은 너무나 직접적이어서 충격적이란 느낌마저 든다. 화영(김희애)을 찾아온 지수(배종옥)가 “왜 그랬니? 넌 내 친구였잖아.”라고 하는 항변에 화영의 답변은 이런 식이다. “불가항력이었어. 죽어도 좋았어. 너 따윈 아무 상관없었어.” 이것은 언어라는 형태를 띄었을 뿐, 거의 칼로 상대방의 마음을 찌르는 정도의 수위를 담고 있다. 여기에 가만있을 지수가 아니다. “너희 짐승이니?” 그러자 화영은 비웃듯 웃으며 말한다. “행복한 짐승.” 칼이 날아가고 피가 튀는 사극이나 조폭영화보다 더 강한 직설화법의 액션이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인 말의 대결 너머에서도 캐릭터를 잡아내는 게 김수현 작가의 힘이다. “내가 널 얼마나 잘 해줬는데..” 이런 지수의 한탄에 화영이 하는 말. “니가 해놓고 왜 빚준 것처럼 그래? 솔직해라.” 이것은 지수의 성격이 조금은 과잉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주변의 것들을 완벽하게 처리하고 자신은 늘 착한 천사표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착한 여자 콤플렉스’ 같은 것을 약점으로 갖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수의 일방적인 공세 속의 약점을 파고드는 화영의 한 자락 칼침이 더 강한 대결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요인이 된다. 평소에 시청자들이 속으로 품고 있었던 말들은 그녀들의 입을 통해 뿜어져 나오고 그 순간 시청자들은 캐릭터에 빙의 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반면, ‘고맙습니다’는 극도로 우회하는 간접화법으로 시청자의 가슴을 파고든다. ‘고맙습니다’에 유독 많이 나오는 장면은 바로 ‘목격되는 장면’이다. 영신이 잠을 자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민기서에게 목격되고, 술에 취해 민기서를 아버지로 대하는 그녀의 행동 역시 민기서에게 목격된다. 민기서가 살인의 누명을 쓰고 경찰서에 갔을 때 그 증언을 뒤집어줄 고씨네 집에서 비를 맞으며 애원하는 석현의 모습은 영신에게 목격된다. 에이즈 사실이 밝혀진 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간 영신은 석현에게 목격된다. 여기서 목격자는 바로 시청자의 역할을 해준다. 시청자들은 여러 따뜻한 인물들에게 빙의되면서 그 시선으로 같은 가슴저림, 아픔을 느끼게 된다.

돌아온 민기서는 “정말 잊지 못해 다시 돌아왔다”는 진심 어린 말을 영신 앞에서 해댄다. 그것은 직설화법처럼 느껴지지만 곧바로 민기서가 “내가 네 아버지다”라고 말함으로써 간접화법으로 되돌려진다. 과거 아버지가 돌아오신 것으로 착각해 민기서 앞에서 밥상을 차려주고 절을 했던 일을 이번에는 민기서가 간접화법으로 말하는 것. 여기에는 영신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점에서 에둘러 말하지만 진심은 시청자에게 곧바로 전달된다. 드라마는 이러한 간접화법을 통해 진심이란 말 몇 마디로 전해지지 않는 어떤 것이라 말해준다. ‘고맙습니다’는 저 신구라는 연기자의 치매연기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직접적인 말보다는 우회적인 말로, 때론 침묵이나 행동으로 진심을 전하는 드라마다.

네거티브 전략 vs 포지티브 전략
이 두 드라마가 취하는 전략은 사뭇 상반된다. ‘내 남자의 여자’는 말많고 자극적인 드라마로서의 전형적인 네거티브 전략을 따르고 있고, ‘고맙습니다’는 마음의 진심을 전해 감동을 주는 드라마로서의 포지티브 전략을 따르고 있다. 이것은 어느 것이 우위에 있다기보다는 세상을 대하는 두 가지 다른 방식이다. 세상이 내게 무언가를 저질렀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이렇게도 다르다. 때론 불의와 맞서 싸우고 상대방을 때려눕히는 방식을 쓰기도 하고, 때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킨 장본인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방식을 쓰기도 한다.

주중 드라마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내 남자의 여자’와 ‘고맙습니다’는 이 두 방식에 대한 드라마다. 공교롭게도 여타의 드라마들보다 이 두 드라마가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시청자들이 그만큼 삶의 리얼한 문제에 더 민감하다는 것과 지금 우리 삶이 그만큼 각박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당신은 이 각박한 삶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각박한 삶을 만든 장본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결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진심을 전하려는 대화를 계속할 것인가. 칼날 같은 수다를 통한 대결인가, 적마저 눈물 흘리게 하는 손수건인가. 당신은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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